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뒹굴거리다 어른신들(췟, 약주 한 잔 드시더니 형이라고 불러라라는 강력한 주장이 나옴) 호출로... 읍내 출타를 강행했다. 하필 약속장소도 피카리디 극장 앞이란다. 전화기도 없고, 삐삐 있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땐 시간 약속 안지키고 제시간에 안나타나면 장유유서에 따라 끝날때까지 잔소리가 따라다니지 않았나? 어떻게 보면 과학문명이 덜 발전한 시대가 더 정확하고, 더 정확하려고 노력하던 시대가 아닐까 그런 착각이 든다.
순신이형 다리 아파도 땡땡이 안치고 잘 서있나 보고 왔다. 수 십 년째 저 양반도 일관성이 대단하다. 난중일기를 보면 그 일관성 무섭다. 순신이 형 봤으니 읍내 책빵에 들렀다. 일단 규모가 크다. 볕이 따뜻해서인지 사람들이 분빈다. 그 와중에 생각회로가 과거에서 돌로 계신지 옛날 큰 감동 때문인지 외국 국기를 소중히 간직하시고 다니시는 분들도 보인다.
베스트셀러, 경영, 경제, 역사, 인문의 입구부터 포진되었다. 아 그전에 멋진 키요스크가 뭔가 했더니 얼굴찍도 온도 잰다. 사실 밖에 덥거나 춥거나 하면 하나도 안 맞는다. 내 생각에 찜통 여름이 시작되면 들어오자마자 "삑, 삑, 코로나 코로나" 이런 소리가 나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조금 무감감해지는걸까? 1년 넘는 창살없는 감옥살이가 '뭐 죽기밖에 더하겠냐?'라는 무지와 무모함으로 슬슬 무장되는걸까? 민폐 줄이려면 조심해야지.
아무도 모르게 소중하게 감춰뒀던 5만원짜리 상품권, 냅두면 썪는다. 지난주 살까말까를 고민하고 어젠 이웃집에서 사보겠다고 한 책을 샀다. 그리고 제목이 소중하고 이쁜 책도 하나 샀다. 마지막으로 그 책빵에서만 파는 츈향뎐을 하나 샀다. 조선시대 츈향뎐을 조선시대 방식으로 규정하면 지금 어떤 장르와 소설일까? 그리고 투자, 주식투자, 미국주식등 투자책이 엄청나게 많다. 이젠 주식놀이도 그만 할 때가 다 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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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예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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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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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원 주 |
돈이 좀 남는다. 또 뭘 사볼까~~ 갑자기 필통이 눈에 띈다. 필통, 필통? 이건가? 아니지 만년필 잉크를 살까? 1회용 잉크 카트리지를 살까? 현찰로 챙겨?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구경중인데 어르신 연락이 온다. 사실 연락이 아니라 내 SNS에 댓글을 막 쓰신다. '얼른 안 오나냐?' 헐~
이럴땐 첫 생각? 필통을 하나 뽑아들었다. 계산대로 가면서 하나 더 집었던 구운몽은 소장용이 될꺼 같아서 취소했다. 그러고보니 예산초과. 상품권도 주고, 카드도 주고, 급하게 가방에 책을 넣다 츈향뎐 표지가 찢어졌다. 바꿔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여기도 뭐 남아야 장사를 하지.
28분이 남았다. 이젠 피카리디 극장에 가야한다. 이 근방에 내가 출몰했던 이유는 친구, 데이트, 치킨, 생선구이, 골뱅이 무침등 먹는거랑 마시는거, 극장, 학원, 어쩌다 돌팔매질, 일년에 한번 종치는 날 종각 근방에 나오봤던것 같다.. 그런 시절이 벌써 한참 전이다. ㅎㅎ 옛날 생각하며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 약속시간 3분전에 전화가 온다. "어디여? 안 오냐?" 웃음이 난다. "3분 남았구요, 곰방 눈앞에 나타날꺼에요~"
극장앞에 도착하니 첫 직장 이사님, 연구소장, 실장 아저씨들이 나와계신다. 나보고 호리호리하더니 20kg나 돼지가 됐다고 이구동성을 놀리신다. 갑자기 이사님이 앞장을 서신다. 읍내 한복판에 나와본 적이 가물가물하다. 미국갔다가 오신 실장님도 연구소장님도 "여긴 난 모른다"를 주장하는데 나도 새롭게 등장한 단성사가 낯설다. 그렇게 이사님을 따라서 시장 골목을 들어서니 여긴 난리다. 5시가 조금 넘었는데 여긴 어딘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젊은 청춘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삽겹살, 갈매기살 치킨등 온갖 고기가 불판에서 볶는지 튀기는지 바쁘다. 코로나 시절인데... 이거 실화냐? 자리가 없는데 이사님 주인장과 솰라솰라하시더니 건물을 관통해서 초벌구이하는 주방앞에 한 자리를 마련했다. 우리만 한적하게 앉으니 좋긴한데 주변을 보면 뭐라 할 말이 없다. 태국 키오산 로드, 베트남 맥주거리, 유럽은 주말 벼룩시장 한복판의 소시지 BBQ, 처음 나온 와인가게 맥주가게와 비교해도 쨉이 안된다. 근방 전체가 난리다. 코로나만 아니면 편하게 먹기 좋겠지만 하여튼 읍내는 여러모로 다르다.
사는 이야기와 옛날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항상 중요한 주제다. 당구도 한 판 치자고 하셨는데 나는 한 개도 못쳤다. ㅎㅎ 이렇게 저렇게 은퇴하시거나 아직도 업종에 다들 계신다. 환갑에 기사자격을 땄다고 자랑도 하시고. 갑자기 단톡방을 만들라고 해서 만들었더니 한 분이 안 보이신다. 최근에 전화를 바꾸시고, 카톡도 새로 가입하셨단다. 방 이름도 전화기를 모두 받아서 통일해 드리고 확인했더니 또 추억의 인물들을 방에 막 초대하신다. 그렇게 방장이 됐다. 나이가 어려서. 그 대신 어르신 빼고 형이라고 불러라라는 강력한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방장인데 3달에 한 번씩 소집령을 내리시라는 엄중한 명령도 있다. 뭔가 손해나는데 기분 나쁘지 않은 느낌이랄까? 몇 일전 회사에서 승진한 이사에게도 축하한다고 전화하고 "내가 형이다아아~"하는 나도 뭐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주말을 이렇게 보내면 체력이 문제다. 뒹굴거리면 아래 책을 보며 나도 미쳐간다는 저자의 생각을 돌아보며 웃다가 나도 너도 미쳐가고 있구나 뭐 그런 생각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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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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