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며 나도 참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요즘은 '웬만한 일에 놀라지 않는다'라고 느낄 때가 많다. 아니 오히려 '어, 그럴 수도 있지'라는 표현이 더 가깝다. 예전에는 정말 열심히 숙고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현실로 갖고 오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찾았다. 몰입의 느낌도 있고, 성취의 즐거움도 있고, 장벽을 마주하고 안달복달도 하고, 걱정의 무게에 정신이 혼미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럴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던 소리가 '작작 좀 해라'라는 소리였던 것 같다. 함께 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그것처럼 할 수 생각이 없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내 어깨 위의 물건처럼 생각할리가 없으니 당연한 말이다.
그러다 내게도 '나도 그 정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들이 심심치 않게 다가왔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IPO를 하기 직전에 일 년간 고생해서 매출의 10% 수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모두가 잘 된 일이라고 좋아했는데, 대회의실에 임원들이 동네 교인들을 모아두고 '하나님 아버지 매일 백만 불 오더를 내려 주시옵고, 코스닥 상장 등록이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며 일은 안 하고 부흥회를 하는 것을 보고 기가 찼다. 배달을 하늘나라에 하는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대금 결제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답답한 마음은 알겠지만 무엇에 빌어서 다 된다면 세상을 그렇게 힘들게 살 일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가 망하겠다는 미친 생각이 들어 사직서가 아니라 해고 통지서를 날렸다. 그때 그만둔 사건이 내 인생 불판을 바짝 달구는 계기라는 생각이 지금 많이 든다. 그 회사 정말 상장하고 내 예측보다 딱 6개월 먼저 망했다. 그런가 하면 유가증권 회사에 가서 기업매출의 30%까지 성과를 냈더니, 내 성과는 팀장이 갖고 가고, 다음 해에는 전사 매출 10% 정도 하는 고객이 결팀장이 벌인 사건으로 거래를 끊겠다고 찾아왔다. 2개월간 마음고생을 했는데, 사고뭉치 팀장이 '야, 할 수 없는 것은 냅둬'라고 했는데 그 말이 의외로 큰 도움이 됐다. 결국 내 애꿎은 실적의 절반을 떼어 다른 사람에게 줘야 하는 일만 벌어졌다. 또 다른 기업에서 백만 불짜리 회사를 2년 동안 열심히 해서 5백만 불에 순이익 38%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더니 하루아침에 사장이 내일부터 회사를 접으시겠단다. 그리고 정말 폐업했다. 그 후로 다시 와서 도와달라고 6개월 동안 쉬지 않고 찾아와서 애걸복걸하는 회사에 납치당해 몇 년간 고생해서 넘어가는 배를 일으켜 세웠더니, 한 회사는 대표이사가 대형사고를 치고, 다른 회사는 은퇴한다고 매각을 했다. 가끔 내가 걸어온 길이 소설보다 스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내가 틀렸을 때도 많을 것이다. 반면에 얼토당토 안은 타인의 의사결정으로 혼심을 들여 만든 무엇이 산산이 부서질 때의 기분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다. 세상에 법이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을 갖게 된 이유다. 그래도 지금 보면 큰 탈없이 잘 살아가고 있고, 이로 인해 사건 사고에 무덤덤해진 점이 좋아진 점이라고 해야 할까? 공자님이 자신은 어려서 막일을 많이 해봤다고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여러 재주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은퇴한 대표님이 "이젠 산전수전 다 겪어서 웬만한 일은 아무런 문제없지?"라고 물어보셔서 크게 웃으며 '그렇죠!'라고 대답했다. 아직도 유구무언과 동의가 공존하며, 좌우로 광속으로 셔틀 한다. 책을 읽으며 제목에 '물음표'를 붙였었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겐 완벽은 거짓말 수학의 극한처럼 보인다. 절대 잡을 수 없지만 근접할 수만 있다. 본다고 잡은 것은 아닌데. 그런데 이런 불완전성이 인간의 위대함이 나타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궤변인가?
저자가 호흡과 생각을 하며 자신의 어깨 위에 달린 물건이 의외로 통제도 안되고 요란하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어려서 단전호흡이 유행할 때 해본 적이 있다. 이 호흡보다 나는 열심히 살아가면 마주하는 자주 보기 힘든 일들을 돈키호테처럼 정면으로 마주하며 과하게 RPM을 돌리는 과정에서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 과정은 다른데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이 유사해 보이지만 좌우가 같은 듯 다른 데칼코마니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욕망과 필요가 생기면 끊임없이 관련된 생각이 떠오른다. 당연히 이 생각이 전부 맞을 턱이 없다. 부족한 사람만이 좋은 생각, 완벽한 생각이라고 들 떠 요란할 뿐이다. 그 완벽하게 좋은 생각이 불판으로 달리는 급행열차 티켓이 되어 된통 시달리면 스스로 얼마나 멍청한가를 깨다 순간이 온다. 피해도 막심하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 않고 내려놓을 수 있다면 사람은 조금 더 현명해지고 지혜로워진다. 사실 내가 이 방법을 다 깨달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과거보단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예전엔 내 생각대로 될 가능한 방법과 논리에 집중해서 진상소리를 들었다면 지금은 내 생각을 자꾸 쓰고 정리하고 다듬는다. 그 가장 큰 첫걸음은 쓰는 일이다. 메모하고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맞는지 그래도 정리가 안되면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러다 나중에 좋은 생각이 또 떠오르곤 한다.
이런 일이 반복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저자는 생각이 진실이 아니라는 말로 표현했다. 내 표현은 조금 다르다. 걱정은 해결책이 아니다는 말이다. 모든 호기심은 사고를 확장한다. 책에서는 관심이라고 했다. 관심이 없다면 죽는 사람이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을 내 표현대로 다르게 말하면 확률에 가깝다. 그 확률이 높은 것이 사실이 되고 진실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삶에 도움이 되고, 올바른 일, 그리고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책의 표현과 다른 듯 유사한 본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써보고 정리하며 생각을 의심(doubt)하기보다 확인(verification)하고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 판단(judge)하고 마지막으로 그것이 삶에 미치는 좋은 확률을 생각해 보는 것이 주어진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더 평온한 삶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욕망은 WANTS의 세상이고 이런 세상이 우리가 살아가는 속세일 것 같다. 바리를 채워주는 작은 음식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세상은 욕망이 아닌 필요, NEED의 세상이다. 뜬금없이 이 궁극의 사고방식은 인간의 머리로보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욕망에, 세속을 멀리하는 사람은 필요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욕망에 집착하지만 모든 것을 욕망의 관점으로 바라보진 않는다. 비율이 다를 뿐이다. 내가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 사고는 유연하다. 나는 작은 욕심을 더해 '가끔 내가 맞을 때도 있다고'라고 중얼거릴 뿐이다. 저자의 아버지가 무릎을 탁 치듯.
#I_may_be-wrong? #내가_틀릴_수도_있습니다 #가끔_내가_맞을_때도_있습니다 #독서 #인문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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