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서문이 재미있다. '더 좋든 더 나쁘든 말이다'라는 문구가 재치있고 사람의 호기심을 끈다. 그 순간 순발력있게 말을 짜르듯 빨리 책을 넘기길 권한다. 글을 쓰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이어가고 있다. 책의 목적과 방향을 자신의 의도에 잘 일치시켰다.
되짚어 보면 머릿속 생각을 말로 전달하는 것에는 상당한 시행착오와 다방면의 학습이 필요하다는 말을 저 문장이 품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장점을 파악하고, 타고난 성품을 학습된 장점을 통해서 보완해야 한다. 책의 서문과 목차를 통해서 이 책의 핵심을 잘 설명하고 있다. 아래의 주제와 설명, 주제별 사례를 읽어 보면 나도 머릿속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고 말로 할 수 있고, 나의 앞에 있는 상대방들이 호응과 과한 리액션을 할 것 같은 기분 좋은 생각을 들게 한다.
1. 소통 - 상대방을 자신과 같은 평면에 놓다
2. 설득 - 상대방의 마음속에 자신의 견해를 각인시킨다
3. 협상 - 갈등을 협력으로 바꾼다
4. 연설 - 언어의 히미으로 청중의 호감을 얻다
5. 토론 - 대립하는 과정에서 제3자의 지지를 받다
그러나!!
하지만 분명 저자는 책을 시작하는 서문 앞 페이지에 이런 글귀를 적어 두었다. 기초적인 수준은 예를 들어 설명이 가능하지만, 배우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생각한다. 나는 저자들이 언어와 말이 사람에게 떠오르는 감정, 의지, 열정, 좌절과 같은 느낌의 정도를 전달하는데 매우 부족할 뿐만 아니라 내가 이해하는 것과 상대방이 이해하는 차이를 균등하게 만들기 위한 말과 언어라는 수단이 매우 거친 수단이라는 것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시와 같은 표현이 더 많은 상상력과 그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높은 표현이라고 부른다.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는 살아있는 오감의 느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감성적인 부분과 이성적인 부분이 합쳐서 인간은 사고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각 장에서 이루어지는 예시와 말하기, 표현력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현실에서 이해했다고 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의 내용을 현실에서 모방하는 과정만으로 저자가 각 장에서 말한 의도를 모두 파악할 수 없다. 그는 분명 더 잘 알고 행동하겠지만, 지면에 그의 느낌과 다양한 변화의 대응법을 기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서문으로 돌아가면 저자는 분명히 제대로 말하는 법이 아니라 "제대로 생각하는 법"이라는 전제와 "저력"이 있어야 한다는 배경을 함께 설명하였다. 책의 말하기 방식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 두 가지에 집중해야 발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손쉽게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노력이 수반되고, 몸으로 익혀 사용할 수 있어야 내것이 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협상과 설득, 토론을 많이 해야하는 해외영업 팀장,부본부장을 하고 있다. 직원들과 소통도 해야하고, 가끔 연설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고객, 기업관련 행사에서도 말을 해야할 처지에 있을 때가 있다.
책에서 언급된 다섯가지 대화의 방식은 일정한 목적을 두고 있다. 일상의 사소한 일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시간을 즐기는 대화가 아니다. 따라서 그 모임의 배경, 목적을 잘 이해하는 것과 상대방과 만나는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 그 대화의 대상에 대해서 다 알 수는 없지만, 대면과 태도를 통해서 그 사람들의 심리적인 상황에 대한 정보 판단도 아주 짧은 시간안에 진행해야 한다.
전자는 제대로 생각하는 법을 넘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디자인하고 그 디자인된 상황과 나의 의도에 따라서 말이 갖고 있는 비유, 은유, 설명을 전개해 가는 것이다. 옛말에 쥐도 막다른 길로 몰지 말라고 했다. 활로를 열어주되 그 방향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이 전쟁의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사람들이 그 방향으로 오도록 유혹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래전 국어시간에 배운 다양한 표현법을 나도 다시 생각하게 될 줄 몰랐지만 변화와 의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 그 변화는 나의 변화에서도 시작되지만, 나를 마주하는 상대방의 다른 의도와 생각이란 정보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그 정보를 입력 받으며 끊임없이 수정 보완을 하는 고도의 작업인 셈이다. 마치 바둑, 체스와 같이 수를 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렇다고 일상의 대화를 이렇게 한다면 피곤한 일이다. 목적이 있는 대화에 대한 일일 뿐이다. 그런데 사소한 목적들도 일상에 많아 보인다.
모든 사람은 목적 의식을 갖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기대한다. 이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준비된 자세가 필요한다. 어쩌다 한 번이란 일들이 발생하고 좋은 결과를 주지만 그 목적에 관한 다양한 전반 지식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다양한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책에서 심리라는 부분을 이야기 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심리적 상황에 처하는 것도 다양한 인간 활동의 결과다. 원인은 다 알 수가 없지만 예측된 상황에서 기대되는 인간의 활동은 그 범위가 축소된다. 물론 예상을 넘어서는 반응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파악하는 다양한 인간의 이해가 곧 저력이다.
여기에 나는 한 가지를 더 하고 싶다. 그것은 준비된 학습과 자신의 경험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상황속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정보 데이터로 처리하여 상황을 인지하는 능력이다. 저자들은 충분히 경험을 통해서 훈련되었겠지만, 이 부분은 가르키는 것이 매 상황마다 다르다. 그래서 가르치키 힘든 것이다.
예를 들어 홈런을 칠 능력과 준비가 되어 있고, 투수가 갖고 있는 현재의 심리상황과 그에 대한 정보 학습이 잘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하자. 그런데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면 축구장에 가서 그런 배팅 능력을 과시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축구장에서 야구 배트를 휘두른다면 바로 퇴장일테니 말이다.
나도 이 글을 쓰며 배우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 판단은 자신의 오감을 통해서 추가적인 정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해서는 다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일명 "눈치가 없어"라는 말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안으로만 오감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상황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면 우리는 약속과 기록에만 의존한다. 상황의 변화가 있더라도 이 부분은 중요하고 지켜져야 한다. 상황의 변화가 발생하면 상대방의 조정 의사를 기대한다. 하지만 나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진심이 결국 사람을 이끄는 힘이다. 결국 위에서 말한 목적성을 갖는 5가지의 대화는 주도권을 잡아 타인을 리딩하는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무지한 자가 리딩을 할 수 있는 방법이란 물리력의 유혹을 넘어서지 못한다. 누구나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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