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왜 샀을까? 당연히 읽던 책 중에서 잠시 나온 소개글을 보며 카트에 담아두었던 것 같다. 그 책이 무엇이었더라? '다시 책은 도끼다'였었나? 이 달엔 이런저런 일로 책을 띄엄띄엄 읽다 보니 정신이 없다. 전공자가 이 책을 읽는 나를 보며 아무런 말도 없던데. 작은 관심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사람의 마음속은 알기 어렵다. 나도 내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데 타인의 마음은 아주 복잡하고 뒤죽박죽 요물단지임에 틀림없다. 타인의 머릿속과 마음속에 들어가 보고 싶지만 불가능할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누군가 내 머릿속에 들어온다면 이건 완전 재난 상태가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완전 땡잡은 경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상의 대부분을 돌아보면 우린 타인의 마음에 신경 안 쓰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단지 무엇인가 필요하고, 원하는 것이 생길 때만 주위를 둘러보고 어떻게 해보겠다는 조금 얍삽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든다.
책을 읽으며 하나의 원칙으로 정의하고 실험을 통해서 원칙을 입증하는 사례를 보면서 조금 웃음이 난다. 과학적으로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한 결과값으로 입증하는 과학적인 방법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걸 꼭 해봐야 아나?' 이런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긴 일상에서 타인들도 내 생각과 동일하겠다는 과장된 일반화가 대참사를 만드는 것을 보면 필요하다. 이렇게 조금씩 인간, 내 마음의 작동원리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제자백가의 생각 속에 이런 인간의 마음에 관한 생각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즐겨 읽는 삼국지, 수호지와 같은 소설, 사기와 같이 고사와 역사의 기록 속에는 더 생생한 사례가 남아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단지 2-3천 년이 지나서 과학이란 이름으로 이것을 입증한다는 것을 보면 인간이 참 게으르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1. 상호성의 원칙
세상을 살면서 '줄 의무', '받을 의무', '갚을 의무'가 있다는 프랑스 인류학자의 말로 인용되고 있다. 빚은 꼭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칭찬, 감사, 존중, 배려, 경청, 예의, 헌신은 사실 마음의 빚이다. 살면서 타인의 마음에 물질적인 빚은 지양해야 하지만, 이런 마음의 빚을 많이 만들어줘야 괜찮은 삶이란 생각을 한다.
노자가 이 방면에서는 가장 무서운 설득 기술자란 생각이 든다. 베풀어 받는다는 순리를 정책으로 표방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잘해야 내가 뚜껑 열린다고 타인이 뚜껑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완곡하고 소극적 수준이다. 그런가 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막가파식 공정을 휘두르는 함무라비 법전은 대단히 무식하거나 인간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물론 휘두르는 자들은 이걸 공정과 법치라고 하겠지만. 무식한 것들.
2. 일관성의 원칙
'일관성 있는 삶'이 아직도 교과서에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 일관성이란 사람과 사물의 정체성을 인식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수학의 함수처럼 1을 넣었더니 2가 계속 나오면 '곱하기 2' 또는 '더하기 1'이 된다고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복잡한 산식은 각자 알아서 하자. 일상에선 사칙연산이면 충분하다. 그 일관성의 시작은 자기 주도적 의사결정이 큰 영향을 준다.
이것이 꼭 좋은가? 글쎄? 과도한 일관성은 고집이나 땡깡이 된다. 올바른 일관성의 원칙이 중요하다. 이 말에 동의한다면 꼰대들이 왜 '예의염치', '인의예지', '지덕체'같은 말을 하는지 아주 쪼금은 이해하지 않을까? 올바른 일관성을 표현하면 '좋은 습관이 훌륭한 인생을 만든다'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올바르지 못한 일관성은 민폐를 끼치는 일이다. 이경규가 '미친놈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신념도 일관성 아닌가? 부정적 학습(Negative Education) 측면 또는 여집합을 잘 이해했다면 이것만 피하면 되는 임시방편이 나올 수 있다. 책에서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그 선택을 할 것인가를 돌아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그 절박한 상황과 지나간 과거의 시점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정보가 축적되어 과거는 왜곡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믿고 따라온 길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에게 큰 고통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다. 대부분 자기 좋은 것, 한 맺힌 것에 대한 자기 입장과 해석 중심으로 강렬하게 남기 때문이다.
