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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劇)

건축학 개론 - 추억이란 집에 채우고 싶은 이야기

by Khori(高麗) 2012.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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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전에 영화평을 보니, 강의시간에 나온 건축학개론과 그들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듯한 글을 본적이 있다. 너무나 메마른 평에 조금 섭섭하기도 하지만 사람이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것이 어찌 같겠는가?


영화의 잔잔한 모습들을 보면서 전에 봤던 만추와 많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 건축학개론의 시대적 배경이 내 젊은 날과 비슷한 시기였기 때문에 감상적이 됬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만추는 을씨년스럽고 쌀쌀한 시애틀을, 건축한 개론은 싱그러운 봄날의 교정모습으로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만나 한명의 호기심과 한명의 낯설움이 점차 따뜻한 마음으로 변하가는 만추. 마지막 장면 키스톤카페에 앉은 여인이 계속 웃음지으며 문소리에 귀기울이는 모습이 한가닥 희망을 부여잡고 있어 영화내내 어두운 마음에 미소와 기대를 품게 만든다. 나의 마음속에 그들의 해피엔딩을 기원해주는 소소한 소망에 혼자 마음 부풀어 오르듯.


하지만 건축한 개론을 보면 시종일관 잔잔하고 애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속을 거닐지만 마지막에 CD player를 듣는 그녀의 평온한 모습에 우린 한가닥 아쉬움과 그럴수 밖에 없는 현실, 아니 왜 멱살이라도 잡고 끌지 못하냐는 이기적인 마음이 더욱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일렁임을 만들어 내는것 같다. 그녀가 "그 쌍년이 나 아냐?"라는 물음에 자책처럼 마음이 아프고, 술 한잔마시고 거침없이 내뱉는 욕마하디에 더 상처받지 않았을까 걱정도 되는 까닭이다.


만남의 시작이 되는 정릉에서 학교오는길..그 수업의 칠판에 써있던 거리에 대한 정의가 기억에 남는다. 물리적 거리, 심리적거리, 다른 한가지는 또 기억이 나질안는다. 그 길을 걸으며 건축의 맛을 느끼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오는 길을 천천히 걸으며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된다. 제주도에 수돗가에 남은 그녀의 선명한 발자국, 벽돌에 표시된 높이는 걸어온 길속에 돌아가고 싶은 그 지점에 변함없이 서있다. 그래서 추억은 아름답다고 생각되고,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돌아가고 싶은것이 아닐까한다. 


나도 국민학교 입학전 ㄱ자 기와집을 부쉬고, 2층 양옥집을 짓고 흡족해 하시던 부모님이 생각난다. 그때 갖고 나온 나의 애장품은 봉다리에 잔뜩 들어있던 동그란 딱지와 여러종이로 접어놓은 딱지였던것 같다. 몇년전 고향길에 시간이 남아 한번 들러본 나의 모습이 어쩌면 한가인이 연기한 그녀의 모습이 아닐까생각된다. 집이란 사는 곳이란 물리적 공간이기도 하고, 어릴적 마당에 있던 30년수령이 넘은 대여섯그루의 앵두나무를 여름내 따먹던 추억의 공간이기도 하고, 가족들과의 희노애락이 녹아있는 항상 회귀해야할 곳이기도 하다.


그녀가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옛 집을 다시 짓지 않고 리모델링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어긋난듯 걸어온 길을 다시 바로잡아보고 싶은 바램, 나도 좋아했지만 차마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그시절 X세대들의 잊혀졌던 소심함을 또 한번 잔잔히 흔든다. 아버지의 말처럼 이층에 피아노를 놓고, 발자국을 보며 항상 그곳이 좋다는 아버지를 품고, 정작 가슴속에 묻은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난 갖고 있으면 안되?"라고 묻는 소심함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젊은날 그가 앞으로 꺼져줄래라고 의심과 고뇌속에 상처주는 말과 함께 돌아서듯.


추억속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그 아름다움과 아련한 마음을 깨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린 그동안 추억을 잊고 쉬지않고 리모델링을 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득문득 그 빈자리가 느껴질때 마음에 동요가 일어다고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사람이 갖은 어쩔수 없는 기구한 운명일 뿐이니 그게 조금 한스러울뿐이다.


휴일 마지막날 어찌하다 혼자본 영화라 그런지 더 감상적이네. 싱그러운 여름인데..날은 참 좋다. 요즘은 애들이 더 바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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