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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_경제_IT(冊)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주 잊는 것 - 밥 프록터 부의 원리

by Khori(高麗)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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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기대를 하지 않지만  가지 호기심이 있어서 읽기 시작했다. 그 의문점이란?

 

 1) 나는 그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을까?

 2) 내가 모르거나 잘못된 것은 어떤 것일까?

 3) 그런데 잘하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기 시작하며 Believing is seeing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최진석 교수의 노자강의에서 "보이는 대로 보는 사람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사람을 이긴다"라고 했던 말이 다시 한번 생각난다. 세상을 가끔 관조적으로 바라볼 순간 속에 노자적 접근법이 왠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생각, 편향을 많이 갖게 된다.  책을 읽으며 지나간 여러 자기 계발, 부의 축적에 관한 책들을 생각해 보다 묘한 공통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내며 사고력은 엄청난 경쟁력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 내가 동경했었던 제갈량의 사고력이 이젠 인공지능이란 아직 불완전하거나 불안한 시스템이 대체하는 시대다.  속에서 사고력이란 엄청난 지식의 습득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인간은 기계만큼도 학습하지 않고, 기계를 쳐다보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시대다. 

 

 이런 생각의 확장, 연상, 상상을 하다 보면 책의 말이  이해된다. '돈을 버는 것은 타인의 니즈와 원츠를 충족시키는 일과 직결된다'는 말이 나온다. 10여  전부터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문제(타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 내가 하는 일을 연결하곤 한다. 부란 그런 과정에서 보답의 형태로 귀결되는 결과라고 생각을 바꾼 지 오래됐다. 지금은 배워서 남주는 것이 맞는 말이란 생각도 하게 되었다. 단지 산업 고도화로 필요(needs)의 분야보다 욕망(wants)의 문제에 집중해야 부가가치가 창출이 커진다고 믿는 단계가 된 듯하다. 

 

 자전거를 모르고, 자전거가 사람보다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워간다. 부의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하는데, 최근에  '세이노의 가르침'에 나온 말을  하면  좋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 똑바로 앞을 보고, 손으로 가려고 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조작하고, 페달을 도착할 때까지 굴러야 한다는 것이다. 발을 멈추는 순간 정지하거나 자빠지거나 한다.  설명을 보면서 뒤편에 나오는 시간의 개념을 설명하면  해석은 그렇다.

 

 올바른 방향이란 자신이 바라는 바다. 그 방향과 목적을 잊는 순간 의미도 사라진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내가 어떤 길을 선택했는가와 페달을 얼마나 열심히 굴렀나(학습과 경험축적)에 달린 일이다. 이것은 어느 분야에 적용할  있는 본질적인 생각이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더하면 우리가 학습, 지식확장, 경험축적이란 기름을 나라는 엔진에 계속 부어야 하는지 이해할  있지 않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이 내게 들어와 자리 잡은 지식과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에겐 매우 희망적인 조건이다. 그럼에도 세상에 문제가 없던 날이 없는 이유라면 게으름이 아닐까? 누가와 비교하는 게으름이 아니라 마음에 달리 저울이 울리냐  울리냐의 기준에서. 그러다 게으름이 문제를 정통으로 맞는 날이 뭐.. 엄청 개 피곤한 날일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시간은 하염없이 흐른다. 대환장이지!

 

 무엇을 오래 했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몰입'이란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몰입의 차이가 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듣고, 성적이 천차만별로 나오는 이유라고 하면 과할까?  심하게 오래 했다는 것을 더욱 건조하게 말하면 직급이 높다고, 나이가 많다고 잘하는 것이란 근거는 없다. 오래했는데 처참하게 못하면 조롱거리만  뿐이다. 오래했다는 것은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가능성일 뿐이다. 고래도 기쁘게 할 인정이란 내가 잘하는 것을 통해서 타인을 돕는 수준으로 결판이 난다. 

 

 한 가지 책을 읽으며  생각을 더하면 학교에 관한 것이다. 현재와 같은 근대식 학교는 산업혁명  기계를 다뤄야 하기에 만든 제도적 기구에서 출발한다. 동양의 지덕체를 갖춘 성인을 만들고자 하는 취지보다는 매우 낮지만, 대단히 효과적이다.  근본적 구조를 이해한다면 학교는 돈도 받으면서 '딱 부려먹기 좋은 수준까지'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상도 가르칠  없고,  권위에 위협이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도 높다. 어느 분야보다 도제제도처럼 권위와 똥고집이 막강한 곳이 학교 아닌가? 

 

 세상에 나와서 멘붕과 현타를 직면하는 현실은  수준의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제갈량을 동경하는 부작용이랄까? 주어진 여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의 훈련만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난생처음 보는 조합의 난장판일 때가 많다. 이런 훈련을 학교에서 하기 어렵다. 어쩌면 '부리는 자의 수준'(유비나 세종대왕처럼... 무서운 분들임)을 알아야 하는데 아무도  가르쳐 준다. 심장약허처럼  알려주는 것인지, 똑 부러지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인지, 우리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인지  수가 없다. 하지만 세상에 남겨진 많은 종이 위에  작은 퍼즐들의 기록이 남아 있다. 100점이 만점이라면 20-30점이 아닐까 한다. 그래도 조각  개를 배웠고 작은 조각을 통해서  퍼즐을 맞춰보려는 노력 중이다. 아이들에게도 푸념 속에 "내가 니들 나이 때 최근 10년간 읽은 것을 했다면 뭐가 달라도 달랐을 텐데"라는 말을 가끔 하게 된다. 

 

 자기 계발서는 여러  읽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권을 제대로 읽고,  핵심을 삶에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의 개념을 활용해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책대로 하면 세월이 흘렀는데 똑같이 되겠나? 또한 책도  읽으면 뭐가 되겠나? 당연한 소리 같지만 우린 당연한 것을 안 하고, 아무런 해결도 되지 않는 걱정과 베프를 삼으며 게을러지는 것이 문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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