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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劇)

孔子, 위대한 철학자 그런데 눈치는 없는 것일까? - 공자 춘추전국시대 (Confucius, 孔子 ★★★★)

by Khori(高麗) 2020.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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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 화면이 참 예쁘다. 인의와 시서예약을 통한 인간이 가야 할 길에 대해서 말하는 공자의 지루함을 생각하면 감독이 많은 배려를 했다. 내겐 위나라 영공의 부인인 남자와 독대하는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나와 마주 선 사람이 나를 가장 잘 알아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춘추전국시대를 살아볼 수 없다. 그러나 비슷한 체험을 안 하는 시절도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 참 시끄럽기 때문이다. 과거를 돌아볼 때 현대의 시각과 오류를 갖고 그 시대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 낸 화려함 속에 그런 사실들이 남아 있다. 이 영화에서도 화공은 정말 멋있지만 그랬을까? 하는 상상을 이끈다.

 

 반면 성읍을 관리하고 계씨와 삼환의 횡포에 대한 설정과 배경은 꽤 설득력 있는 구성이다. 이 시대의 지도자는 조폭 우두머리인지 반상회 반장인지 애매하다. 춘추전국 시대 배경은 마치 UFC와 같다. 황제, 제후들이 현재의 중앙집권적 체제를 완벽하게 구축하지 못하고 큰 지역을 관할하는 배경이 설득력 있게 설명되었다고 생각한다. 한반도 삼국시대 초창기면 부족 대표들의 연합 반상회라고 생각한다. 춘추전국시대 끝나도 당나라, 수나라 정도 나와야 고구려와 한바탕을 하니 한참 더 오래된 시대다.

 

 생존의 시대, 패권의 시대는 그렇다. 정략적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계손씨 모습이 패권의 시대에 생존의 답안을 보여준다. 반면 노라나, 위나라, 제나라의 노회한 군주들을 통해서 열악한 시스템 아래 굴러가는 조직은 다수결의 향이 조금 나는 반상회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시대를 만난 공자는 행운아이며 불운아다. 태평성대(사실 이런 시대가 인류 역사에 존재하는가? 기준이 뭔가? ㅎㅎ)에 태어나 모두들 협력적이고 건설적인 시대를 살았다면 공자는 존재하지 못할 수 있다. 돋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UFC 경기장에 들어가서 "사람을 때리면 안 되고 사랑해야 한다", "때린 곳을 또 때리면 어떻게 하니?"와 같은 인류애적이며 이성적으로 맞는 말만 하면 사람들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아 기분이 나빠진다. 쉽게 맞는 말인데 상황에 맞지 않아 재수가 없다는 말이다. 요즘 말에 덧붙여 "퍼펙트 나때"의 출현이라고 봐야 한다. 생존과 이상 사이에서 먼저 살기 위한 의사결정을 부정할 수 없다. 노나라 군주의 의사결정이 이를 말하고 있다. 공자의 예와 인의는 일단 생존이 최소한이라도 보장되어야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생존을 확보할 힘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여러 나라를 주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의 대화가 아주 돋보인다. 나와 길이 다르고 반대편에 존재하기에 나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 이런 일들이 사람을 갈등하게 만들지 모른다. 공자는 눈치가 어마어마하게 높다고 볼 수도 있고, 자신의 이상으로 눈치가 참 없다고도 볼 수 있다. 똑똑해서 그 어려운 길을 가는지, 아둔해서 끊임없이 그 길을 가는지.. 판단은 자신의 몫이다.

 

 인상적인 장면은 노자를 공자의 스승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이런저런 설은 많다. 노자는 도경과 덕경을 통해서 무위지치를 주장한다. 세상의 원칙이 잘 운영되면 힘쓰지 않고도 잘 돌아간다. 이 원칙은 고정불변이 아니라 계속 순환하고 변환한다. 어떤 면에서 도는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계속 쫒는 대상일 뿐이다. 반면 공자는 이성적 교육과 예를 통해서, 사람 속에 있는 긍정적이고, 건전하고 올바른 성품을 이끌어 이상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노자의 틀에서 보면 인위적인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안에 우직함과 고난이 존재한다. 공자는 어떤 면에서 그런 환경에서 뜻을 세우고 생존하기 위해서 사람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위해서 UFC를 비유했지만 최소한 생존을 하려면 상대가 어딜 진짜로 때리려는지 잘 알아야 안 맞고 적절하게 잔소리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남자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라고 한 말이 그 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8:2의 법칙이 아니라 20%의 올바른 사람, 20%의 못된 놈들이 큰 영향을 준다. 그런 가운데 60%의 호구들이 사는 세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내 생각일 뿐 따지려면 증명을 하시오! 기분이 나쁘건 어쩔 수 없다. 진실이 불편하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증명할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ㅎㅎ) 이런 기준에 부합하면 여기가 춘추전국시대다. 꼭 사람 목을 눈 깜짝할 사이에 뎅강데강 잘라야 춘추전국시대인가? 노자처럼 자연정화를 꿈꾸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인위적이지만 60%의 호구들이 어느 방향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태평성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공자도 가운데에 힘쓰고 칸트도 중간에 힘쓰자고 한건 아닐까? 중간은 그런데 참 산만하고 다채롭다는 생각을 한다. 여긴 짬뽕 맛이다. 백 짬뽕하고 불짬뽕이 없을 뿐.

 

 그런데 위대한 공자의 길을 보면 나는 자꾸 저 길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잖아! 쫄쫄 굶고! 가족들은 무슨 죄가 있나? 이럼 호구들의 호구가 되는 지름길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길을 걸어서 희생과 존경의 반대급부를 얻고.. 영화를 보며 난 참 속세적이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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