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이 온다'라는 책에 이어 '그건 부당합니다'라는 책을 본다. 이젠 기성세대의 나이가 되어 이런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지금 은퇴 한 노인세대와 아주 안 맞는다. 사회생활을 하며 마주한 그 세대들에게 배운 것 중 "저렇게 하면 안 되겠다"라고 다짐하게 만드는 부정적 학습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세대가 내 또래를 보는 것과 비슷한 마음일까? 그래서 응원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집 아이들 또래들이 지금 X세대 근방을 보면 부당하다고 말한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10년 훨씬 전 대한민국에서 살며 근로기준법과 무관한 대가 없는 야근, 부당한 업무 지시가 내 앞 세대가 기억하는 2-30년 전보다는 나아졌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재 자식세대의 환경이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니다. 다들 자식들은 애지중지하며 키우고 자식들이 생각하는 공정은 부모세대보다 훨씬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 미안한 마음을 갖는 이유는 그 자식세대의 친구, 선배, 후배들에게도 공정이란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골고루 퍼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은 그러한가?
책 표지에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시대가 변한 겁니다'라는 글귀가 있다. 사실 나는 이 글귀에 반대한다. 오독과 오해의 소지도 높다. 차라리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부당을 수용하면 부당은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만연하고 부패한다.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고, 옳은 일을 옳다고 말하는 것을 마귀의 속삭임이라고 하는 명언도 있지만 그렇게 걸어가는 것이 후회와 큰 사건 사고와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방법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랄까? 그럴 깜냥은 아니지만 죽고나서 오랫동안 쌍욕을 듣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책은 사회적 화두인 '공정'이란 단어로 시작한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지만 '우영우 변호사' 이야기는 들어 본 것 같다. 이 드라마를 통해 사회적 활동 속에 공정, 청춘 세대가 느끼는 공정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그리고 공정이란 말의 이중성, 다른 의미의 단어와 반대의 단어들을 골라서 짚어본다. 여기서 급격하게 두통을 부르는 공리주의, 롤스, 프리드먼, 샌들까지 간략하게 언급된다. 이런 책을 본 기억이 10년은 넘은 것 같다. 내가 이 분야의 학자도 아니고 어딘가 조금씩 내게 남았을까? 글쎄?
나는 좀 더 쉽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우리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전적 의미보다는 내가 주어진 환경에서 내게 다가오는 것에 대한 느낌이 먼저다. 수치적인 피해와 이익을 예측할 수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 동시에 관점과 조건이 바뀌면 공정에 대한 생각은 쉽게 바뀐다. 아이부더 노인까지 모두 그렇다. 이런 변덕스러움이 세상을 혼란하게 하는 불쏘시개다. 게다가 옳은 일인가라는 것을 투입하면 우리가 공정, 부당, 형평, 불공정이란 단어는 색이 변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공정과 공정의 여집합을 생각해 보며, 저자의 말을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 공정이 정말 올바르고, 합리적이며 상당히 많은 사람이 동의할만한 기준인가? 그래서 또래와 선후배, 소셜 네트워크에 물어보기도 한다. 논리적으로 공정의 여집합은 공정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런데 또 다른 요인인 형평성은 공정에도 포함되는 것 같고, 공정의 여집합에도 포함될 수 있는 것 같다. 성적을 절대평가로 할 것인가, 상대평가인가에 따른 다양한 반응을 떠올려도 그렇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공정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고, 기준의 변화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서는 발전이 없다.
사회적으로 보면 권력, 부, 지식의 힘은 또 다른 조건과 환경을 만든다. 투표와 같은 1인 1표와 같은 절대적 형평성을 왜곡하긴 힘들지만 사회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계와 행위에 큰 영향을 줄 소지가 많다. 이것을 모두 법과 규범으로 규정할 수 없다. 세상은 계속 변화하니까. 그런데 시대가 변한 거라는 생각만으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베풀면 당연한 서비스로 요구하는 것을 받아줘야 하는 호구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자식세대를 그렇게 만들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기업에서 존칭에 대한 습관적 언어를 바꾸고 의식적인 형평성과 자율성을 독려하려는 노력은 가상하다. 그러나 넓게 포진시킨 직급(수석, 리더, 책임, 매니저 등등)으로 진일보한 것도 맞지만, 실질적인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두 리더인데 그중 한 명이 인사평가를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과 같고, 차라리 공식적인 조직장의 존재보다 더 못할 수 있다. 어떤 하나가 옳다기 보다 자기 조직에 맞는 선택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말처럼 공정은 논란이 있다. 공정의 백과사전 의미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작게 맞고 크게 틀리고, 작게 틀리고 크게 틀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 '정상인, 애꾸, 장님의 달리기 시합은 공정한가?'라고 예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 인간에게 '절대'와 '완벽'은 가까이 갈 수는 있지만 도달할 수는 없는 지점이다. 집합과 여집합의 이분법적인 사고의 위험성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합리적인 조건들이 교집합으로 작동해야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할까? 어른과 어린이가 시합을 한다면 핸디캡을 주는 것이 부당한 일인가?
