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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아보세 (書)

나들이

by Khori(高麗) 2021.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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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시작할 일들을 생각하며 많이 걸어보려고 했다. 아침부터 우연히 찾아본 휴면계좌에서 돈을 찾았다. 이런 일이 잘 없어서 물어보니 아마도 학교다니던 시절쯤 만들었나보다. 공돈이 생겼다.

 


 

 마침 포털에 나온 개항로를 한 번 가볼생각이었다. 일제 식민지시대의 적산가옥은 어려서도 곳곳에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벽돌로 만든 건물들도 많다. 하지만 젠틀리피케이션이 발생한 것처럼 새롭게 올라가는 건물과 구옥들을 보면 운치가 하나도 없다. 유럽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자연스럽다기보단 인위적이란 생각이 든다. 수익을 만들고, 지역을 활성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역을 기억하는 가치를 문화속에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늘도 맑고, 짜장면 박물관이 있어서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문 닫았다. 코로나로 상권들이 주저앉는 것 같다.

 


 

 짜장면을 먹어보기로 했다. 어려서 일명 횡길을 건너면 육중한 검정 철문 속에 중국집이 있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이 아니었지만 짜장면 가격이 150원으로 기억이 한다. 버스비가 30원, 택시비가 50원 정도 했던걸로 기억한다. 운 좋게 아빠 덕에 먹는 짜장면은 집에서 해먹던 칼국수와는 전혀 다른 멋진 맛이었다. 어느날 막내 고모가 짜장면을 먹으러가자고 난리를 쳐서 평일 낫에 못마땅해하는 할머니 모시고 먹으러 갔던 기억이 난다. 짜장면을 다 먹고 집으로 오며 막내고모가 네모난 상자에 든 짜장가루를 사왔다. 집에서 짜장면을 만들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안 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런 기억을 하며 "짜장면 하나 주세요"라고 했더니, 화교분인 아주머니가 "유니짜장 하나요"라고 하신다. "아니 짜장면이요" "그래요 유니짜장". 이거 내가 자주 보던 기술인데. ㅎㅎ 손님이 뭐라하던 내가 팔 것 파시겠다는 불굴의 의지라고나 할까.

 

 간짜장처럼 나왔는데 달걀 후라이가 하나 올라가 있다. 어려서 인심 좋은 중국집에 가면 후라이를 얹어줬다. 간짜장을 시키면 당연히 올려줬다. 대학 다닐때까지 짜장면, 담배가격, 생맥주 한 잔 가격, 당구장 10분 가격이 거의 유사했었는데. 서울에 와서 제일 말이 안되는 음식은 순대였다. 순대처럼 생겼는데 당면만 든 것은 본적이 없다. 두 번째가 간짜장을 시켜도 후라이를 주지 않는다는 두 가지였던 것 같다. 맛있게 먹고 나서 계산을 하러 갔다. "옛날에나 짜장면에 후라이를 얹어줬었는데.."라고 하니 아주머니 "그렇지..그럼 그럼"하며 웃으신다. 

 


 

 밥도 먹고 날이 좋아 좀 더 걸어보기로 했다. 바닷가 근처까지 왔으니 바다 구경도 해 보자는 생각인데...너무 걸었다. 

 

 사람들은 바다를 보면 기분도 좋고 후련하다는데 먹빛 바다를 보면 난 우울하고 따분하다. 크레용으로 칠한 파란색처럼 그런 파란 바다가 좋다. 초록색, 옥빛나는 바다는 아름답지만 속이 후련하다는 생각은 없다. 내 기억에 그렇게 파란 바다, 푸른 하늘, 강렬한 태양, 하얀 구름이 함께 한 장면은 그리스에서 발 담가본 그 바다가 가장 근접한다. 13kg수박이 엄청 달아서 기분이 훨씬 좋아던 기억이 났다. 이런 바다에서 낚시를 하겠다는 아저씨를 보면 뭘 낚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돌아오는 길은 더 이상 걷기 힘들어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천천히 돌아왔다. 옆 자리 할머니가 끊임없이 전화기를 스크롤하시는데, 성형수술, 앞트임, 쌍거풀수술 이런 걸 계속 검색하신다. 그런 연배는 아니신 것 같기도 하고, 손녀라도 해줄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지 그게 여성의 속성이란 생각을 했다.

 

 집 근처에 도착하니 비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진다. 역 앞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있다. 냅다 달려서 편의점에서 우산을 하나샀다. 친절한 아가씨가 비닐 벗기고, 가격표를 가위로 잘 끊어서 준다. 아저씨가 손이 많이 가게 생겼다고 생각하는건가? 새로산 우산을 쫙 펴고 편의점을 나왔다. 

 

 아이고... 우산은 택도 없다. 샌들을 신고 있어서 다행인데 바지가 다 젖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비가 아니라 냇가의 물살을 느낄정도로 물이 흐른다. 아침엔 날씨 참 좋더만... 쫄닥 젖은 모습으로 집에 왔다. 내일부터는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출발해야한다.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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