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71만 읽으면 자치통감 9도 끝난다. 책으로 보면 얼마 안 되지만 오늘도 원본으로 한 권, 내가 든 책으로 한 편정도를 읽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오늘은 무려 12시간 넘게 혼절했다 깨어났다. 오랜만에 정신없이 잤다. 아침에 일어나 차주에 해야 할 중요한 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책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드라마 '사마의'를 또 두 편정도 봤다. 드라마 볼 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을 땐 조금 지겨웠었다. 드라마를 보며 책을 읽으며 훨씬 읽기가 쉽다. 드라마와 달리 곽귀인이 그리 썩 좋은 인물인지 알쏭달쏭하다.
권 70은 위기 2, 기원후 223년부터 시작한다.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하는 부분으로 시작되고 칠종칠금이 사실인지 궁금해진다. 자치통감을 읽으며 삼국지연의의 기사가 전부 사실인지 아닌지 의심이 많이 생겼다. 특히 허무한 적벽대전을 생각하면 그렇다. 제갈량은 현재까지 아주 뛰어난 책사라고 생각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겨우 한 개의 주를 점거한 촉한의 소국 입장에서 나라를 유지하는 정치력은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위나라가 전체 대륙의 7-80%를 차지하고, 각 10%의 오나라와 촉한이 겨우 지지고 볶으면 버티는 형세이기 때문이다. 그런 압박을 유지하고 버티는 것은 당연히 실력이기에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줄 필요가 있다.
통일을 위해 나서는 조비에게 가후가 한 말이다.
"유비는 웅재가 있고, 제갈량은 치국에 능합니다. 손권은 능히 허실을 가릴 줄 알고 육손은 군사에 정통합니다. 촉나라가 험한 요충지를 점거해 굳건히 지키고 있고, 오나라가 배를 띄워 강호를 누비고 잇으니 이들 모두 일거에 도모하기는 어렵습니다"
적을 이해하고, 형세를 판단하는 것은 전략 기획의 중요한 덕목이다. 생각에서 이기고 시작해야 실제로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좋은 결과는 대부분 좋은 생각과 시작에서 기인한다. 그것을 나중에 알고 후회하는 것이 나 같은 일반 사람의 일상다반사다. 매번 유비는 웅재가 있는 것으로 사마광은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난세의 영웅의 기운이나 재주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통일을 촉한이 했다면 유비가 훨씬 좋은 결과를 낼 재목이라고 생각한다. 조조가 있고, 유비가 조조의 아들이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숨을 거두기 전 유비는 제갈량에게 유언한다.
"군의 재능은 조비의 열 배나 되니 반드시 국가를 안정시키고 끝내 대사를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오. 만일 태자가 가히 보좌할 만하면 그를 보좌하고 만일 그가 무능하면 그를 대신해도 좋소"
죽기 전의 말이 진실인 경우가 많다. 유비가 자식의 그릇을 보고 판단했다고도 볼 수 있다. 유비는 제갈량의 그릇에 대한 판단이 없었을까? 이 말을 통해서 유비는 유선을 제갈량이 잘 보좌하도록 둔 한 수라고 생각한다. 제갈량은 충신이란 명성을 얻고, 자식인 유선도 지위를 유지하며 서로 손해 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의 통시가 문신을 통한 통치력과 무신을 통한 군사력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때 문무를 겸비하는 것이 난세를 평정할 기본이며, 더불어 배운 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품성이 그 세의 규모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지금도 그렇다. 제갈량처럼 너무 이성적이면 당연히 인간미 또는 매력이 떨어진다. 그런 군주는 오래가지 못한다. 조조, 유비, 손권은 어찌 되었던 문무와 매력을 함께 갖고 있는 것이다. 분수에 맞지 않은 지위를 탐하면 나는 자리가 사람을 기름에 튀기듯 튀겨낸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제갈량은 현명했고, 사마씨는 결국 현명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내게도 살아가는 한 가지 기준이다.
양옹이 제갈량에게 간하는 내용이 있다. 요약하면 지위와 역할에 맞게 잘 움직이면 주인은 부드러운 얼굴로 고침(높은 베개)을 사용하고 밥 먹고 술 마시는 일이 전부라고 말한다. 주인이 집안의 온갖 일에 일일이 나서서 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 하나도 되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으로서의 직무를 버린 일이라고 지적한다.
쉽게 말하면 micro-management의 폐해를 말한다. 나도 지위가 올라 조직을 맡아보면 내 생각대로 사람들이 움직이길 바랬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허황된 희망사항인지 깨닫는데도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는 방법과 재주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가는 방향과 목표를 정해진 시간에 잘 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시시콜콜 이야기해봐야 서로 분쟁만 생긴다. 이를 참지 못하고 본인이 나서서 온갖 일을 하면, 그 조직의 일군은 하나만 남게 된다. 이것을 빨리 깨닫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자신의 그릇을 넓히고 함께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그래야 더 크고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작지만 한 나라의 재상이 이 말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을 보며 제갈량의 답답함을 이해할 수 있어 측은하다. 제일 답답한 일이란 몰라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하게 되는 일이고,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다.
맹획이 7번째에 잡혀서(칠종칠금 후에) 제갈량을 찬탄하였다. 그리고 반기를 들지 않았다. 이런 모습 속에 제갈량이 이성적이며, 사람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혜안이 있음을 또 알 수 있다. 어쩌면 주인 잘못 만난 죄인가?
