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눈에 짜릿한 감각이 살아나는 것으로 보아, 슬슬 맛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눈도 살살 아프고 저 단전까지 전해지는 허전함은 무리하고 있다는 신호다. 밥을 못 끊으니 밥벌이를 나가라는 김훈 아저씨 밉다. 그 부분을 찾아 읽고 책을 한 번 던졌다가 다시 꽂아두었다. 그 책을 보면 그 부분만 생각난다. 당연하다 거기만 찾아 읽었으니까!
출장을 다녀와서 2주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고객 방문 미팅, 사장님 낙하산 업체 계약서 뼈대를 잡아주고 왔더니 이번엔 NDA를 보내오셨다. 추가로 곧 일본에서도 계약을 할 텐데라며 말을 흐리시던데. ㅡㅡ;;; 정작 내가 해야 할 계약서는 열어보지도 못했다.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우선 공급계약서부터 개 발에 땀나듯 정리해서 발송했다. 우리 회사 노인 양반들은 친절한 멘트로 "하루면 돼애애애애?"라는 질문이 온다. 하루 만에 했다. 이게 문제다. 두꺼운 개발 계약건은 고객사에 한 주 미루자고 메일을 썼다. 우리 사업본부 막내가 박장대소를 한다. "진짜 charlie라고 써서 한참 웃었어요?"라며 리액션을 한다. "재밌냐아아~"라고 대꾸해줬다.
우리 회사에도 법무담당이 있는데 국내 계약서만 본다. 나한테 계약서 몰아주기가 됐다. 법조인을 고용해야 한다니까 자꾸 시킨다. 이렇게 가성비를 올리며 맛이 가는 거 기분 나쁘다. 우리 엄니가 알면 아주 끝장내 줄 텐데. 부하직원을 시키면 부하 뇌동(腦凍)이 된다. 온갖 하소연이 나온다. 조그만 더 하면 이젠 맡겨도 될 텐데 택도 없다는 전략이라면 전투태세로 나온다. 내년 정도면 맡겨도 될 텐데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이 녀석들이 고객사에서 계약서 누가 보냐고 했더니 "우리 회사 charlie가 담당이야"'라고 시작된 농담이 일이 커지고 있다. 우리 자회사 사장이 "charlie가 대체 어떤 녀석인데 이렇게 꼬치꼬치 태클을 걸어"라면 항의가 왔다. 난 모르는 일이었어야 했다. 자영업을 하던 친구가 virtual secratary로 Oksana를 둔 것보다는 낫다. 혼자 두 개 처리하다 실수가 많아서 포기했다던데.. Charlie는 현실에 나타나지 않지만 이거 엄청 성가시다. 진실은 거짓을 이길 수 없다. 정도 것 하다 말아야 하는데 재미 들린 주변 사람들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급한 불을 껐더니 다른 낙하산 업체가 또 나타났다. ㅡㅡ;;; 전담부서 사람들은 전시회 출장 간다고 나한테 일을 맡겨두고 사라졌다. 이게 말이 돼?! 마음씨 좋은 아저씨 소원수리를 받는 것도 좋지만 어르신들 공통점은 "모르겠고, 나 급하다. 이것 좀 해주라~~~"로 결론이 난다. 게다가 이 어르신의 어르신은 낙하산 위에 낙하산 투하자라니 이게 왠 날벼락인가?! 우리 낙하산 투척자도 꼼작 못한다. 안 좋은 징조다. 가뜩이나 아들 시험 볼 때 출장 잡아서 분위기 삼엄한테 그 기간에 출장을 따라오시겠다니. 할 말이 없다. 남의 출장엔 왜 같이 가시겠다고 나한테 왜 이러시는지. 내가 가방모찌도 아니고. 한 주가 산만하다. 무조건 버리고 가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해야겠다.
