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의 말투와 같은 전라도 사투리, 시대의 변화에도 신념과 인간미를 갖고 있는 모습을 느끼며 이상하게 'IQ정전', '허삼관 매혈기'같은 책이 생각난다. 그러나 하중의 상인 고아라의 생각과 말을 통해 현대적 감각과 시대를 바라보는 다양한 의미도 생각하게 된다.
잠시 넓러 둔 책을 달봉이가 보고 나서 "아니 그런데, 왜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은 거예요?"라고 자꾸 물어본다. 난들 알 수가 있나? "그래서 나도 읽고 있단다"라고 답해줬다. 어제저녁엔 축구를 본다고 늦은 밤과 새벽을 같이 보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달봉이랑 별봉이가 나 죽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나이가 들어가며 엄니를 보는 모습과 생각이 전과 다르게 변하는 것처럼 저 녀석들도 그럴까?
시대는 행동은 그 시대의 철학을 반영한다. 그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에 대한 의지가 세상의 운영에 끊임없이 반영된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만 사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를 살아내고 생존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갈 뿐이다. 그 사이에 어떤 이즘, 운동, 혁명이란 이름을 붙이며 조금 더 열심히 움직이는 이성적이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한국전쟁의 시대를 체험한 세대가 생존해있다. 당시 소학교를 다니고 국군과 인민군을 구분해서 알 정도라면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벌써 팔순이 넘은 분들이다. 당시의 시대가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이 밟아온 세상이 그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각자의 원칙을 만들어줬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이성적인 학습방향과 달리, 그 시간만큼 사람들이 사람들의 생존과 본능에 맞게 살아내고 있는 일이 훨씬 많다. 그들 모두 각자의 인생 소설을 쓰고 있는 셈이다.
사회주의, 빨치산이란 신념을 갖고 살아간 사회 속의 한 인간이 아니라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딸의 모습이 참 정겨운 소설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는 시간 동안 아버지의 인생 소설에 등장한 수많은 조연들을 만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고상만이라고 불리는 아버지의 소설을 마음 따뜻하게 볼 수 있어서 좋다.
짠한 여러 페이지처럼 나도 나의 인생 소설을 잘 쓰고 있는가? 나는 부모의 소설을 얼마나 이해하고, 또 어떤 소설을 아이들에게 남겨주려고 하는가? 옘병.. 걱정이 태산일세. 한없이 부족하고 못난 모습이라니.. 흘러간 시간은 오지 않으나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니 다시 잘 시작해 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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