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개통된 GTX를 타고 읍내에 나갔다. 가는 길에 남희근의 노자타설을 다시 읽으며 더 이해가 되는 것이 나이를 먹어간다고 느낀다. 나이 먹는 것은 아쉬운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고, 이해가 되면 좋은 일이기도 하고 또 좋다고만 하기로 그런 일이다.
지하철을 내려서 인사동 길을 걸었다. 전통문화의 잔상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막연한 옛날의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현재는 현재의 흐름에 따라 새롭게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지나가는 건물 곳곳에 타로, 점집이 많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시대라고 모두들 느끼나 보다.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고 생존하고 살아가기엔 뭔가 부족한 시대인가? 물질과 기술이 발달하고 사람은 계속 헝그리 해진다는 생각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것이 현실이란 생각이다.
오랜만에 자주 가던 서점을 멀리 돌아서 MMCA란 곳을 갔다.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ir Korea라는 한국 현대미술관이다. 국제시대에 맞게 영어 약자도 좋지만 요즘은 무분별하다는 생각도 많다. 이건희 컬렉션은 줄이 엄청 길다.
첫 그림부터 재미있다. 산수화 같은 무릉도원에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그 와중에 야자수가 눈에 띈다. 20세기 초, 근대의 우리 역사는 참으로 슬프고 기구하고 복잡하다. 병풍의 화폭에 이어진 그림이 참 재미있다. 집보다 큰 사람, 조그마한 다리를 보며 시대를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까? 중간중간 다른 관람객들의 신체부위가 나타난다. 대문의 사진도 원체 몰입한 관람객의 뒤통수를 함께 담을 수밖에 없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미술관의 사진은 어떨 땐 이렇게 사진으로 보거나, 현장에서 핸드폰으로 볼 때 더 잘 보일 때가 있다. 눈이 침침해서 그런가? 절구질을 하는 여인, 치마도 천을 덧대어 만든 듯한 모습과 아이가 평범해 보인다. 이런 일상이 당연하던 시대였을 것이다. 박수근의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김기찬의 흑백사진처럼 정겨워 보인다.
보고 싶었던 그림은 이중섭의 그림이다. 황소도 있으면 좋으련만 흰소를 직접 봤다. 신윤복의 그림이 보기보다 조그만 화첩에 아기자기 그려져 있어서 신기했는데 흰소도 작품이 크지는 않다. 우락부락하고 에너지 넘치는 흰소라는 생각과 왜 저렇게 힘을 내며 당차게 가야하는 이유를 생각하면 꼭 즐겁지만도 않다. 그의 생애와 자식에 대한 아비의 느낌을 생각해 보면 작가 스스로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해봤다.
곡마단이란 작품인데 그 시대를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인생살이가 다 이렇지 않나? 원래 미래는 기대와 비슷하기도 하고 엉뚱하게 나를 끌고 가기도 하니까?
난 아이들이 있는 그림이 좋다. 꼭 동화책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얼굴과 똘망똘망할 것 같은 눈빛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입춘대길이란 글자에서 立자는 더욱 안 보인다. 혹시 일제강점기이기 때문 일가?
그림이 재미있다. 앞을 보는 사람, 뒤를 보는 사람, 노를 젓는 것인지 장난감 칼을 찬 것인지, 소는 참 쬐만하다.
조금 읍내를 걷고, 구경과 감상도 하고 일상을 천천히 보낸 꽤 괜찮은 오후다.
#국립현대미술관 #MMCA #이건희컬렉션 #박수근 #이중섭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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