청춘세대가 세상에서 느끼는 부당함도 제각각이다. 어느 세대가 옳고, 어느 세대가 틀렸다고만 할 수 없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되는 입장에서 지위라는 권력으로 책임이 아닌 강요가 있었는가? 옳지 못한 일을 지시한 적이 있는가? 청춘 세대의 몫을 올바르게 지급하지 않았는가? 그들의 제도적 법률적 권리를 제약한 일이 있었는가?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어떤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연애를 잘하면 영업도 잘할 수 있다'라는 내 생각의 근본은 경청이다. 젊은 세대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부당한 것이다. 하지만 한 번더 그 주장이 올바른가는 서로 되돌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기성세대는 공정의 여집합에 있다는 말을 들으면 세상을 더 살아온 입장에서 스스로의 성찰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존경받을 일을 찾아간다면 존경을 맞을 것이고, 존경받지 못할 일만 골라한다면 쌍욕을 들어도 자기 책임이 아닐까?
책처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불공정인가? 부당함인가? 정확하게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어렸을 때의 사회적 제도나 법규를 보면 과거보다 더 공정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제도와 법률이 미치지 못하는 여집합의 영역에서는 아직도 부당함과 교활함이 있다. 어떤 면에서 고도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과거에는 넘어갔지만 지금은 법적 처벌이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부당함과 불법이 올바름과 성실함보다 훨씬 부지런하니 어쩔 수 없다.
시사에 대한 예도 책에서 많이 언급된다. 그럼 지금 시대의 변화가 무엇일까? 코로나 역병이 돌고, 자본시장의 팽창과 실물경제와의 디커플링이 진행 중인 시대다. 쉽게 삶이 고단하고 팍팍해지는 중압감이 올라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구태의 이념적 토대(사실 매우 의문스러운 규정임)위에 두 개의 정당이 반목(ㅇ)과 경쟁(??)이 존재하고 있다. 요즘은 새로운 세력이 주도권을 차지했다고 생각한다. 그 중심에 관료가 있다. 어깨 너머로 배운 정치가 실행과는 다르고, 초보가 초보인 이유는 잘 못하고 실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과 유연하지 못한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어떤 면에서 물에 술 탄 듯 유연한 정치가 딱딱한 관료 시스템으로 전환되었고 국민들이 그런 선택을 했다. 그 과정과 결실이 정의롭고 올바르다고 생각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100대 공약을 한 번 훑어보면 후하게 줘도 30점을 넘기 힘들다. 청년과 노인들에게 한 공약을 보면 헛된 약속인지 의구심이 든다. 지킬 마음도 없었다면 사기꾼이고, 남은 시간 많이 올린다면 진심이다. 결과나 능력이 아니라 그 진심이 중요한 것은 진심이 방향을 결정하고, 환경의 어려움에도 선택한 방향의 행동이 꾸준히 나오게 된다. 결국 행위로 의도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게 요즘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랄까?
'빚도 재산이다'라는 명언에 대해 하버스 경영학 교수들이 이게 성공하게 경영학을 새로 쓰겠다고 했다. 관료 중심의 통치체제가 성공한다면 정치학은 없애야 하지 않을까? 그럴 수 있을까? 책에서 언급된 사례가 전체는 아니지만 그 정도라면 혁신과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에 어떤 일을 만들어 내는 세상을 따라갈 수가 없다. 도전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조건이 법과 책임, 의무의 굴레를 벗어나는 걸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할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매뉴얼 사회인 일본이 매뉴얼에 안 나오는 일에 수수방관 현타를 맞으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20년 전에는 '우와'하던 나라가 지금 보면 '힘들게 산다', '답답하다'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랄까? 그렇다고 관료들이 불필요하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올바름 정도가 세상의 기준점을 결정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법과 제도의 실행을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이다. 단 법과 제도를 넘어서는 성과를 도출하기 힘들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고 본 역할의 성취도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동안 정치만큼이나 의심, 의구심이 가득하다. 지금 말하는 공정의 여집합이 부당이 될 수 있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과거의 경험이랄까? 지금부터 겸손과 성찰을 통해 진심을 보여주는 행위와 결과를 보면 알 수 있겠지.
이런 희망을 기성세대가 청춘들에게 줘야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기성세대가 청춘과 자식세대가 잘 살아가도록 베풀어 그들이 성과를 내고, 그 성과를 다시 순화시켜주는 구조를 만들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면 세상은 풍 맞은 것처럼 경직될까 조금 걱정될 뿐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나라가 망해서야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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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부당합니다 임홍택 저 와이즈베리 | 2022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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