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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예술 (冊)

공중그네

by Khori(高麗) 2012.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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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4년전쯤이라면 이런 책을 들고 있지 않았을것 같다. 책을 들면 목차를 봐야하고, 간략한 내용이 잡혀야 책을 드는 습관은 학교다니던 시절에 기계적으로 몸에 체득된것 같다. 또 소설을 잘 안보던 이유이기도 하다. 솔직히 이 책을 지금 사서 본것도, 한가지 호기심에 불과했었다. 


몇일전 기사에서 서울대와 하버드 도서관에서 대여순위를 비교한 기사를 보게되었다. 첫줄에 올라있는 소설책과 1984의 대비, 그 밑으로 쭉 이어지는 소설류, 반면 다양한 책의 대조를 보면서 두가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쪽은 역사, 철학등의 인문학쪽 책이 배치되고 한쪽은 자국역사에 대한 책이 한가지도 없는 비참한 현실이랄까? 두번째 생각은 그럼 이 책은 어떤 가치를 젊은이들에게 주고 있을까? 무엇이길래 젊은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읽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업무 속에 이런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할 수도, 몇일전 어깨가 쳐진 후배들의 한마디가 더 머리속에 남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무작정 한권을 구입했다.


책을 읽으면 혼자 키득거리기도 하고, 마음한켠은 매우 쓸쓸하기도 하다. 보면 볼수록 책은 이라부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각 편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편에서 읽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삶을 살아가면 많은 사람들이 한길만을 걷다 장벽에 부딪치고, 그 벽을 넘기위해서 고민하고 또 상처받은 사람들이 나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이런 시절들이 있었고, 현실적으로 가까운 사람이 상담심리관련 종사자임에도 이런걸 터놓고 말하기 어렵다 또 그들도 나름의 인생 희노애락을 겪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의 고민은 불과 작년만해도 내가 어렸을때 정말 하고 싶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고, 그걸 기억하려고 했었던것 같다. 지금은 잊고 그저 좀더 힘내서 일하고, 잊고 지냈던것이 기억나진 않지만, 전에 하지 못한걸 좀더 해보자는 차원에서 더 많이 읽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으니까..별로 후회라는 걸 안하는 편인데, 요즘은 후회라는 말이 내게 좀더 가까이 온듯도 하고, 또 좀더 인간적이 되어가는게 아닌가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책을 읽다보면 이라부라는 신경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읽을 수록 매우 희망적이다. 비록 구제불능 기인열전인듯 보일수도 있지만, 그를 통해서 내가 잊고 있던것들, 찾아야할것들중 하나를 찾은게 아닌가한다. 책의 내용중에 '어린이가 뱀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용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어른이 보면 무지하지만, 어린이의 입장에서는 깨끗한 도화지에 처음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순수함, 호기심, 솔직함이랄까?  실례로 우리집아이들이 커가며 살살 거짓말이 매해 늘어가는건 어쩌면 어른이 되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도 그랬던것 같다. 어른이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건 본인이 그 결과를 잘알고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하다.  오늘도 아이와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이는 아빠를 부러워한다. 나도 이해하지만, 아빠도 니가 부럽다고 했더니, 우리 아니는 도통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으로 잠자리에 들어버렸으니...아마 이때부터 즐겁게 읽던 책의 관점이 바뀌엇던것 같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 의사가 하는 유일한 진료행위는 두가지다. 매혹적인 간호사를 통해 비타민 주사를 놓는 것과 지속적으로 환자를 모방하는 것이다. 비타민 주사는 어떻게 보면 강아지에게 밥줄때마다 종을 치는 행위와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환자를 모방하는 의도는 멘토의 역할과 비슷하기도 하고, 호기심이기도 한것 같다. 그런 순수함속에서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과정이며, 실천을 통해 환자가 잃어버리고, 잠시 잠재의식속에 묻어놧던 소중한 것을 스스로 찾게 해준다. 각 단편이 여러 에피소드를 보면 거의 동일한 구조가 아닐까한다..마지막장의 여류소설가가 연애소설을 구상하듯.


이라부 같은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 또 그의 꿈과 삶의 고민도 한번 들어보고 싶다. 우린 언제나 나에게 웃어주고, 일깨워주는 사람을 찾는것 같다. 비록 부족하지만 스스로가 이런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적은것 같다.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작은 이런 노력이 많아지면 가족이, 사회가 좀더 따뜻해 질것 같다. 좀더 들어주고, 같이 웃어주고, 맞장구만 춰저도 얼마나 행복하고 긍정적이겠는가. 한 개인들의 작은 노력은 대상에 따라 신도 할수 없는 큰 영향력과 동기부여, 애정. 사랑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만, 젊은이들이 이 책을 많이 봤다는 것이, 상처받은 이라부환자의 입장이 아니었으면 한다. 그럼 너무 화창한 청춘들의 상처받은 고뇌에 마음이 아플것 같다. X세대이전만 하더라도 낭만과 추억을 즐길수 있었으니까. 다만 마지막 여류소설가가 힘차게 두계단씩 오르듯 이런 긍정의 힘을 갖게됬을꺼라 믿고 싶고, 이 책을 통해서 시대의 파편을 본듯하기도 하다. 또 우리집 백성들의 말에 좀더 경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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