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몽사몽간에 엉덩이에 주사를 맞는다. 아침잠이 많은데, 어떤 알람보다 확실하다. 가을인데 병실이 좀 덥다. 전체 냉난방이라 에어콘은 못틀어 준다는 말과, 집에서 선풍기 갖다가 틀어요라는 말이 좀 야속하기도 하다. 주사맞고 병든 닭마냥 웅크리고 졸고 있으면 밥이 나온다. 살찔까봐 적당히 먹는다. 밥먹고 식판을 들고 나르는 일은 오전에 해야하는 가장 아슬아슬한 사역이다. 점심땐 주사를 맞으니 아주머니가 갖고 가신다. 정말 고마운데 문을 꼭 닫아주지 않았으면 한다. 되도록 남의 손을 빌리기 싫다. 첫날은 무리해서 혼자 머리를 감아봤는데, 이젠 참기로 했다. 목발집고 칫솔들고 화장실가기도 버겁다.
의사선생이 오셔서 또 다리를 꾹꾹 누른다. 통증은 조금 가라앉았다. 통깁스 해준다더니 약떨어졌나? 약 잘 먹었나? 잔소리만 하고 가시네..오늘은 뭐하나 하는 생각과 메일이고 뭐고 비발디 바이올린 콘체르트를 들으며 마나님을 기두리는데 문자가 왔다. 아들데리고 오후에 온단다. 마나님..아니 마누라쟁이한테 괜히 심통이 난다. 혼자노는 놈, 아픈놈만 괜히 서럽네...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와서 담배를 피는데 날씨가 참 좋다. 시원한 바람도 불고..병실은 왜 이렇게 더운거야..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간다. 전엔 내 갈길 가기 바쁘고, 어쩌다 거리에서 차라도 한잔 마씰때나 생각했는데..지나가는 사람들을 한참 구경했다. 다들 다른 표정,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혼자 목발짚고 정지된 시간처럼 한참 사람구경을 하다 올라왔다.
매우 수동적으로 업무를 잠시 보고 나니 또 왔다. 대형 노란물주머니..저거 맞을려면 5시간은 있어야한다. 게다가 오른팔에 맞으면 왼존으로 젓가락질과 밥을 먹어야한다. 웃으면 왼손에 놔주세요 했더니..글쎄...팔둑이 아니라 손에다 놔줬다. 간호사님이 손을 까닥거려도되요 힘막주지 말고요하는데 눈물 찔끔날라고 한다. 목발은 어떻게 짚고 가라는거지...벽에 부딪치면 창의적인 생각이 나야하는데, 아픈발로 일어서는것 외엔 마땅한 방법이 없다. 갑자기 간호사님이 고단수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쓰고 묶는 방법이 있다니...그러고선 전화로 약 몇개 남았냐고 물어본다. 움직이나 안움직이나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ㅜㅜ
아오~~ 마누라쟁이..아니 마나님이 빨리오셔야할텐데..혼자 노니 마음이 유연한게 갈대같아요.
(사실 좀다 더 있다가는 각각이 벽과 주제별로 대화를 할것 같군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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