진수가 삼국지 위문제기에서 조비를 평한 부분이다.
"황제는 천부적인 자질로 문장이 뛰어나 붓을 들면 문장이 됐고, 널리 섭렵하며 기억력이 뛰어났다. 실로 재예를 겸비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광대한 기풍과 공평한 마음을 더해 늘 자신을 면려하고 천하대도를 유지해 덕정을 널리 폈다면 고대의 명군들과 그리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칭찬이라고 볼 수 있고 동시에 아쉬움이라고 볼 수 있다. 천부적인 자질이 난세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광대한 기풍과 공평한 마음'이 부족하다고 보면 스케일이 조조만큼 크다고 보지 않는 것인지, 다른 나라인 손권과 유비보다 그렇다는 것인지 위나라로서는 아쉬움이다. 공평한 마음이 부족한 것은 예술가적인 고집을 말하는 것일까? 드라마 '사마의'에서도 조비는 천하 통일과 평안을 공언하며 조조의 유지를 잘 받든다. 그러나 편협함이 존재하고(특히 마누라한테 쪼잔하게, 역사적 사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님), 사사로운 감정이 앞설 때가 많다.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에 이를 조화롭게 만들어 줄 인재를 얼마나 갖고 있는가의 문제다. 위문제 조비의 시대가 가고 다시 장자인 조예가 뒤를 이어 등극한다.
육손이 손권에게 간하는 말이다.
"충성스럽고 정직한 말은 성급히 주청 하지 않고 용안을 살피며 제왕을 기쁘게 하는 신하는 누누이 작은 이익을 갖고 보고합니다"
이 말을 여러모로 생각하게 된다. 심사숙고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때에 맞지 않으면 이것 또한 낭패다. 무엇이 우선인가? 때에 맞는다는 것은 그때가 어떤 이익과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 내용상으로 작은 이익을 이야기하는 것과 정말 큰 이익과 효과를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일이다. 이것을 모두 하나의 틀에 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중용이라고도 할 수 있고, 적시에 알맞고 올바른 말을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현명하게 해라'라는 말인데 누구나 현명하다는 말을 이해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time, position, occasion, place에 맞게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수양을 하는 이유다.
"무릇 먼 곳의 사람을 다독이고 가까운 곳의 사람과 친히 지내는 데에는 신의보다 나은 것이 없다"
사람과의 사귐, 정치도 폭넓게 보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 안에 존재한다. 인간(人)+말(言)=신의(信)가 되기 위해서는 언행일치가 불가피하다. 근교원공, 원교근공과 같은 병법서의 말이 하책인 이유다. 싸우는 것이 참으로 하책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올바른 싸움은 반드시 이기기 위해서 해야 한다.
왕랑의 상소에 있는 구절이다. 백성이 어려운데 궁궐을 보수하려는 상황에 한 말이다.
"멀리 있는 자를 위무하려는 자는 반드시 눈앞의 것을 간략히 하고, 외적에 대항하려는 자는 반드시 안에서부터 절검해야 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뜻은 그렇지 않은데 '멀리있는 자'가 지리적인 의미인지 아직 도래하지 않은 후손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중의적으로 이해된다. 절약과 검소함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씀씀이가 늘어나면 즐거우나 줄이는 것은 고통이다. 인간 스스로가 약삭빠르고 이익을 말하지 않아도 빠르게 체감하기 때문이다. 마나님이 매일 나보고 '남들 다 퍼주고 블라블라' 잔소리할 때가 있다. 그 마음도 이해하고 또 베풀어 받는다는 마음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알면 베풀 수 있으나, 모르는 일을 마구 베풀지는 못한다. 하지만 스스로 지위가 급여가 늘어도 검소하려고 한다. 세상을 살면서 이를 절제하지 못하고 달리다 좋은 않은 결말로 끝나는 none-fiction drama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궁극에 달해 잠 못 이루는 밤을 많이 보낸다. 자유롭게 살고자 하고 또 평범한 일상이 자주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중요하다.
제갈량이 요주를 칭찬할 때 나온 말이다.
"실로 승산이 있어야 싸우는 이른바 견승이전(見勝而戰)과 싸움의 어려움을 알고 후퇴하는 지난이퇴(知難而退)의 이치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인간은 컴퓨터처럼 계산할 수 없지만, 다양한 인과관계를 간파하는 능력은 컴퓨터보다 우수하다. 하나만 계산하면 기계가 우수하지만, 여러 개를 동시에 연산하는 기본 능력은 인간이 우수하다. 이것을 요즘 기계가 극복해보려고 난리다. 위에서도 어떤 결과는 시작하기 전 생각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생각에서 이기고 시작해도 예측불허의 상황이 승패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견승이전(見勝而戰)이란 목표를 향해가는 전략이고, 지난이퇴(知難而退)란 하나의 plan B 또는 출구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는 하나의 쌍으로 움직여야 차질이 적다. 대부분 잘 될 것이란 생각으로 출구전략과 플랜 B를 준비하지 않아 상황이 바뀌면 우왕좌왕한다. 현명한 사람은 그래서 항상 심사숙고하고 걱정이 많은 이유가 아닐까 한다.
마지막 1200리를 8일 만에 달려가 적의 심계를 무너뜨린 사마의를 보면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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