3. 사회적 증거의 원칙
챕터 시작에 '사람들이 전부 같은 생각일 때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월터 리프먼의 글귀가 돋보인다. 신호등에서 3명 이상이 튀어나가면 신호등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반응한다. 이런 원리가 최근에 집단지성이란 이름으로도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인류 문명과 문화에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사람들이 이 원칙과 일관성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랜 전 광고에 모두 "예"라고 대답하는데 "아니오"라는 대답을 해서 히트 친 신한은행 광고가 기억난다. 대세를 따르거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보편적인 말과 대조적이다. 이것은 무엇이 옳다 틀리다의 문제라기보다 상황에 대한 적합성의 문제가 아닐까? 회사에서 임원이 강조하는데 "아니오"라고 말할 용자가 아주 가끔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신념과 용기의 결과는 호출과 호된 잔소리를 동반할 수도 있고, 기가 막힌 아이데이션으로 칭찬을 들을 수도 있다.
내 마음대로 생각하는 중이지만, 살수대첩, 귀주대첩, 한산대첩의 적들이 다들 돌격 앞으로 달려 나가니 나도 따라가야지 하다가 몰살당한 것 아닌가? 그런가 하면 칠천량 해전에서 배설이 내빼서 12척이라도 판옥선을 남긴 건 어떻게 봐야 할까? 인간에겐 절대란 무의미하다는 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미디어 조작, 프로파간다, 마케팅도 통계 분석의 조작적 정의처럼 인간의 인지와 판단에 MSG효과를 낸다. 이런 일들은 타인의 브레인을 좋게 말해 디자인하는 일이다. 디자인이라고 한 이유는 그것이 상대방에게 좋은 가치를 만들어 줄 때다. 나쁜 가치를 만든다면 당연히 세뇌, 그루밍을 한다고 봐야 한다. 가짜 뉴스도 매한가지다. 이런 일을 하는 인간의 부지런함을 볼 때엔 '인간은 게으르다'다는 말은 올바른 방향에서만 유효한다는 생각이 든다.
4. 호감의 원칙
"마음에 드는 영업사원과 합리적인 가격, 두 가지만 있으면 거래는 성사됩니다"라는 사례가 나온다. 나는 이 말보다는 "그놈 하고는 거래 안 한다"라는 말을 더 신뢰한다. 두 가지 말이 같은 의미일까? 마치 집합과 여집합처럼 생각될 때가 많다.
일관성의 원칙에서 예의염치, 인의예지와 같은 꼰대식 말을 했다. 상호성의 원칙에서 칭찬, 감사, 배려, 경청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의 진심을 담은 표현(물론 쌍욕과 같은 부정적 표현과 태도는 제외하고)은 상대방의 마음에 호감을 만든다. 괄호 안의 표현과 태도는 당연히 인간에게 적대감의 원칙을 용솟음치게 할 뿐이다.
그런데 이 호감은 지식과 사실 큰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사기꾼들의 태도와 말, 이상한 종교를 보면, 심리학자, 정신분석 의사가 열심히 박사까지 공부했음에도 이들을 이겨내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능력이란 타고나는 것인가? 그들이 마주하는 리스크는 훨씬 더 크지만, 이익을 위해 더 부지런하게 실전으로 학습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가끔 어이없는 뉴스에 고학력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지식만으로 해결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진심과 진실을 바라보는 눈이 떠져야 한다는 나도 잘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게 된다. 이러니 인간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이건 AI 백날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인간이 만든 오류 데이터만큼 데이터 분석도 오류를 내포할 테니.
5. 권위의 원칙
책에서 나오는 실험을 보며 권위를 지키려는 노력이라기 보단 인간의 잔인성을 더 많이 생각했다. 실험에서 질문에 답이 틀리면 전기로 사람을 지진다. 그것도 계속 전압을 올리는데 모두들 임계치까지 올려서 사람을 지져대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에 사실 크게 놀라지는 않는다. 내가 휘두를 때와 내가 피해야 할 때가 같다면 성인군자다. 인류 역사에 성인군자가 아주 드물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상황이 바뀌면 번뜩이는 두뇌로 판단을 바꾸기 일수다. 이해관계가 걸리면 일관성이 없다(어떻게 사람이 그러냐!)고 비난을 받거나 상호성의 원칙(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과 같은 뒤잡이질이 나올 뿐이다.
