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다. 돌아가지 않고 삶을 마주 대하고 나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폐부를 찌르는 통렬한 설명과 당위성에 대한 호소가 귀속을 맴돈다. 총보다 펜이 무섭다고 하지만 그 펜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정신은 더욱 강력하다. 말이 한 세대를 가고, 글이 백년을 가고, 정신이 천년이 간다는 말 속에 우리는 그것이 철학적 사유와 위대함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EBS인문학 강의를 술마시고 퇴근하다가 잠시 보다 한 마디가 머리속을 섬광처럼 지나갔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보다 보여지는 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교육이라는 균등한 학습체제로 통일성을 갖게 된 반면, 생각하는 힘과 호기심을 거세당한다. 지식이 권력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는 이유다. 그의 강의를 일일이 보고, '도덕경'을 보고, 불교방송에서 하는 강연에도 한번 가보고, 다시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보고 또 그의 다른 강의들도 찾아보았다. 책 속의 이야기가 그의 사유의 연장선이기에 강의속의 이야기가 또 다른 흐름과 목적의식을 갖고 흐른다. 강연에서 책에 배서도 받고, 당돌한 질문도 해봤다. 내가 철학자와 같은 수준의 사유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내 수준에 달린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학교가서 같은 수업 시간을 보내고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설명할 길이 없다.
개념적으로 책에서 설명하는 과정은 잘 이해가 된다. 어떤 과정은 해 보았다고 생각하고, 어떤 수준에 와 있는지는 이 책을 통해서 내 수준이 어떤지도, 또 내가 망설이는 것이 무엇인지도 도움이 된 것 같다. 아마 공부가 재미있었던 것은 고등학교시절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리 공식을 일일이 증명해봤을 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한참 사회생활을 하다 책 읽기는 하면서부터다. "고등학교때에 그렇게 했으면 명문대는 어디던갔겠다!"는 마나님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다. 그냥 조금 공허하고 허전한 상태에서 호김심이었다. "아~ 분명 나랑 비슷한 옛날 놈들이 있었을 테니, 그런 놈들은 어떻게 했나 찾아보자"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 지식의 습득을 거쳐 조금 지나서는 의심을 갖고 책을 읽게 되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읽기도 했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전과도 아니고 답이 있는 것이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만난 책들과 책을 읽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분명 나도 따르고, 스스로 해보고 하는 과정이었다. 아마도 독립이란 과정을 지나쳐보려고 아둥바둥대는 수준이 현재의 나라고 하면 너무 높게 평가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풀어가는 과정을 보면, 사건과 결과를 먼저 보여준다. 일상에서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부러워한다. 그리고 그가 해온 과정을 꼬치꼬치 물어보고 따라해 본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이정도의 내용을 갖고 있다. 책에서는 동아시아의 개방의 결과와 이를 극보하려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선진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책에서는 설명된다. 그리고 동일한 제도를 이식해서 운영해도 좁혀지지 않는 격차에 대한 고민한다. 마치 자기계발서를 읽고 따라해도 잘 안되는 것과 같다. 나는 그 이유가 내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저 놈들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한거지?", "왜 나는 저런 생각을 안해본거지?"라는 질문을 통해서 그것이 내 사유의 것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의 대단한 저자들이 평범하지 않듯, 철학을 통해서 자신만의 생각하는 힘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다. 그들을 우리가 글로 써진 작은 내용을 읽었다고 쉽게 범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절실함과 현재를 부정함으로써,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결핍을 인식하고, 그것을 찾아서 채우는 방향으로 생각이 이동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좀더 다차원적인 접근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나는 공자가 말한 일이관지라고 생각한다. 같은 것을 배워도 다르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은 개개인의 사고력에 따른다. 그 사고력이란 그 대상에 애착을 갖고 면밀하게 보아야 한다. 유홍길이 말하고 대중에서 전달된 말처럼 애정을 갖고 자주 보게 되면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게 된다. 그 새로운 것이란 대단히 큰 것이 아니다. 견소왈명이란 말처럼 그 작은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현격한 결과의 차이를 만든다. 마치 만년 2등이 1등의 벽을 넘지못하는 관계처럼 별거 아닌듯 하지만 쉽게 극복되지 않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선진국과 이를 따르는 중진국, 후진국들과의 격차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을 저자가 설명함으로 저자는 젊은 미래 세대가 학습된 보편적 지식과 고차원적인 사고력을 함향하는 길을 진심으로 호소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은 많은 젊은 친구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특히 책에서 상당히 논리적으로 생각, 생각하는 법,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말을 아주 정밀하고 연계성있게 설명하고 있다. 나도 이 책을 보면서 꽤 많은 말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됐다.
좀더 나이가 들면 나도 내가 지키던 자리는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아이들을 후원하는 위치가 되어갈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내가 선수가 아니라 코치가 되어야 하고, 코치가 되어야 할 준비도 함께 하며 살아가야한다. 인간에게 하나의 큰 기쁨중의 하나가 내가 배운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일이다. 내가 먼저 해보고, 경험과 지식을 쌓고, 나의 유효한 생각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대체 누가 나에게 손을 뻗어 도움을 구하겠는가? 그 과정을 통해서 내려놓는 것을 알아간다면 50쯤 되면 지천명이란 말에 걸맞는 삶이 될 듯하다. 그것을 더욱 열심히 한다면 성인들이 말하는 이순이라 단계도 멀지 않을 것이다.
철학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 철학적 사고를 통해서 나를 찾아가는 것, 나를 찾고 이를 통해서 내가 살아가는 주변을 함께 찾아가는 것을 이렇게 잘 정리한 책을 보기 드물다. 나는 이야기속에서 저자가 말하는 미래에 대한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려는 진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계량적 효율과 경쟁을 통한 신자유무역의 시대가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달이차면 기우는 방향으로 움직이듯 그런 현상에 대한 움직임은 존재한다. 4차 산업이라는 효율지향의 거대한 트렌드도 신자유주의적 발생에서 기술적 접근이 변경된 부분을 제외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는 그 연장선상에 존재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철학이 아직은 덜 구체화된 시점이기에 확실한 대립도 도 없이 혼란스럽다고 생각한다. 단지 경제문제가 어려워질수록 우경화되고 쌈박질을 하는 인간의 역사가 걱정될 뿐이다. 현재는 사람의 존재 의미와 역할이 퇴색되어지고, 아주 뛰어난 소수의 지적능력에 의존하는 방향의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모든 문명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고, 사람의 역할, 사람이라는 존재만으로 갖는 의미를 되새기는 방향으로 인간의 사고는 발전되어 왔다. 선진국이란 나는 이런 인간에 대한 고민이 좀더 깊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경제발전이란 물질의 양적발전과 별개로 다음 시대는 다시 인간을 기계위에 군림하는 존재의미를 되새기는 시대가 되길 바란다. 그럴려면 우린 다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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