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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冊)

역사책을 다시 읽다 - 자치통감 4 - 권 25~26 (신동준, 올재)

by Khori(高麗) 2021.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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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67 ~ BC 60

 

 역사책을 읽는 일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처음 사기 완역본을 볼 때에는 본기, 열전, 세가로 이루어진 기록이 사마천의 글과 더불어 즐거운 일이었다. 담담한 사마광의 자치통감은 그런 맛이 조금 떨어진다. 책을 읽으면 번역상에도 나타나는 한자의 의미, 옛 단어의 의미를 다 알 수 없어 이해의 범위가 좁아지는 것 또한 재미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책을 읽는 중간에 워런 버핏 평전 '투자의 신', '좋은 서비스 디자인', '린스타트업', '시네마 명언 1000'으로 이탈한 20일이 생긴 이유다. 여유가 생긴 반면 너무 길게 벌어져 기억이 조금 띄엄띄엄해졌다. 그래도 한선제가 황제에 등극에 조정의 편향된 힘의 균형을 조정하고, 흉노를 위시로 한 주변국과의 힘겨루기는 계속된다. 역사책으로 보면 지루함이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겐 평온함이라고 해야 할까? 삶은 내가 주인으로 살 때 그 맛을 더하지만 좋고 나쁜 환경은 꼭 남의 이야기로 들려서 문제인 듯하다.

 

 '간활한 자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서로 인용하여 비유하자 법망이 더욱 엄밀해지고, 율령이 더욱 번잡해지고, 문서가 궤각에 가득 차 담당자가 두루 한번 살펴보는 것도 어렵게 됐다. 각 군국이 인용하는 법률이 달라 혼란스러워졌고, 죄는 같은데 판결이 달라 간리들이 인연을 맺고 뇌물을 받으며 장사를 하게 됐다. 살리고자 하면 살리는 법조문으로 의논하고, 함정에 빠뜨리고자 하면 반드시 죽음에 이르는 조문을 인용했다'

 

 이 구절을 보며 그 시대에서 원통하고 비통한 마음이 시대의 마음속에 흘렀기에 기록이 남았을 것이다. 내가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똑같은 문구를 이용해도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은 시절이 흘렀다. 이런 원통하고, 비통한 일의 시작은 균형이 아닌 파행과 편향에서 생기고, 그 파행과 편향은 생각의 방향과 이익의 방향에 따라서 나뉠 수 있다. 인간이 이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이제부터 아들이 부모를 숨겨 주고, 처가 남편을 숨겨 주고, 손자가 조부모를 숨겨 주는 것은 모두 다스리지 않는다'

 

 한선제가 굳이 이런 조서를  내렸을까? 법치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태생적 관계와 본성이 끌리는 바를 감안했다는 생각과 유교의 일정 생각을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곽광의 일가가 퇴출되는 이야기를 보면 한선제는 곽광과 그 일가가 정권의 핵심으로 움직이는 바를 최대한 수용한다. 그 일가들의 온갖 사건이 문제로 붉어지며 멸족하게 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곽광의 집안을 잘 다스리지 못한 점이 크다. 잘한 일에 상을 주고, 잘못한 일에 벌을 준 것으로 그 정도의 과함과 부족함이 있지만 한선제는 자유롭다. 그런 점을 짚어보면 한선제의 출신을 떠나 대단히 생각이 깊고 치밀하다. '치도의 요체는 아주 심한 사람만 제거하는  있을 뿐이오'라는 말을 새삼 새롭게 읽어보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참에 소 씨 일가의 이야기는  생각이 옳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듣건대 만족할  알면 욕될 일이 없고, 멈출  알면 위태롭지 않는다라고 했소'

 '지금 다시 재산을 늘려 남아도는 것이 있게 한다면 단지 자손을 나태하고 타락하게 만들 뿐이오. 현명한데 재물이 많으면 그들의 뜻을 손상하게 되고, 우매한데 재물이 많으면 그들의 허물을 더하게  것이오'

 

 만족한 상태를 정확하게   없다. 스스로  만족한 상태를 지나쳐 과하게 된다는 기준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결국 스스로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결정하고,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에게 연결된 일이기 때문이다. 나를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절제와 뺄셈의 현명함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의 문제다. 달리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고, 달리 살아간다는 것이  즐거운 일인가?

 

 자치통감 권 26의 상당 부분은 배반한 강족, 강족과 흉노의 관계를 미연해 방지하기 위한 한선제의 군사전략과 70세의 노장 조충국의 이야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현명한 사람과 군자를 황제가 나라를 쉽게 통치하는 도구로  점이 눈에 띈다. 현자와 군자가 도구라면  기능적 측면이 부각된 것일까? 황제는 현자와 군자를 알아볼 안목이 있는가? 현자와 군자가 스스로를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면 내쳐져도 허물이 아니라는 말을 통해서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이 둘의 관계가 어떤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둘 간의 신의와 협력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이익만 주고받으면 오래갈  없고, 서로의 마음만을 받았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상호 이익과 사람에 대한 신뢰가 병행하면 된다. 쉬운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 노력하고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배려하는 마음이 함께 해야 한다. 문득 나는 잘하고 사나? 이런 문제점에 봉착한다.

 

 '신이 듣건대 백성은 약하지만 이길  없고, 어리석지만 속일  없는 존재라고 합니다'

 왕길이 한선제에게 상소하는 글 중에 인상적인 말이다. 조정래의 정글만리에서 '나라는 정책을 세우고, 국민은 대책을 세운다'라는 말처럼 신선하다.  말이  참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조충국과 한선제의 논쟁은 상당히 재미있다. 황제가 가장 많은 자원을 사용하는 전쟁을 대하는 자세를 읽을  있고, 조충국은  자원을 바탕으로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황제는 나가서 속전속결을 이야기하고, 조충국은 전장의 상황을 세밀하게 살피고 자신의 계획을 손자병법을 빌어 종종 이야기한다. 만약 이순신이 이런 군주와 함께 임진왜란을 논했다면 어땠을까?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때는 자신이 어떻게   있는 범위가 제약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을 천천히 읽다 보면 조충국은 대단히 치밀하고, 상대방의 상황과 심리를 꿰고 있다. 그의 상주문에서 '신이 듣건대 용병은 계모를 근본으로 삼하는다고 했습니다. 다각도로 검토해 계책을 만드는 것만이 한쪽만 계산하는 것을 이기는 이유입니다'라고 말한다. 현재 우리가 인공지능, AI라는 것도  생각의 확장에 불과하다. 계모라고 말한 이건 사고력은 인간의 경쟁력을 만든다. 생각하는 힘이 인간 세계에서 절대적인 이유다. 무엇을 해도..

 

#자치통감 #역사 #인문 #독서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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