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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아보세 (書)

뭔가 될똥말똥 재미가 없다니까

by Khori(高麗) 202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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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괄사업본부장을 맡고 부터는 어째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고, 봄이라 꽃이 하나둘 피는데 마음은 오늘처럼 비오는 밤같이 우중충하다. 추야우중이란 시를 아주 오래전에 배운것 같은데 오늘은 춘야우중이네. 내일은 대략 예상이되고, 한 달뒤는 아리까리하고, 일 년뒤는 글쎄라는 마음이 왠지 모르게 사람을 쳐지게 한다. 내 생각에 원인은 뭔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신이나고 재미있어야 하는데.

 

 퇴근길에 후배랑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마스크한 이국적인 소녀가 주문을 받는다. "솔직하게 본인한테 급냉동 삼겹살이 맛있어요? 생삽겹살이 맛있어요?"라고 물어봤다. 동남 아시아에서 온듯한 아가씨가 "냉동 삽겹살"이라고 완벽한 한국어로 답했다. 그걸 주문했다. 날도 그래서 식당앞 야외 자리에 앉았는데, 돌판의 높이가 어정쩡하다. 기름받이 종이컵을 잘 놔두고 갔지만 요즘 내가 뵈는게 없어서 여러번 봤다. 기름은 종이컵이 아니라 반대쪽에 고일것 같다. 야외용 가스레인지 위에 불타오르는 돌판을 움직이기가 어렵다. 되는대로 아예 야외 탁자 다리 한 쪽에 접시를 뒤집어서 높이를 맞췄다. 조금 미안하지만 마땅한 도구가 없었다.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고기가 참 이상하게 익어가고 있다. 삽겹살 기름이 나와서 다시 삽겹살이 기름을 먹고 있는 듯한 느낌적 느낌. 한참을 다시봐도 불은 있는데. 희한하네. 한참을 기다리다 반대편에 앉는 후배 녀석이 자꾸 쉰네가 난다고 한다. 나는 안 난다. 코로나 감염자의 경험을 들어보면 냄새도 맛도 못 느낀다는데. 누가 이상한 거야? 정체를 찾았다. 콩나물 무침이 살짝 맛이 갔다. 불러서 "이거 쉰거 같아요"라고 말하니 못알아 듣는다. 접시를 하나 달라고 하니 갖고 온다. 잘 담아서 반납해줬다. 그런데 이놈의 고기는 여전히 잘 익지 않는다. 떠들던 후배가 "아하 그래서 안 익는구나"라며 불이 약불에 있었다고 한다. 배고프다더니 얘도 뵈는게 없네. 

 

 그런데 급냉동 삼겹살이란 메뉴 좀 별루다. 일단 고기를 굽는 과정이 아주 산만해서 그렇게 된듯 하다. 이번엔 생삽겹살을 조금 더 주문했다. 급냉동 삼겹살이 나왔다. 바꿔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확실히 생삽겹살이 낫다. "이야~ 내가 그렇게 질문하면 솔직한 답이 나올거라고 생각했는데 쳇 내가 낚인거네. 하하하 아님 네가 불을 안봐서 그런거냐 아님 내가 고기를 잘 못 굽기 때문이냐? 알 수가 없네"라고 했더니 뭐가 좋은지 신이나서 웃는다. 주문한 김치찌게는 일단 안 나왔다. 에라 모르겠다 김치를 조금 더 달라고 해서 돌판에 밥을 잘 볶아서 둘이 잘 먹었다. 

 

 둘이 오래전 지인에게 같이 선물을 받았다. 볼펜을 받았는데 둘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나 때문인지 얘도 라미 만년필을 쓴다. 그 때 지인이 자기가 안 쓴다고 명품 가방을 후내 녀석에게 하나 줬는데 화장실에 갔더니 그냥 바닥에 놓는다. "야 그거 인생 가방할거라며?" "지금 뭣이 중한디요" 어쭈.. 화장실 바닥의 명품가방과 뒷다리를 한 장 찍어줬다. "이야 볼만하다 볼만해"라고 했더니 "이거 분명 나중에 사진을 깔꺼같은데..ㅋㅋㅋㅋ"란다. "그럼 아까 생각했어야지 ㅋㅋ" 나도 이 녀석 물려 받은 인생가방을 줬다. 은행장이 친구같은 유럽 고객에게 주고, 그 고객이 나를 주고, 나는 이 녀석줬다. 문제는 세월을 품어서 리폼을 좀 해야하는데 잘 해주는 곳도 없고 해주는 곳은 가격이 어마어마 하다. 나이가 60살은 한참 넘는 가방이다. 다 잘됬다는데 나는 뭐 이게 잘 된건지 일만 많은 저주인지 아리까리하다. 쳇.

 

 어째든 밥은 대강 철저히 잘 먹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그렇다. 회사에서 한 놈은 전화를 와서 해놓으란 건 안 하고 깔짝깔짝 지 필요하것만 떠들에 댄다. 거참..딱  표현하기가 거시기한데 이번주가 대략 이런 분위기네. 내일은 업체 미팅인데 가서 "그렇다고 합디다"와 "그러게 말입니다"만 갖고 미팅을 해볼까 그런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전에 '가끔은 제정신'이란 책을 봤는데 내 생각엔 요즘 "어쩌다 제정신"이란 확신이 근거없이 팍팍 생긴다. 뭐든 재미가 있고 신이나야지.. 이런거 보면 봄은 봄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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