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연 (劇)
골든 슬럼버
by Khori(高麗)
2019. 2. 23.
가까운 거리는 시차가 없어서 더 바쁘다. 영화 한 편 보기에도 짧은 시간이 지나면 낯선 땅에 도착할 수 있다. 도착 첫날부터 지인, 고객, 잠시 짬을 내서 만나는 후배, 이동 중 자투리 시간에 들러보는 유사하지만 다른 문화가 이색적이다. 읽으려던 책은 내려놓은 지 오래되고, 매일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 자리가 있어서 재미있고 힘들다.
웬만한 영화는 기억에 남는데 이 영화는 기억이 없다. 호두까기 인형이 관심을 끌기는 하지만, 책을 보다가 영화를 보려니 아무 한국영화를 골랐다. 최근 10년을 보면 한국 영화는 큰 발전을 하는 중흥기라고 생각한다.
잘 생긴 모범생활맨 건우를 통한 거대한 국가의 음모에 관한 이야기다. 국가의 실체도 사람이다. 그래서 국가 조직의 음모도 사람들의 이해관계, 욕망, 권력, 금권의 소용돌이가 더 깊고 빠르게 움직인다. 한국 정치를 조금 반영한듯한 배경과 달리 대선 후보의 암살이란 파격적인 도입부가 신선하다. 그리고 오래전 페이스오프처럼 얼굴을 옮겨서 범죄를 저지르는 조직적 반역자들의 모습은 스릴러물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 과정에서 오래전에 함께 한 친구들, 국가 조직의 버림받은 늙수그레한 조직원의 헌신, '누구도 믿지 마'라고 말하던 친구 무열이까지 건우가 선택한 생존의 길은 험란하다. 이런저런 전개과정이 책으로 보면 더 좋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머릿속 상상이 더 좋은 스토리 같다. 돌아와서 찾아보니 책으로도 소개되었고, 일본에서도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대개 오리지널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내게 인상적인 구성은 사람과의 관계다. 멀어졌지만 아침에 즐거운 눈을 뜨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던 청춘시절의 추억, 그 누가 뭐라 해도 내 자식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아버지, 친구가 부르는 이름 한 마디에 자신을 옥죄는 범죄의 수렁을 벗어날 의지를 찾은 금철까지 세상은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연결된 사랑, 우정, 인간애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제도, 권력, 금권 같은 외부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인간은 인간으로부터 가장 큰 만족과 애틋함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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