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째 책 한 권을 들고 읽어내고 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한 편으로 일상을 살아내기 바쁘다고 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책을 읽어내는 동안 마음이 어수선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문양 속에 궁중의 여인이 장식할 만큼 예쁜 나비 장식과 참 다르다.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려면 주인공과 내가 물아일체가 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일이 익숙지 않다. 내가 그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종군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에 관한 '겹겹',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한국 현대사', '한국전쟁의 기원', ' 한국전쟁' 그리고 다양한 근현대사 역사서적, 여러 평전들, '안중근 도록' 이런 배경지식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가 역사라고 하는 것은 시대를 상징할 중대한 사건에 더 많은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주인공 선자는 풍족하지 않지만 평범한 가족, 첫사랑, 혼인 그리고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시대를 바쁘게 살아가는 외부의 요인이 삶에 많은 사건과 사고를 갖고 오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마주하며 당당하게 살아내가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오래전 유명했던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불암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바다는 물을 가려 받지 않는다'라는 말로 기억한다.
1900~1953년 사이를 살아낸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욕망과 욕망이 어우러져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들의 기억 속에 과거 평온했던 일상을 희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역사는 중요하다.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과 사고로 배워야만 한다. 그러나 그 일도 살아내야 하고, 살아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살아내야 역사적인 어떤 결과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누군 일제에 붙어먹고, 누군 헐벗고 굶주리며 나라를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아낸 것이다. 그 살아내는 방법으로 시대를 쫓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서 희망을 품은 사람들도 있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통해 희망을 만들어간 사람들도 있다. 그것을 탓할 필요는 없다. 이념의 시대는 과거의 더 좋은 방법에 대한 논쟁과 실험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이던 타인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더 나아가 더 올바르고 좋아질 방법에 조금씩 삶을 녹여가는 일이다. 이런 일이 시대가 변해도 큰 탈이 없는 일이 아닐까?
이삭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며 가족에게 헌신하고, 요셉도 가족을 돌보기 위해 헌신하고, 선자도 가족과 자식을 위해서 묵묵히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경희도 남편의 뜻을 맞추고 또 가족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시대를 살아낸다. 태어난 환경에서 일본인처럼 되어야 한다는 노아의 생각에 침을 뱉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살아온 사람을 상상해 보면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시대에 한 일에 대한 책임 그리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2권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겠다. 결말도 이렇게 잔잔할까? 텔레비전을 안 보고 사는 내게도 오늘은 참 시끄러운 하루다. 무엇이 올바른지 생각하면 쉬운 일이나 시끄럽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또 열심히 살아내야 하고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책 제목이 왜 하필이면 파친코일까? 구슬을 넣고 슬로머신처럼 도박을 하는 게임이 왜 제목일까? 누구나 이런 기계에 돈을 넣으면 '한 번만 걸려라'라는 생각을 한다. 역사에서 이런 일은 시대를 상징하거나 전화하는 큰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기까지 기계는 쉼 없이 돌아가고 또 돌아간다. 의미 없이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 의미 없는 것들이 돌아가지 않으면 잭팟과 같은 일도 없다. 그렇게 돌아가다 보면 내가 바라던 것과 다른 일도 마주하는 것이 삶이라 야속한 마음도 있지만 어쩌겠나. 또 살아내고 살아내야만 한다. 그래도 소중한 가족이 있으니. 한수가 끊임없이 선자의 주변에 머물며 힘을 쏟는 것도 그런 이유 아닐까.
#파친코 #이민정 #신승미 #소설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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