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공연 (劇)

조르바를 보다

by Khori(高麗) 2012. 6. 10.
728x90
반응형

[DVD]명작에게 길을 묻다 : 그리스인 조르바 / 희랍인 조르바


클래식라인(주) | 2010년 04월

작품 디자인/구성 구매하기

보통 100페이지쯤 보면 아까워서라도 읽게 되는데,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몇일전에 산 책에게는 미안하지만 먹어야 돌아가는 몸뚱이도 귀찮을때가 있다.  이런 귀차니즘이 꽉 찰땐 놓는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왠지 찜찜하다. 대신 몸을 움직여 읽는 방법을 포기하고 밖에 나가보니 보는 방법을 통한 새로운 해결책을 알게된다. 결핍은 해결책을 인도해주는 구도자다.


영화를 보면서 20년쯤 이탈리아에서 배를 타고 기차타고 가면서 본 멋진 지중해의 기억, 아테네까지 가는 길, 지중해에 발담그고 먹던 기가막힌 13kg짜리 수박..매우 허무한 파르테논신전, 응달과 양달의 극과극 체험이 생각난다. 크레타의 아름다움을 볼수는 없었지만, 당시에도 그리스주변의 섬에 대한 환상을 심기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요즘의 그들에게 수년째 벌어진 IMF와 같은 상황이 안쓰럽기도 하고, 그들에게 다시 필요한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어려서부터 보아온 안소니퀸..사실 별로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었다. 놉틀담의 곱추에 대한 인상이 많기도 하고 시간적 거리감도 있었다. 하나의 아쉬움이라면 만년에 출연한 노인과 바다는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보니, 그가 멕시코 치와와출신이다. 치와와..그래도 인연이 있는 동네인데..하지만 영화속의 모습에는 그는 북아프리카, 중동의 맛이 그대로 느껴질정도다. 말투나 억양도 감정도 그리스인 특유의 기질을 느끼게하는듯도 한다. 다시보니 정말 대단한 배우란 생각을 새롭게 하게된다.


영화속에 그려진 조르바는 버질이란 작가(절반의 영국인)와 공동의 목표인 광산, 더 큰꿈은 목재소까지 차리려하는 과정을 그린다. 처음부터 조르바의 매력이 인상적이다. 매일을 살아가는 무지렁이 같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깨달은 길속의 현자 그리고 욕망에도 충실하고, 매일 꿈꾸고 희망하는 사람도 같다. 지난달에 읽은 조증의 하이퍼마니아랑 비교해도 별 손색은 없을듯하고, 주류처럼 규칙, 기준, 준법, 제도의 틀에 담아보면 개차반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사람자체에 대해서는 매우 진솔하다.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 충실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니 아리따운 과부의 마음을 생각하며 계속 버질의 등을 떠밀겠지만..어째던 그의 꿈인 목재이동을 위한  계획은 처참이 무너진다. 가족, 자식, 결혼이란 3가지 대재앙을 다 갖고 있다고 말해놓고, 버질의 속상함과 부불리나에 대한 연민때문에 한 거짓말에도 비록 투덜대기는 하지만 충실하다. 그녀의 마지막길에 평안과 안도를 꽃처럼 뿌려주는 그의 모습이 종교인의 그것보다도 숭고하다.  버질도 작가로써 글쓰기의 어려움과 광산개발, 또 과부에 대한 마음등도 하나씩 부서져간듯하다. 과부의 죽음앞에 다가온 무력함은, 지식의 한계를 말하고 있는것이리라. 하루하루를 움직이고 행동하는 자의 것이지, 머리속의 지식이 구현되지 않을때 아는것만 못하거나 도리어 지식의 습득을 통해서 스스로 부족에 대한 확고한 인식에 매몰되는 것과 같다. 남자는 잔인하다는 말을 조르바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행동으로, 버질은 방관으로 피해간것같다.


결과적으로 계획의 처참한 실패는 둘을 망하는 길로 인도한다. 그 와중에도 앵무새를 구하고, 굽고 있던 양고기를 생각하며 달리는 조르바. 나사빠진 영감님같지만, 첫아이의 죽음과 그를 믿는 다는 말 버질의 말에 똑같이 지쳐 쓰러질때까지 춤추는 모습이 순순한 자신의 표현이 아닐까한다. 궁극의 상통이겠지만, 얻는 것도 버린것도 다 나에게 달린일이다. 모래사장위에 산을 만들고, 늙어가며 욕망이 줄어든다기 보단 더 차오르고 결국 속에서 터져버릴때까지 스스로를 소진 아니 자가발전하는것 그것이 조르바인것같다. 그를 통해 스스로의 깨달음과 행동을 통해서 고난과 기쁨에 억메이지 않는 상을 보게된다. 책에서 말하듯 남겨진 산투르보다 먼저 사라져갈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속에도, 끊임없이 스스로 일어서려는 정신은 지금도 천년을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희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의 영화지만 정극의 느낌을 많이 갖고 있다. 무표정하고 강렬한 눈빛들, 절제되고 큰 동작등은 영화의 자연스러움이라기보단 연극의 느낌이 많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속에 나타나 조르바의 평온한 표정과 아직도 짊어진 무엇인가에 얽메여 어정쩡한 버질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그렇지만 버질도 모든것을 털듯 자켓을 벗어던지고, 넥타이를 풀고 자유로움속으로 한발을 내딛는다. 어깨동무라는 연대를 통해 희열을 느끼고, 조르바는 더 깊은 열정속으로 몰입한다. 


멀리서 춤추는 그들을 보면서 컬러였으면 정말 이쁜 배경일텐데라는 생각, 흑백이라 더 아름답다는 생각..결국 자유롭게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을 생각하게 된다. 마져못본 책을 펼쳐야하나?? 그 속에 아직 보지못한 조르바가 있을까? 다들 자유를 말하지만 난 인간애를 더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다보고 나니 한번에 할일을 나는 두번에 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하긴 뭐 어때..다 내맘인데.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