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간으로 어제 비행기를 타고, 베가스까지 와서 잠 못 이루는 밤이 되고 있다. 낮에 시애틀에서 온 사람들이 보이던데, 영화 제목이 생각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도착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돌아오니 메일이 잔뜩 와 있다. 그래도 비행기는 올 때 업그레이드 당해서 편하게 왔다.
나도 처맞기 전까진 계획과 상상이 있다. 오기 전에 읽어 본 박종훈 기자의 트럼프 2.0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그렇다고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각도로 세상의 지표와 동향, 정치적, 지정학점 이해관계를 둘러보는 것은 세상을 완전하게 이해하긴 어려워도 폭망을 피하는 혜안을 준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성공하는 법을 배운다기보단, 망하지 않는 지혜를 배운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내게 잘 와닿지 않지만 유발 하라리, 좋아하는 폴 크루그먼, 꽤 괜찮은 시각을 볼 수 있는 짐 로저스가 바라보는 세상을 보면 크게 우리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려하는 점과 깊이는 다르지만 우려의 방향은 그럭저럭 비슷하다. 단지 뾰족한 대책이 없고, 트럼프가 예측하기 난해하다는 말이 어쩌면 더 정확한 표현 같다.
의외로 제프리 삭스, 존 볼튼의 의견이 더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트럼프 시즌 1에서 활약하고, 우리에겐 미북 정책에 아쉬움을 준 볼튼이지만 그의 생각을 보고 참 놀랐다. 우리나라 같으면 저런 소리를 하기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치, 외교의 틀에 무지하다고 하듯 말하는 볼튼의 말은 꽤 놀라운 것이 사실이다. 그의 말처럼 강하고 행패를 부리듯 주장하는 트럼프의 말이 어떤 면에서는 사실이지만 기존 인간의 협의, 협상의 틀을 벗어난 것도 사실이다. 강하면 룰을 지배한다는 약육강식을 철저하게 이용하는 비즈니스적 접근이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제도의 틀에서 비즈니스가 운영되는데, 비즈니스의 틀로 제조를 바꾸기 시작하는 셈이다. 달리 보면 하극상이기 때문에 하늘을 따르는 자 흥하고, 하늘을 역행하는 자는 망한다는 인간문명의 진리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요즘 내게 든 미친 생각은 이렇다. 지금의 트럼프를 예측하려면 한국을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규모가 다르기는 하지만 방식에서 큰 차이가 없다. 트럼프도 법을 통한 정적제거에 대한 공개적 발언을 해오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점을 우려하고, 공무원 개혁을 위해서 과감하게 alignment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제거하고 자신에게 맞는 인력을 정부에 임명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볼수록 익숙한 것은 한국은 그 체험을 벌써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다. 아닌가? 그래서 결과가 어떠한가?
세상은 결핍을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결핍은 불가피하다. 경제학에서도 꺼리지만 파산과 청산, 탕감이란 수단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정확한 균형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엔 인간이 무능하고 게으르다. 안정을 지향하지만 안정되면 심심해서 가만히 있지도 못하는 게 인간이다. 치우치면 결핍을 통해 자각하고, 그 결핍을 채우는 방향으로 운동 에너지를 발산한다. 반대로 기울면 다시 후회하고, 자각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서 결핍을 채우려고 한다. 오뚝이처럼 이쪽저쪽을 헤매지만 계속 중심을 잡으려고 기우뚱 거리며 발버둥 치는 것이 인간 문명일지 모르겠다. 가끔 왜 중용에 집기양단이라고 표현했는지 돌아보게 되는 점이다.
트럼프의 힘을 바탕으로 한 정책을 미리 다 이해하기 어렵다. 상황이 바뀌면 이익의 구조가 바뀌고 생각이 바뀐다. 어떤 면에서 원칙의 크기가 이익에 한정되기에 더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다. 우리가 그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너무 고차원적으로 배경지식과 인간의 역사와 이해관계를 더해서 깊이 있고 상식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정잡배라 생각해 보면 더 편한 것도 같다. 우리나라에서 조폭 하는 짓과 비교하듯 하면 뭐 크게 다르지 않을까? 하여튼 남의 집에 불 지르고 아무 일 없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실력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은 물 건너간 듯 하지만 또 이런 시대가 오리라. 그렇게 인간의 역사는 굴러간다. 내가 지금 운전대를 난폭하게 몰아대는 글로벌 늙은이들을 탐탁하게 보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책은 단지 고상하게 표현할 뿐이지만.
공항 가는 길에 다 읽고, 공항 서점에서 카탈루냐 찬가를 샀다. 왜 샀는지 이유는 특별히 없다. 단지 작고, 배치된 시간들은 상당 부분 읽은 것이라 특별히 눈에 안 들어오기 때문일지도 아니면 내 안목이 그런 거지. 재들은 다른가?
#트럼프 #낸들알겠어 #너는아니? #틴부동 #어떻게든되겠지 #상황대처 #난리법석 #독서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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