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는 동료들과 오래전 퇴사해서 최근에 고기집을 내셨다는 후덕한 부장님을 뵈러갔다. 사장님이란 이름보다 아직도 부장님이란 명칭이 익숙하다. 좋은 고기에 좋은 동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요즘 자신의 존재가치와 자유의지를 회복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형님의 이야기와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힘든 시간은 인생의 구비구비마다 존재한다. 그때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삶의 반증이다. 다만 그 행복한 시간을 잘 알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토요일 늦게 일어나서 길을 나섰다. 책의 제목처럼 그렇게 아버지가 되고픈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이 두녀석의 결혼식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시간을 두고 한다. 축하와 인사를 전하고, 다음 결혼식장앞에서 남은 시간을 커피를 한잔 마시며 보냈다. 눈꺼플에 씌인 마력이 온 몸을 감쌀때 결혼을 한다. 그런데 나도 이젠 결혼식장을 객관적으로만 보아가는 듯 하다. 삶이란 현실은 머리속에서 바라던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속 우는 것은 가능해도 계속 웃으면 죽을 수도 있다. 즐거움이란 짧고, 안좋은 일은 길게 가고, 아무리 없는 평범함이 어쩌면 행복이란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나는 저자의 경험처럼 아버지 속을 많이 썩였다거나, 곧 생일인 별봉이, 큰 녀석 달봉이가 사고뭉치는 아니다. 그렇다고 기계적인 모범이란 굴레로 아이들을 재단해서 좋다, 옳다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가 생기고, 이쁘기도 하고 말안듣고 속섞일때도 있다. 그건 내가 바라보는 모습이다. 그리고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 어색하고 어렵다. 요즘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줄었다기 보다는 아이도 하나의 객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권장할 만한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삶이란 크고 긴 시간속에서 일탈이 궁극적으로 무엇이될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서 교훈을 알 뿐이다. 처음에 기울어진 결과가 나중에 더 큰 오차를 만들고, 기울어진 것을 자각한 순간 빨리 보정을 해야 손실이 적다는 것을 안다. 문제는 정작 급류속에 있는 사람은 잔잔해질 때까지 경황이 없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아이들이 그럴지도 못한다. 그럴때엔 그들의 마음에 들어가려는 노력보다는 그들이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고 나오게 하는 햇님의 방식이 필요한것이라고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하게 된다. 물론 나도 그런 만능대책을 상황에 맞게 내놓을 자신이 없기는 하다. 가끔은 나도 성현이 아닌지라 그렇게 하기 싫다. 고집과 꼬장은 남만 부리는 것이 아니지 않을가?! ㅎㅎ
내가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라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항상 그렇게 내가 제어되는 것만은 아니지만) 관찰자의 입장으로 어머니나 마나님의 생각을 볼때 그러하다. 하지만 나도 그러했고, 앞으로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그럴듯 하다. 가족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남에게 이야기 함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하소연하듯,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를 통해서 실현되고, 그 방향으로 가기를 바란다. 하물며 내가 낳은 자식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다보면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인지, 아이가 하고 싶은것인지 알 수가 없다. 마나님의 한 마디에 도움이 안되는 소리를 하는 눈치없는 남편이기도 하고, 나의 한 마디에 말은 그렇게 하고, 뭐가 안되면 내 탓만 한다는 마나님의 잔소리를 듣는 남편이기도 하다. 나도 집에서 더 내 바람이 더 잘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 같다. 왜냐하면 가족이기 때문이라는 전제를 의식하지 않아도 내면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가족의 구성원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들은 더 친밀하지만 더 높은 긴장감도 갖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결혼해서 아이들과 살아오면서 느끼는 이유다.
특히나 위험한 중년들의 외로움이란 내 말에 진심으로 귀기울여 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고프기 때문은 아닐까한다.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이런 시기가 아이들의 질풍노도의 시기와 겹치는 성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궁핍의 탈출을 가족에게서 기대하고, 압박의 탈출이란 이름으로 가족을 멀리하기도 한다. 아이는 자신의 불만을 주장하고,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 전체의 균형을 찾아가는 엄마의 배려가 섭섭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족이 서로 협력하고 도와가며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각자의 시간과 자유의지는 필요하다. 아무리 잘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마나님,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까한다. 책을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많이 들기도 하고, 좀더 나이가 들어서 아이들과 배낭여행을 가는 그런 기대를 해보기로 했다. 동의를 얻어야 겠지만 아이들도 내가 바라는 것보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이 잘 균형잡힌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래야 더 오래 멀리까지 가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선녀가 아이를 셋나야 하늘나라를 가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 팀 막둥이가 배가 나와서 옷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한참 웃었다. 아이 셋을 키우는 일이 바쁘고 경황이 없고 눈코뜰새 없어서일 듯 하다. 여인에서 엄마로 자신을 강제로 내려놓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말을 하려다 이런 어처구니 없이 멋진 답을 들을 때면 재미있다. 그 과정속에서 나무꾼도 늘어난 가족만큼 해야할 의무가 존재한다. 나무꾼도 사람이고, 휴식과 즐거움이 필요하기는 하다. 그걸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된다는 그 말속에...조금 책과는 다른 엉뚱한 생각이지만...나는 이런 말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그거 다 너 때문이다" 선녀를 납치해온 것도 너이고..아이가 태어난 것도 너 때문이고..뭐 저지른 일이 한두개인가? 그렇지만 이런 사고뭉치 나무꾼도 자책하고 스트레스를 받기에 가끔 가족이란 이름으로 위로받고 싶을 뿐이다. 아이들처럼..사는거 뭐 있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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