처음 전화번호 받고 카톡에 "나는 하루에 한 번만 확인한다"라는 문구를 볼 때 조심했어야 한다. '일단 너의 말은 모르겠고, 나는 전화를 한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될 거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팍팍 온다. 어르신들의 집념은 무섭다. 게다가 잡것들이 월말에 또 출장을 잡아놨다. 되려 잔소리를 또 듣겠다. 뭔가 한참 억울한 기분이다. 방사능 체험단도 아니고...
이 와중에 고객사를 만났다. 친구가 사장인데 얼마 전 집안 일 때도 고맙다고 겸사겸사 얼굴을 봤다. 너덜너덜한 모습속에 피곤함이 단층처럼 얼굴에 눌러앉았다. 그래도 반갑다고 소주를 같이 한잔하고, 담당 팀도 즐겁게 회합을 했다. 성화에 노래방엘 갔는데, 업체 사장이랑 나는 누워있고, 애들은 잘도 논다. 우리 애가 어째 걸음째가 꺼부성하다. 어디 아픈가 했더니, 나 올 때 발목이 아프단다. 다음날 아킬레스건에 지장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중국 출장을 취소시키고, 예전에 독일 출장 전 날 부러진 발목 생각이 났다. 태어나 처음 깁스라는 것을 해봤다. "어째 잘 놀더라. 늙어서 그런 거지. 집에 딱 누워서 싸댕기지 말고 엄니 잔소리 잘 듣고 비위 맞추며 얌전히 재택근무해라" 그랬더니 기어이 회사에 기어 나와서 결국 발목에 뭔가 채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새벽에 전화가 와서 걱정했더니 잘못 눌렀단다. 환자를 쥐어박을 수도 없고.....
이 맘 때가 대부분 내년 사업의 구체적 의사결정이 있는 시기라 다들 바쁘다. 정안가는 전범국 고객들은 참 훌륭하게 합리적이다. 자기들 급한 것만. 게다가 급할 때 "나 지금 당장 필요한데~~ 급하다"라는 메시지를 쉬지 않고 보낸다. 브렉시트는 모르겠다. 영국 고객도 "에휴.. 지겹다 지겨워"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선생만큼 바쁘다. 트선생이 경기장 규칙을 자주 바꾸다 보니 호떡집에 불이 난다. 그려려니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환율은 갑자기 팍팍 떨어지고.. 금리도 내린다는데 도통 난해한 상황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머리가 아플 땐 실수가 생긴다. 그럴 때 가끔 메일을 지워도 된다? 왜냐하면 발등에 불 떨어진 급한 녀석은 반드시 전화가 온다. 마치 엄마가 어디에 있어도, 어느 시간에도 너를 찾아내듯 말이지...
그나마 2주의 마지막은 흥신소 인력 납치 활동이다. 정작 해외사업본부 인력 납치 계획이 1차 fail이 나서 2차로 수배 중이다. 그런데 연구소 인력 납치를 하고 있다. 우리 본부 애들이 알면 또 지랄할 텐데. 조신하게 있어야겠다. 취업 시장을 보면 입장에 따라 이런 생각이 아닐까 한다.
실업률 높다 하되 하늘 아래 일이로다.
찾고 또 찾으면 못 찾을 리 없겠지만
필요한 놈은 없고, 엄한 놈들만 천지로다 (또는 가고 싶은 곳은 답이 없고, 엄한 곳만 독촉 오네)
오늘부터는 가열차게 패기와 열정을 갖고 쉬는 것으로... 힘들다!
#직장생활 #해외영업 #흥신소 #채용 #인력수급 #계약서 #khori
'천상잡부(天上雜夫)_ 사업관리 시즌 2 (해외영업 시즌 1) )' 카테고리의 다른 글
AI 별거냐? 조류독감만 아니면 돼!! (0) | 2019.11.04 |
---|---|
팀장을 하거나 짤릴 때 - 축복인가 재앙인가? (0) | 2019.11.03 |
일상이 배움이다 (L&L, Lesson Learned) (0) | 2019.10.12 |
계주의 넋두리 (0) | 2019.10.06 |
Student Syndrome + 흥신소장 바쁨 (0) | 2019.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