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쟁, 과거를 해석하는 싸움'이란 제목이 책의 주제와 내용을 단번에 간파할 수 있도록 해준다. 과거 군사독재시절 청와대로 사용되던 구 일제식민팀탈시기의 사진과 광주민주화 운동당시의 인상적인 사진을 표지에 대비한 것만으로도 어떤 해석의 싸움인지 가름할 수 있다. 그 핵심에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역사교과서가 존재한다. 다른 해석을 갖은 피아(彼我)의 존재 모두 교육이 백년의 대계이며, 다음 세대의 생각을 프레임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서로 물러설 수 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국사 교사서의 변천과 그 집필의 변천사를 통해서 역사학계와 정부가 검정, 국정, 이의 혼용을 통해서 어떻게 기준을 만들어 왔는지를 일목 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해방이후에도 쿠데타를 통한 독재개발의 시간에도, 신군부의 시대에도, 민주진영의 집권시기에도 각 시기별의 치우침이 존재하지만 긴 시간을 들여서 본다면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사실과 해석의 방향으로 다가왔음을 전후 맥락에 맞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역사논쟁 불씨를 당긴 뉴라이트, 기존부터 존재하던 올드라이트, 언론, 집권세력의 규합을 통해서 객관적 사실과 시대의 해석에 대한 동시대의 인식이 어떻게 정치적이며 이념적인 해석 논쟁이 되었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한다.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적 사상 배경에 대해서도 인용하려는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이 책은 교과서의 역사에 가해진 다양한 권력들의 왜곡, 배경에 대한 정리를 시도하고 있다.
역사가 승자의 방식으로 기술된다고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참 불운하고 천박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승자의 방식이라 하더라도 자그마한 염치도 없이 침소봉대와 자신들의 기반을 곤고히하는 효율에 집중된 기술 전개한다. 다음 세대에게 합의없이 생각을 강요하는 시도가 존재한다.
책을 떠나 내가 이해하는 바는 그렇다. 그렇기에 이 책의 의견에 백번천번 공감하고 지지할 수 밖에 없다. 뉴라이트 계열이 조선후기 사회를 국가로 인정하지 못할 타락할 국가 또는 아노미 상태로 인지함으로 그들은 그 시대에 잃어버린 것이 국가라는 말을 잘 하지 못한는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상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된 독립운동보다는 경제학사의 관점에서 식민지 시대의 숫자적 증가에 집중한다. 동북아시아 열강들의 다양한 상호작용보다, 나라가 망해서 침탈을 당하고 수탈을 당하는 그 사실보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소작농 소출이 그 기간에 좋아졌네라'라고 해석하는 그 태도와 관점이 매우 비민족적이며, 탈대한민국적이다.
누구의 관점인가? 그들이 친일세력이란 프레이밍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은 그 뿌리때문만이 아니다. 지금도 식민지시대의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물리적으로 지배한 일본의 관점이라며 이는 일본사학자의 몫이다. 그 시대 조선반도, 한반도에 있던 identity의 시각이 3.1운동정신이 아니라...기차가 다니고, 전기가 들어오고, 산업이 발전하고 미곡생산량이 증각하고, 이를 수탈해가는 노력에 의해서 교역량이 증가하고가 더 중요하단 말인가? 그렇다면 헌법전문의 3.1운동도 잘살게됬네라고 그렇게 바꿔보자고 해야할 텐데 그럴 용기는 없는가보다. 나는 혼(魂)이 나간 종자들이라고 생각한다. 혼이 나가니, 역사적 사실의 다양한 해석을 원천 봉쇄하고 회귀하고자 하는 열망만 남은 것은 아닐까? 그들에게 지금과 같은 불편한 미래를 발본색원할 기회를 탐색하기 위해서....
소리없이 해방이 되고, 이념의 시대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새로운 시대의 조류와 분할된 조국의 현실은 헌법에 명시된 3.1운동의 열망과는 다르게 전개된 듯 하다. 피아의 구분이 반공이란 시대 이념에 따라 구분되었다. 그리고 식민지 시대의 앞잡이들은 가볍게 반공으로 자신의 치부를 가린다. 이런 시대의 왜곡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존재하는 하는 사실과 함께 설명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왜곡과 왜곡의 정당화는 만주, 연해주의 독립운동등에 대한 상대적 평가절하와 외면으로 나탄난다. 더불어 세계 전쟁사에 민간인이 군인대비 가장 많이 죽은 어이없는 한국전쟁의 이면은 말하지 않는다. 배달의 기수만을 기억하게 하려고 노력하는지 모르겠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문서를 통해서 동시대를 보는 역사적 기록, 사실, 해석을 두려워하지 않는듯 하다. 중국에서 기술된 한국전쟁을 보면 이 또한 침소봉대가 존재하지만 중국판 배달의 기수다. 그럼으로 두가지 사실을 맞춰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개발 독재와 신군부의 시대를 거치며 자신들의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노력들도 마찬가지다. 이 시기에 그들의 자랑스럽지 못한 뿌리, 태생적 열등감을 반공과 성장의 결과를 통해서 보상받으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에 존재했던 객관적 사실의 존재와 해석에 대해서 자학사관이라는 것을 붙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왜 우리의 성과를 평가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 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성과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고 하는 수준은 다른 것이다. 모반으로 망한 자들이 숨겨둔 재산으로 다시 부귀영화를 누린것과 충신이 검소함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을 같은 반열에 둘수는 없는것 아닌가? 역사란 사실과 비판적 기술, 그 시대의 열망을 기록하고 그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고 생각한다. 반성도 없고, 자신들의 현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한가지의 목적에 따라 역사적 사실과 해석을 재단하는 것을 "왜곡", "왜곡의 정당화"라고 믿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시대의 자손들이 지금은 교과서를 바꾸려는 노력을 한다. 대단히 일관성이 있는 일이다. 그것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의 본류를 한치도 잊지 않는듯하다. 이럴때 그런 노력을 통해서 이익을 보는 학계, 정계, 단체를 묶음으로 분석하는 것은 상당히 유의미한 일이다. 어차피 역사의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 세력은 대단히 꾸준하고, 집요하고 먹고살만 한듯 하다. 대한민국이란 태생적 한계가 갖고 있는 부분이기에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북한이란 존재가 있는한, 쌍생아인 대한민국은 자유롭지도 못하다.
부당하고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피해자들보다 부지런하다. 그래서 역사논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학계, 사회등 옳바른 시각을 갖은 사람들이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민주적인 자기결정권을 갖고, 사회적 리더를 뽑는데에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책의 주제인 교과서와 같은 백년대계 문제에서 한 두가지의 논리와 침소봉대를 압도하는 노력과 힘이 필요하다. 민족이란 개념에서 벗어난 서구의 진보와 달린 우리나라의 진보는 대단히 민족적이다. 분단국가의 현실, 독립운동사와 그 후예, 민주화 운동과 그 피해자와 자손들을 봐도 우리 나라의 근현대사는 세계적인 추세와 다르다. 이와 대조적으로 민족주의를 보편적으로 강조하는 일명 보수집단은 70년대에나 유행하던 반공과 한국의 분단으로 인한 종북으로 먹고 산다. 대신 친일이란 프레임에서 한일강제병탄에서 100년이 되가는 지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그런 시대를 자식들에게 물려주려는 현실이 부끄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것이고, 염치없는 짓이라 생각한다. 부끄러운 사실은 그 사실이 존재한 시대에 국한시켜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를 이어 하고 있다. 그렇기에 옳바른 시각에 대한 도전또한 대를 이어서 응대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남은 자가 이기는 싸움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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