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먼 길을 떠나야 한다. 한 달동안 비행기를 지구 한 바퀴 반을 타야 한다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생일을 챙겨주지 못한 녀석에겐 용돈도 주고, 덤으로 다른 녀석에게도 용돈을 주었다. 가족이란 존재하는 것으로 의지가 된다. 책을 읽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난다.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이란 제목이 새삼스럽게 하이쿠처럼 운치가 있다. 세상의 풍파가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그 풍파의 시작과 끝은 바람처럼 세상이 곳곳에 연결되어 퍼져있다. 그러나 세상은 무엇이 차면 비우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 비워진 자리는 다시 결핍의 자각과 채우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책이 송숙과 같은 것을 본 적이 없으나 마치 노자의 말처럼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세상이 도와 순리에 따라 잘 순환되도록 하는 지엄함이란 말이 이 번 편에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왜에서 해객으로 신화의 세계로 들어와 세이슈를 잃고 경왕을 만나고자하는 스즈, 비참한 왕조의 몰락과 공주의 후광을 뺏기고 세상에 던져진 쇼케이, 작금의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는 쇼코, 가호, 세이쿄라는 지방관리와 중앙 관리의 협착과 착취, 지방에 은둔한 송숙의 여서 엔호를 다시 태사로 임명하며 경국은 기틀을 잡아가기 시작한다. 권선징악의 원리가 친숙하다. 그 친숙한 세상의 규칙보다 각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를 풀어가는 생각과 행동이 재미있다. 이야기를 통한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의 기대를 이 책에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에 억눌려 지내는 현대사회, 그것에 익숙해지지만 불편한 현실, 그렇지만 이것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이 깨지고 좀 더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게이키에 끌려 신화의 세계로 들어와 경국의 여왕이 된 요코의 성장은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지위란 그 지위에 요구되는 의무를 다 할 때에 인정받는다. 권리는 선택적 사항이다. 그런 의무와 책임이 무지에 대한 면책이 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앉을 역량이 된다면 자리를 꾹 눌러서 운영할 것이고, 그 자리에 맞지 않는 역량과 성품을 갖고 있다면 자리가 사람을 기름에 튀기듯 한다. 항상 공부하고 준비하고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은 사람은 항상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준비의 성과가 타인으로부터 지위, 명예, 권력이름으로 포장된 의무를 부르는 것이다. 요시, 경왕처럼 그것을 어느 누구도 준비하고, 경험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지위란 초보운전을 시작하는 말과 다름 없다.
자신이 해야할 것을 위해서 자신의 주어진 기반을 보여지는 대로 깊숙히 들어가서 바라보는 경왕은 분명 실패가 적은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활발한 양의 기운이 풍부한 안국의 연왕과 달리 경왕은 냉철한 결단과 따뜻한 가슴을 품을 왕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마치 우리가 기대하는 시대의 리더들처럼.
#십이국기 #바람의만리 #여명의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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