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71은 위나라 조예가 위명제로 즉위하는 과정으로 시작하고, 권 72는 오장원에 지는 제갈량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역사의 기록으로 보는 삼국지는 참 담담하다. 이 사실을 멋지게 그려나간 나관중은 가히 천재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 게임으로도 대략 5-600명 정도가 이름이 거론되는 인물이다. 워낙 압도적인 영웅으로 그려져 부족해 보이지만 거론되는 인물들의 면면은 대단히 뛰어나다고 생각해야 한다.
오늘은 드라마 '사마의' 마지막 편을 보며 함께 마무리를 해야겠다. 요즘 일이 바빠서 정신이 없다. 난이도도 있지만 하나씩 풀어가며 배우고 도전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힘들 때 주변 사람들을 보듬고 의욕을 갖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한 시점이다.
"그는 십전십승을 하면서도 전혀 후환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위연의 계책을 쓰지 않았다"
제갈량이 단면을 볼 수 있는 사마광의 기록이다. 이 설명을 보며 제갈량은 참 측은하다는 생각을 한다. '십전십승'만을 보면 대단하고 뛰어난 지략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왜 '십전십승'을 해야만 하고, '후환이 없어야 한다'는 어려움을 달고 살아야 할까? 자신의 능력보단 주어진 자원과 환경이 넉넉하지 않기 여건이란 생각이 들었다. 재능이 없다면 환경에 대한 문제가 경시될 수 있지만, 재능이 있음에도 환경적 지원의 부족으로 더 절박함에 몰리는 환경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그가 걸어가는 삶이다. 환경적 이유와 본인의 완벽주의가 이끄는 환경이란 결국 커다란 스트레스다. 기계와 같은 논리적 처리가 일에서는 필요하지만 삶은 각박해진다. 왜 그가 법치란 부분을 강조했느지 생각해 볼 대목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읍참마속도 이런 범주라 생각된다.
장굉이 유언으로 남긴 말이다.
"자고로 국가를 다스리는 자는 모두 덕정을 펼쳐 태평성세를 이루려 하나 막상 그들의 통치를 보면 대개의 경우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드물다. 이는 충신과 현인의 보좌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군주가 사사로운 정을 극복치 못하고 가까운 사람을 임용한 데 따른 것이다"
인재가 없는 것인지, 인재를 볼 안목이 없는 것인지 정확한 판단 기준은 없다. 우린 대부분 결과를 갖고 해석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결과의 해석은 그나마 명쾌하지만 때, 장소, 상황, 지위에 맞는 판단을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조금씩 후회를 추적할 때가 많다. 드마마 '사마의'에서 조진, 조홍을 중심으로 한 조 씨 가문의 무신과 사마의를 중심으로 한 사대부의 갈등이 나온다. 역사적 사건을 떠나 높은 자리를 지향하는 인간과 그 주변의 인맥(친족, 외척)은 항상 갈등과 문제를 야기할 때가 많다. 인력채용의 방식이 아니라 평판과 추천에 의한 인력 배치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조직의 시작은 의기투합으로 시작하고, 50명이 넘어서기 시작하면 의기투합보단 시스템을 통한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머리로 전부 계산하며 처리할 한계가 넘어가고, 시간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의 기준에서는 인재의 등용이 중요하고, 인간의 본성에 따른 blood code에 대한 신뢰성은 인간이 아주 명확하게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당시 백성들이 이를 두고 속언을 지어 말했다.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도망가게 했다!"
사마의가 이 얘기를 듣고 웃으면 말했다.
"이는 내가 능히 산 사람의 행보는 예측할 수 있어도 죽은 사람의 행보는 그리 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성문에서 거문고를 타는 제갈량은 소설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에겐 레전드와 같은 이야기다. 역사의 기록으로 본 사마의는 아주 신중하고, 입체적인 사고를 하고, 자신을 과하게 노출하지도 과하게 낮추지도 않게 조리 있게 이야기한다. 똑똑하다는 말에 부합한다.
드라마 '사마의' 2편에서 사마의와 제갈량이 대치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이 장면을 아주 새롭게 이해한 것은 주인공이 사마의 때문이란 생각을 했다. 제갈량은 집요하게 사마의를 자극한다. 그 모습이 도발적이고 비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반면 사마의는 자신의 실력을 알고, 제갈량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승산을 끊임없이 계산한다. 그 인내의 힘으로 제갈량을 막아낸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기록이 '자치통감'에 나와서 지난번 들었던 그때의 생각, 자치통감, '대군사 사마의'란 드라마를 머릿속에 다시 그려보게 된다.
진수가 삼국지에서 제갈량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제갈량은 승상이 돼 백성을 위무하고 법도인 의궤를 밝게 하며 관직을 간약하게 하고 권위로 다스림으로써 백성들의 성심을 열고 공도를 밝혔다"
간략하다는 것은 핵심을 가른다는 의미를 품기도 하고, 쉽다, 요즘 많이 말하는 smart와도 연결된다. 결국 촉이란 나라의 시스템의 운영에 대한 컨트롤타워의 방향을 짚어볼 수 있는 점이다. 소설에서 유비가 그 부족함을 채우지만 자치통감의 기록으로는 의문점이 생긴다. 만약 제갈량과 더불어 백성과 사람을 모으는 영웅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나관중은 이런 관점 때문에 유비를 아후 후하게 그려낸 것은 아닐까?
"제갈량은 죽으면서 요립을 울게 했고, 이병을 발병해 죽게 만들었다. 어찌 단지 원언이 없는 것에 그쳤을 뿐이겠는가? 무릇 물이 지극히 고요하면 악한 사람도 거기서 모범을 찾고, 거울이 지극히 맑으면 추한 사람도 화내는 것을 잊는다"
제갈량이 죽고 제갈량만큼 뛰어나다고 자부한 요립은 회복의 기회가 없고, 언젠가는 제갈량이 다시 불러줄 것을 기대한 이병은 화병이 나서 죽었다. 제갈량은 지식인이고, 지식인들에게 추앙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가 백성들의 말로 백성들에게 다가설 기회가 없었던 것인가? 그럴 마음이 없던 것일까? 나도 제갈량을 좋아하지만 항상 측은한 마음이 드는 이유다. 이 부분은 자치통감, 소설, 드라마가 일치한다. 누군가 "난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제일 좋아"라고 말하면 측은한 마음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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