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冊)

상생과 공멸의 파트너, 王과 臣 - 참모로 산다는 것

by Khori(高麗) 2020. 8. 15.
728x90
반응형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신하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을 서점에서 고를 때 후배 녀석이 "아휴, 골라도 꼭 그런 책을 골라요"라며 핀잔을 줬다. 어떤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중요하다. 그 자본을 바탕으로 業을 시작하고, 적절한 인재를 구한다.

 

 그런데 그 자본도 사람이 만들고, 일도 사람이 하고, 인재는 사람이다. 모든 인간 문명은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을 선택하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 사회에서 기업을 포함한 어떤 조직도 인사권과 재무적 권한을 확보하면 대강 철저히 굴리는 것을 할 수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실세라고 부르는 조직은 승인을 통해서 재무적 집행을 행하게 하고, 승인을 통해서 그 과업에 필요한 사람을 배치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 사회는 과거보다 아주 조금 진보한 셈이다.

 

 조선이란 웅크린 폐쇄적 르네상스 국가를 보면 나는 답답하다. 건국 후 얼마가 지나지 않고 조용한 날이 없는 나라처럼 다가올 때가 많다. 왕은 나라를 경영하고, 신하는 왕을 보필하여 나라를 번영케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신권을 보장한 사대부의 나라로 좋은 출발을 했지만, 왕을 제1 사대부로 보는 관점은 결국 왕을 만만하게 보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당쟁과 사화가 일어나는 것은 결국엔 기강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또한 견제도 적절하게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기업이란 관점에서 대표이사에게 등기이사가 같은 이사라고 전횡을 일삼고, 또 다른 등기이사가 다른 등기이사와 파벌을 만들어 다투며 대표이사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면 잘 굴러갈 회사가 있을까? 국가는 다른가? 어떤 면에서는 옥쇄 없는 virtual king이 종종 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왕조를 세운 정도전부터 정약용까지 조선 시대를 아우른 뛰어난 관료와 간신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짧게 짧게 이어간다. 학문적 성취가 뛰어난 관료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적을 통해서 시대적 필요와 요구를 되짚어 볼 수도 있다. 간신과 관련해서 나는 김영수의 "간신론"만 한 책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과 더불어 봐도 재미있고, 이 책에서 언급된 간신들의 행적을 봐도 부합한다.

 

 내가 책을 읽으며 나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어떤 주체성이다. 이 책은 사실과 일화를 담고 있다. 교과서를 위한 확장적 배경지식이 될 수도 있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가 역사적 이해를 더하는 수준에 그칠지 아니면 그 일화를 통해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는 것은 자유다. 그런데 나는 좀 답답하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왕과 신하는 부부처럼 궁합이 잘 안 맞으면 하나가 다른 하나를 상하게 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때와 상황이 그들의 재능과 부합할 때 흥하고, 그렇지 못하면 망한다. 왕은 신하를 고를 수 있지만 안목이 있어야 하고, 조선이란 나라에서 신하는 왕을 고를 수 없지만, 수동적으로 거부할 방법은 찾을 수 있다.

 

 뛰어난 세종이 황희를 발탁하고, 장영실을 기용하고, 집현전 학자를 등용해 치국의 도를 이룬 것은 success case다. 암군 연산군을 만난 뛰어난 관료는 때를 잘못 만나 경천동지 할 천재지변을 마주한 것과 같다. 반면 임사홍은 암군을 만나 제멋대로 살아 볼 기회를 잡은 것도 사실이다. 진심으로 기울어 가는 나라를 위해서 노력한 이이와 유성룡은 전생에 어떤 큰 죄를 지어서 이런 고생을 하나? 사야가 김충선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선엔 우매한 선조가 있다. 다 기울어지고 구멍 난 배를 세우려던 정조나 정약용을 보면 안쓰럽다. 때가 그들의 재능을 펼치기에  안 맞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과정에서 뛰어난 재능과 역량을 갖고 혁신을 주도한 사람들의 말로가 꼭 좋은 일로 충만한 것도 아니다. 부도덕함과 악행을 보인 사람들의 말로는 더 안 좋다는 것이 위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자기 세대에 부귀영화를 누린 자들도 있다.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고, 문명의 발전은 기회의 평등을 넓혀간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 속에서 왕도 변하고, 신하도 변했다. 현대사회에서 대통령은 늘 바뀌고 늘공인 관료들의 생명은 더 길다. 대표이사는 교체되기도 하지만 주구장창 망할 때까지도 한다. 조직의 참모이자 관료라 할 수 있는 직원들은 더 좋은 선택의 기회도 있고, 선택 후에 선택의 폭은 줄어들기도 한다. 현대사회가 조선사회와 큰 차이가 무엇일까?라고 생각해보니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런 사회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런데 5-6백 년의 시간이 흘러도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엄청 섭섭해지려고 한다.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사회는 부실할 수밖에 없다. 어떤 원칙을 세우고, 상황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보완적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전횡을 줄일 수 있다. 아둔한 왕이 나와도 망하고, 너무 기가 막히게 뛰어나 전횡을 일삼는 신하가 나와도 망한다. 로또처럼 뛰어난 왕과 성품이 올바르고 재능이 뛰어난 신하가 얻어걸리기만 기다리며 허송세월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누가 나와도 일정한 범위에서 굴러가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지성과 통찰력, 그 두 가지를 지배하는 원칙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인에 대한 이야기보다 위인들이 만들어낸 가치가 운영되는 시스템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참모... 이거 참 별로인 직업이다. 아니라고 생각이 들면 '대군사 사마의'를 보시라. 직장인이다 보니 읽고 나서 기분이 별로인 느낌적 느낌이 드는 건 내 문제인가?

 

#조선 #참모 #권신 #간신 #명재상 #역사 #독서 #참모로산다는것 #신병주 #매일경제신문사 #khori

참모로 산다는 것
국내도서
저자 : 신병주
출판 : 매경출판(매일경제신문사) 2019.01.15
상세보기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