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들르면 포스터를 꼭 들고 온다. 수북하게 쌓여가는 포스터를 보면 스스로가 바보처럼 생각도 들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한 번은 들여다보겠지라는 생각을 한다. 처음에 포스터를 보면서 류승범인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이제훈이다. 그가 보여준 캐릭터와 영화를 상상해 보면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내가 본 배우의 모습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박열이란 영화속에서 그가 하던 역할과 크게 변했는가라고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그를 둘러싼 많은 배역들과 역할, 배경이 그의 조금은 변화된 느낌을 갖게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느낌이다.
1900년대 초기의 아나키스트들은 한편의 자유주의자이기도 하다. 목적을 위해서 폭력성을 인정하지만, 과도한 이상주의자라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회영 같은 사람이 아나키스트라는 입장으로 과도하게 역사속에서 억눌렸던 이야기를 봐도 우리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폭력성에 대한 우려를 많이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 시대를 읽을 때와 현재를 볼때에는 편견이 되기도 한다. 왜놈사관이 독립투사를 테러리스트로 보는 것을 대한민국사관에서 동의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정체성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혈단같은 비밀결사조직의 중심에 박열이란 사람이 있었다. 얼핏 들어본 적이 있으나 자세히 알지 못한다. 지금은 한국전쟁중 북한으로 가서 생을 마감했다는 정도의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영화 인트로에 이 영화가 실화이며, 실명을 바탕으로 한다는 말도 인상적이다. 그 만큼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가 어려운 침략적 왜정시대를 지나 분단된 국가에 산다는 것을 새롭게 느끼게 된다.
영화의 내용을 보면 그가 아나키스트적인 행동을 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시대를 보는 안목은 나이에 비해서 뛰어나다는 것은 동의할 수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아나키스트적인 부분이 대단히 많다. 지금 시대에 이런 남자를 만난다면 꽤 매력적이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그가 시대를 넘어서 기억되는 이유는 가네코와의 민족, 국가를 뛰어넘은 동지적인 의식과 신념, 사랑을 상징하는 사진처럼 보여진다. 그 사진 한장의 프레임에 닮긴 그들의 여유와 주어진 환경, 표정의 담담함이 그렇다. 오랜 여운을 남길만한 사실과 진실사이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가 내게 기억되는 이유라면, 자신의 신념과 사랑이란 개인적인 부분을 넘어서 시대에 주어진 억압과 부당함에 맞서는 지점까지 용기내어 쉬지않고 움직였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이다. 소중한 삶 속에서 담담하게 스스로의 자유 의지를 갖고 더 큰 가치를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 그런 사람은 스스로 자유로운 사람이다. 나는 그래서 박열이라는 사람이 참 매력적이라 생각된다. 극중에 표현된 가네코 후미코도 참 피폐한 성장환경속에서 참으로 멋지고 당당하게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아나키스트들은 세상에 존재할 것이다. 그들이 권력기관을 부인하는 이유는 자신의 자유에 반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세상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시대에 맞게 재정의된 박열이 세상에 조금 더 늘어난다면 좋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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