대표적인 권위는 어떤 공증된 자격이고 전문성에 대한 인증을 종이에 잉크 찍어주는 일이다. 아참, 동양에서는 인주 찍어서 도장도 찍어준다. 자기가 쓴 문서에 대해 사람들은 일관성을 갖으려고 노력한다. 책에도 그렇게 나오지만, 대부분의 자격증은 남이 나에게 써준 것이 대부분이다. 이 종이와 사람의 불일치성은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다. 운전면허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신체검사를 하고 검증하고 갱신한다. 그런데 종이는 한 번 발행하면 영원한 경우가 많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자격증과 궤리가 벌어지는 사람들이 지천인데 한 번 받으면 영원한 제도가 사실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세상에 송사가 많은 이유가 아닐까? 그나마 기업이란 존재가 가장 이 부분을 잘한다. 직급이고, 직책의 권위고 나발이고 맛이 가면 바로 집에 보내려는 노력을 아주 부지런히 하며 신선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사람 살 맛이 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많은 없다. 불교에서 인생을 생로병사(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다)로 표현했다는 사실을 보면 인간에게 서로 보듬고 기댈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권위에 대해 무조건 불신하는 태도는 경을 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궁금하다면 간단하게 한 번 해보면 뜨거운 맛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인생을 현명하게 사는 방법은 시킨다고 시키는 대로 다하는 것이 아니라 시키는 일이 올바른 일인가 한 번 생각하는 일이다. 무엇이 올바른지 모른다고? 왜 있는지 모르지만 인간의 마음속엔 양심이란 종이 있다. 이게 땡땡 울리면 대개 끝이 좋지 않다.
6. 희귀성의 원칙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처럼 무엇이 귀하다면 개나 소나 다 찾는다. 아이들이 다 커서 잊고 지내던 포켓몬 벽서를 편의점에만 가면 볼 수 있다. "포켓본 빵 없음". 직원이 아이 때문에 매일 동네 마트에 언제 들어오는지 자주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때가 행복하고 좋을 때라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나는 희귀성의 원칙에 좀 둔감한 편이다. 멋진 장식이 든 비싼 몽블랑 펜을 선물 받았지만, 손에 익은 라미 싸구려 만년필이 훨씬 좋다. 이렇게 나만의 손 때가 묻은 싸구려 펜도 유일무이하니 이것도 희귀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타인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갖는다는 욕망과 욕심은 모든 인간이 갖고 있다. 물질, 권력, 명예, 기술, 자원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세상을 굴리는 두 바퀴가 권력과 금권이란 말이 달리 있겠나? 요즘은 대부분 네 바퀴니까, 정보를 더해야 할까? 시간을 더 하고 싶지만 인간은 시간을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단지 타인의 시간을 합법적으로 매입하거나(쉽게 남을 시킨다), 여러 사람의 시간을 합법적으로 매입하거나 (100만 대군이 안시성에 토성을 쌓는 일?) 또 다른 방법도 생각해 보면 있을 것이다.
나는 희귀성보단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인가? 내게 언제 필요한가? 내게 얼마큼 필요한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취미로 레고를 할 때에도 너무 자주 나오는 한정 판매, 스페셜 에디션, 리미티드 에디션이란 문구보다 내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볼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오래전 미인이란 희귀성의 원칙을 쫒다 경을 친 왕들을 보면 이건 그닥 좋은지 모르겠다.
7. 지름길 원칙을 사수하라
이 책에서 말하는 원칙들은 간단하고 합리적인 프로세스에 따라 반응할지도 모르는 보편적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보편적인 사람이 존재하는가? 보편적이란 말은 universal, 두루 다 통용된다는 말이다. 두루뭉술하게 절대적으로 다 통한다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일상의 가벼운 부분에서 이런 원칙들은 머리 아프지 않게 쉽게 의사결정을 도와줄 수 있다.
내 생각은 이런 지름길의 원칙을 사수하면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하던 대로 하다가 골로 가는 길을 걷는다는 사실이다. 인생이 쉽지 않은 이유다. 예전에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는가'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자신의 협상 전문성과 성공 사례가 화려하다. 그 책을 읽고 들었던 생각은 거울보고 협상하면 아주 힘들겠다는 생각이다. 세상엔 언제나 한쪽으로 머리가 튀어 기가 막힌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던 대로만 할 것이 아니라 매사 겸손하고, 준비하고, 점검하고, 확인하는 습관이 가장 좋은 길이라 생각한다.
아직 2권이나 더 읽어야 한다. 그런데 1권을 읽고 설득이란 누군가를 깨우쳐 주장하는 바를 따르게 하는 일이다. 누가 누굴 깨우치는가? 마케팅으로 보면 조금 뒤떨어진 push market의 방법에 가깝다. 세상은 리딩하는 pull market의 방법이 효과적이다. 설득보다 누군가에게 좋은 본(本)이 되고 그 누군가에게 나를 찾는 것이 설득의 심리학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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