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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劇)

운명, 바뀌냐? 안 바뀌냐? 다 너 하기 나름 아니겠니? - Volition 미래를 보는 자 (★★★★)

by Khori(高麗) 2021.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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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에게 운명이란 주어진 것인가? 그럼 누가 주었단말인가? 아니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인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주제에 대한 아주 많고 다양한 토론은 분명 살아가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질문을 잘 읽어보면 원하던 결론이나 답이 되지 않는 사실만 명확하다. 왜냐하면 주어졌는데 그 결과는 나도 알 수가 없고, 그런 운명을 던져준 실체에 대해서도 확인할 길이 없다.

 

 인생의 막바지에 들어서면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을까? 나락으로 떨어졌다면 이런 운명을 던진 녀석이 보상을 하는가? 인간 세상의 최고점을 달리면 그 결과가 걸어온 모든 길을 보상하는가? 주어진 길이지만 내가 걸었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러면 이런 운명을 짠 녀석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내가 걸어온 부분을 오롯이 인정하는 삶이 개인적으로는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최소한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존엄성이라도 주장할 수 있고, 가끔 주어지는 세상의 호의에 감사하고, 불의에 욕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영화는 그런 인간의 자유의지를 돌아보게 한다. 미래의 잔상이 떠오르는 남자의 삶이 좋을까? 만약 인간이 미래에 대한 단편적 조각이라도 알 수 있다면 희망이란 단어는 퇴색되지 않을까? 비관적 삶이 주어진다면 절망의 그늘이 드리우고, 낙관적 삶이 주어진다고 인간이 지족불욕의 수준을 유지할지 알 수 없다.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고, 그렇지 않은 종자들을 우리는 성인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한 번 걸어간 길에서 발생하는 틀어진 인생의 길에서 미래에 편린 속에 있던 여인을 만난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장 숭고한 주제란 사랑일 수밖에 없는지 모르겠다. 다시 과거로 돌아온 나는 현재에 존재하고, 사람들은 과거의 시점에서 미래의 이야기를 현재의 나로부터 듣는다. 발상이 재미있다. 걸어온 시점은 고정되고, 나는 계속 상대적 시간의 흐름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돌아가고 돌아간 시점 속에서 처음 그 시점에 도달한 나, 과거로 처음 돌아간 나, 두 번째로 과거에 돌아간 나란 존재가 모인다. 그 모든 시점은 나란 존재는 결국 하나의 의지, 누군가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모인다. 그러나 운명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주인공 제임스의 죽음을 통해서 미리 본 미래가 변화하지 않았음을 확고히 한다. 살짝 재수가 없어지는 구조다.

 

 이런 제임스의 자유의지가 아주 무용지물인 것은 아니다. 나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타인의 삶과 생명엔 크나큰 변화를 주었다. 그럼 내가 백날 용을 써도 나는 안 바뀐다는 말인가? 그럼 운명이란 아주 재수떡머리 없는 의미가 될 수밖에 없다.

 

 되짚어 보면 나의 의지로 타인에 삶에 영향을 준다면, 분명 타인도 나의 삶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다시 돌아가 타인들에 대한 사랑과 희생, 공헌을 주고받으며 운명과 인생이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에 좋은 결단과 의지력(volition)을 보이며 삶을 살아낼 필요가 있다. 

 

 뭐... 이런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낭설을 기록해 보기로.. 어차피 휴가에 노닥거릴 일이 뭐 있겠어. 

 

#미래를보는자 #볼리션 #Volition #자유의지 #사랑 #헌신 #영화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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