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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冊)

역사책을 다시 읽다 - 자치통감 3 - 권 21~22 (신동준, 올재)

by Khori(高麗) 2021.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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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109 ~ BC 89

 

 "세상의 자유를 즐겨라"

 카카오톡 프사를 바꾸고 가볍게 적었다. 새로운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주말 내  못 먹었을 음식도 없는데 복통에 시달렸다. 사촌이 땅이라도 사며 억울하지 않을 일인데   없는 일이다. 주말 동안 먹는  줄이고, 열심히 잤더니 훨씬 좋아졌다. 세상의 변화도 희로애락이 순환하듯 나의 삶도 그렇게 변해가리라 생각한다. 역사책을 통해 읽어도 그렇다. 

 

 한무제의 시기를 읽으면 금수저를 물고 왕이 되었으나 주변의 변덕스러운 마음과 행동으로 황제란 직업도 그리 편한 것만 같지는 않다. 지속적인 외교와 전쟁으로 영향력을 넓히는 노력은 높이 살만 하지만, 사마광의 평처럼 나라의 재물이 많이 소요되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겐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전쟁과 더불어 진시황처럼 신선을 만나겠다는 생각이 불로장생의 연장선상이란 생각을 하면 오십보백보다. 그러나 하나는 나라를 망쳤고, 하나는 나라를 망치지 않았으니  차이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한무제는  변덕스럽고, 요사스럽다는 느낌을 갖는다. 

 

 "드디어 조선을 평정한  낙랑과 임둔, 현도, 진번의   군을 만들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어려서부터 한사군은 한반도에 그려져 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그것이 한반도 내에 존재하는 것이라 확정하기 어렵다. 그런 주장과 고증은 다른 일이다. 사실 현시대를 살아가며 주장하는 사람들이 본 적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기록, 고증이 중요하다. 패수의 위치가 중요하다. 그러나 한나라가 치는 조선의 강역도가 어떠한지 생각해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한반도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과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매국행위란 생각, 그리고 진실을 통해서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은 현재를  바르게 살아가는 하나의 필요성이란 생각을 한다.

 

 "현도와 낙랑은 본래 기자의 봉지다. 옛날 기자는 조선에 있으면서  백성을 예의로 가르쳤고,  갈고 누에 치고 길쌈을 했다. 백성들을 위해 8조 목의 금령을 두었다. 살인을 하면 즉시 죽이고, 남을 다치게 하면 곡식으로 배상하고, 도둑질을 하면 남자는 적몰하여  집의 가노가 되고 여자는 비로 삼았다. 스스로 속죄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사람당 50만 전으로 속죄하게 했다. 그러나 비록 면죄가  다시 민이 될지라도 풍속에서는 이를 수치로 생각했고, 시집가고 장가들지 못했다.  <중략> 그러나 동이의 천성이 유순해 다른  방향에 사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공자도 도가 실행되지 않음을 애도하고, 바다에 뗏목을 띄워 구이에 살고 싶다고 했다. 있을 법한 말이다"라는 반고의 기록이 실렸다.  내용을 보면 우리가 고조선이라고 총칭하는 기자조선, 위만조선 등 상고사에 대한 역사 고증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위서, 위서로 대표되는 환단고기를 배우자는 것은 아니다.  부분의 역사는 남과 북, 만주, 요동 일대의 발굴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나라가 힘이  있어야 한다. 

 

 한무제가 중간중간 서역과 외교를 하고, 한혈마로 불리는 서역의 명마를 구하고, 흉노와 전쟁을 하는 과정은 계속된다. 사람들의 말에 의해서 판단이 오락가락하지만 지금과 같은 정보전달의 실시간성이 떨어질 때, 인간의 의심, 두려움, 걱정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다. 지금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도 힘든데 그 땐 오죽했을까? 한 가지 적군과 전쟁을  때, 아군의 왕이나 대장의 목을 들고 적진에 달려가는 일은 나라를 가리지 않는다. 인간의 생존본능이라고 해야 하나? 

 

 "지난날 내가 어리석어 방사들에게 속았다. 천하에 어찌 선인이 있겠는가? 모두 요망한 일일 뿐이다. 밥을  먹고 약을 먹으면 질병을  적게   있을 뿐이다"라는 한무제의 말은 경험 축적에 따른 딥러닝이라고 생각한다. 수업료를 많이 내고 깨달은 사실인데 지금도 세상의 사람들도 이런 학습을 재탕 삼탕 하지 않는가? 요즘 다이어트를 하며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사마광의 평이 "천하에 인재가 없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로 시작한다. 천하에 인재가 없었던 때도 없지만, 인재가 때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천리마를 알아보는 종자기를 기다리지만 스스로 종자기가 되어 천리마를 알아보는 일에 게으른다. 서로에게 천리마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서로에게 종자기가 되어주는 마음이 넘쳐야 좋은 시대다. 그런 시대는 경쟁의 시대를 넘어 협력과 화합의 시대에 가능하다고 믿는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대는 경쟁의 원리를 이해하고, 경쟁의 방식을 학습해온 세대가 주류다.  방식을 협력과 화합의 시대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은 이제 배우는 세대가 아니라 세상의 주도권을 갖은 세대가 해야 할 역할이다. 내리사랑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마광은 무제에 대해 비판적인 평을 한다. 사치하고, 욕심도 많고, 형벌을 무겁게 하고 세도 무겁게 했다고 평했다. 이런 평을 한다면 진시황에 버금간다. 그러나 그와 같이 않은 결과가 나온 이유로 "선왕의 도를 존중하고 통제하고 지킬 바를 알았다는 것이다. 충직한 사람이 말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이 속이고 감추는 것을 싫어했다. 이는 현명한 사람을 좋아하는데 게으르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후사를  정리한 것에도 칭찬을 더했다.  말을 통해서 어떤 자리에 오르거나 흠이 없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흠을  고치고, 발전하는 것이 인간이 걸어가야  길이다. 그때 '언제'라는 시간이 중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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