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연차 내고 쉬지도 못하고 조금 억울하다. 짬짬이 영화를 또 보게 된다. 아저씨가 할 일이 별로 없고, COVID-19로 싸댕기지도 못하니 그렇다. 어린이도 어른이도 화창한 5월에 무료하긴 매한가지다.
무협은 유튜브에서 나오는 영화 소개로 알게 됐다. 탕웨이가 나온다. 이쁘거나 매력적이란 생각은 없다. 그래도 만추의 마지막 장면 속 여주인공은 인상적이다. 풍경이 울리고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으면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무심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의 모습. 화면 밖의 무엇을 상상하게 하는 그런 장면 맘에 든다.
그러나 무협이란 영화의 주인공은 견자단이다. 무술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무술 영화라고 하기도 그렇다. 자신의 죄와 업을 지고 사는 주인공이다. 그 업을 피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에는 항상 업의 굴레가 돈다. 그 업의 굴레가 만든 사건을 금석무가 쫒는다. 상왕의 법술처럼 그는 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법을 지키는 과정 속에 불법과 또 다른 업의 굴레가 돌아간다. 삶이란 참 희한하지? 맘먹은 것은 되는 것이 별로 없고, 느닫없이 날아오는 사건이 우리의 생각을 계속 바뀌도록 재촉한다.
둘은 서로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으로 둘의 굴레를 하나로 만든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 더 큰 굴레에 맞서게 된다.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기대한다. 나쁜 기억을 뒤로하고.
노매드랜드는 글쎄? 작년에 읽은 제인스빌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니 제인스빌 이야기의 비디오 버전이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단 이런 현실이 각 시대마다 존재한다. 세상의 변화는 항상 누군가에게 영광을 주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후폭풍을 가차 없이 날린다.
제인스빌 이야기가 GM의 떠난 마을 그렸다면 노매드랜드는 예전 폐허가 된 탄광촌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아주 어려서 방송에서 보던 탄광 매몰 사건은 언제부터인지 기억에 없지만 뉴스에서 사라졌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런 마을 뒤로 하고 떠나는 주인공과 함께 시작한다.
어떤 추억이 담겼는지 소중하게 안아보는 옷, 종이에 하나씩 소중히 담는 접시는 할머니의 유산이다. 손때 묻는 모든 것들 속에 그녀의 인생과 추억, 슬픔과 사랑이 담겨있다. 그러나 현실은 폐허를 뒤로 하고 길을 나서는 한 명의 여인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 이름이 펀이다. 정신 승리법인지 그럼에도 삶의 즐거움을 찾아서 떠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자본주의 시대의 꽃으로 상징되는 플랫폼 기업 아마존에서 일을 한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문을 닫으면 계약 일급직인 그녀는 다시 돈을 벌기 위해서 길을 떠난다. 세상의 경제시스템이 자본주의는 생존을 위해서 일감을 찾아서 사람들이 몰린다. 이 장면을 보면 나는 한 곳에 살고 있고, 특정한 기업에 종사하는 것 같지만 내 삶의 시간을 돌아보면 내가 일을 쫒고 있는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인가? 하다 보니 계속하고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든다. 아니면 케인즈의 말처럼 상황과 사실이 바뀌면 나의 영특하고 재빠른 두뇌가 뭘 해야 한다고 자꾸 생각을 바꾸는지 모르겠다. 단지 기분이 가라앉는다.
유목민이 가축들의 목초지를 따라 떠돌듯, 그녀는 일을 찾아 떠난다. 그러다 따뜻한 남쪽에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유목민처럼 세상을 주유한다. 스웽키처럼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세상의 여행을 끝낼 때 모닥불에 돌을 던지며 그녀를 추억하는 사람도 있다. 그 속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 길을 나선다. 왜 그들은 여행을 시작했을까?
인간은 누군가의 사랑의 결실로 이 세상에 태어나 인생이란 여행을 보낸다. 그런데 그 인생이란 여행 속에 다시 현실의 여행을 한다. 그것이 유랑인지 여행인지 알 수 없다. 잠시 현 세상에 가장 영향을 주는 자유란 철학적 주제, 그 철학을 잘 반영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완벽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보다 나은 시스템을 아직 갖고 있지도 않다. 그 속에서 경제적 빈익빈 부익부와 같은 계층과 극단의 문제가 존재하지만 인생은 그것보다 훨씬 소중하고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것이 인간에게 다가오는 또 다른 고민과 갈등이 아닐까?
'행복으로 가는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내가 제인스빌 이야기에서 읽은 가장 인상적인 내용이다. 노매드랜드를 보면 같은 생각이 든다. 소중한 접시가 깨져서 속상하지만 또 그가 만들어주는 멋진 음식을 같이 한다. 그래서 인생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순간순간의 슬픔, 억울함, 분노가 생기지만 이것을 인내해가면 한 발 한 발 걸어간다. 인생은 참을 인자를 안고 묵묵히 걸어가는 여행인가 보다.
노매드랜드의 배경을 보면 아마존이 나와도 평범한 날이 나와도 날이 참 우중충해서 우울해진다. 그러나 늦은 저녁의 황혼은 참 아름답게 나온다. 그 영상의 구조가 아이러니하게 보이다 황혼과 같은 인생 늘그막에 정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가 하면 길을 달리는 밴의 꽁무니를 쫒는 피아노 소리가 참 좋다. 길을 떠다는 밴은 쓸쓸한데 그 화면을 감싸고도는 피아노의 운율이 대조적으로 좋다. 뉴에이지 음악과 같은 피아노 소리가 여운을 깊게 한다. 마치 인생에 인내를 품고 가지만 항상 음악과 같은 좋은 것들에 둘러싸여 한 발 한 발 더 나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든다.
에이미 골드스타인 저/이세영 역
세종서적 | 201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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