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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冊)

역사책을 다시 읽다 - 자치통감 9 - 권 65~66 (신동준, 올재)

by Khori(高麗) 2021.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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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4권에서 9권으로 건너뛰어 읽기 시작했다. 삼국지를 읽기 위해서 선택한 길이다. 황건적의 난으로부터 시작되는 삼국지연의를 생각하면 자치통감 권 58, 한기 50, 한영제 광화 4년, 서기 181년부터 읽어야 한다. 동탁이 황제를 폐립하고, 유비가 서주를 얻고, 조조가 원소를 제거하고, 손권이 새롭게 떠오르는 과정이 소설이 아닌 역사가의 입장에서 기록되고 있다.

 

 그럼에도 8권을 넘어 9권부터 자치통감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첫째는 긴 사서를 읽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글 번역본이라 해도 한자어가 많고, 지명, 직책 등 주석이 있으나 어렵다. 내가 읽는 목적은 역사적 사실의 암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의 관계와 상황 속에서 무엇을 이해해야 좋은 결과를 만들어갈 것인가? 그것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가의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럴싸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이유는 지루한 자치통감의 흥미를 위해서 대군사 사마의 드라마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이 시점이 대략 조조가 황제를 품에 끼고 자신의 세를 넓히는 시점이다. 자치통감 9권 권 65, 한기 57로 시작하는 시점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변명은 참 잘한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한기 57~58을 읽는데도 여러 이유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조금 분발해야겠다.

 

  고간과 중창통의 대화 중 중창통은 "군은 웅지는 있으나 웅재가 없고, 선비를 좋아하나 인재를 선발할 줄 모르오. 이는 군이 깊이 경계해야 할 일이오"라고 말한다. 이런 조언은 듣는 사람의 그릇과 지위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한신도 한고조에게 비슷한 돌려까기를 한 셈이다. 중창통은 다행히 고간이 죽고 순욱의 추천으로 상서랑에 임명되고 <창언>이란 책을 저술했다. 

 

 조조는 소설에서 간웅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치밀한 계획과 인재육성과 파격을 새롭게 분석한다. "제군의 간언은 모든 위험을 고려한 안전 계책이었던 까닭에 상을 내린다. 이후 모두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하는 대목을 보면 다양한 전략, 계획과 같은 사고의 힘을 깊이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생각을 이해하는 것과 감정적인 상황은 별개의 것이다. 지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인재를 얻어 세상을 평정하겠다는 생각은 시대적 상황에서 보면 틀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대군사 사마의 1편에서도 월평단을 통해 인재를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조조의 요구사항은 파격적이다. 덕과 인의를 말하는 식자들에게 세상을 평정하여 편하게 백성들이 살아가는 것이 덕이라는 대사가 다시 생각난다. 실용성의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항상 덕과 인의, 실용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고 이 간극은 인간의 몫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안는다. 특히 드라마에서 조조가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허소가 답한 "당신은 치세의 능신이고 난세의 간웅이오"란 말을 조조가 내뱉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수경선생 사마휘와 방덕공 방통만이 와룡을 중시했고 사마휘가 유비와 이야기하면 와룡과 봉추를 칭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8권의 기록을 보면 유비가 어렵게 산 것은 맞으나 어렵다고 지위나 인맥이 형편없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노식 아래에서 공손찬과 공부했고, 기록을 보면 희로애락이 나타나지 않는 포커페이스다. 또한 관우와 장비와 함께 숙식하며 뜻을 같이하며 삶을 같이 할 줄도 알고, 공손찬을 찾아온 조운을 알아보는 안목도 있다. 어떤 면에서 유비는 삼국지연의의 설정상 동정심을 유발하는 느낌과 달리 나름의 실력이 과소평가되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소설 속의 유비는 딱히 잘하는 게 없다는 생각, 그저 성인처럼 백성을 사랑하는 자애로운 부분이 있으나 방통의 두 번째 조언을 따라 유장을 접수하는 과정을 보면 명분을 조금 고려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제갈량이 세 번 찾아왔다는 정성만으로 유비를 따르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특히 습착지의 평을 보면 "신의를 더욱 밝혔고 형세가 곤핍해 사정이 위급한데도 오히려 말이 정도를 잃지 않았다"라는 구절을 보면 대의명분에 밝고 멘탈 갑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친화적인 유비에 대한 감성적 느낌은 설정이었을까? 기록을 더 보며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렇다면 조조와 유비에 대한 접근과 관점이 많이 바뀔 것 같다. 성공하는 방법은 확정된 것이 없을 뿐이니까...

 

 조조가 사마의를 등용하는 과정은 대군사 사마의의 드라마가 과장은 있으나 자치통감의 기록과 더 일맥상통한다. 관점염이라니.. 

 

 조조는 자신의 지위를 버리면 모해받을 것을 두려워했다고 직접 말한다. 어떤 면에서는 가식이 없다고 할 수 있고, 멈출 수 없는 길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이해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신의 식읍을 양보하는 것을 보면 아주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사람을 이해하고 다루는 능신이란 점은 높이 살 수밖에 없다. 허소의 판단은 참으로 핵심을 간파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한나라가 아니라 유비, 조조, 손권의 세 집단이 하나의 나라로 가는 과정이었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의 평가가 갈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손권이 여몽을 일깨우는 것을 보면 재미있다. 공부에 게으름을 피우는 여몽에서 손권이 말한다. "고(손권)가 어찌 경보(여몽)에게 경전을 공부해 박사가 되라고 하는 것인가? 단지 두루 섭렵해 옛일을 알 수 있는 정도면 되오. 경은 일이 많다고 하나 고보다 더 많은가? 고는 늘 독서를 하는데 유익한 점이 매우 많소"

 

 이 구절을 보면 회사 윗사람이 젊은 직원들 갈굴 때 많이 듣던 소리처럼 들려서 웃음이 난다.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여몽이 뛰어나고 주유를 이어 오나라의 재목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 부단한 학습의 과정이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그것을 또 노식에게 여몽이 자랑하는 기록을 보면 내가 상상하던 여몽과는 또 다르다.

 

 "혼란과 분열의 시기에는 실로 하나의 방법만으로 능히 평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부드러움으로 우매함을 치며 역리로 취한 뒤 순리로 지키는 것은 옛 성인들도 귀히 여겼던 것입니다" 대의명분과 인의를 강조하는 것은 고결하고 그 정신의 숭고함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혼돈의 시대엔 명을 재촉하며 정신은 기리 빛이 나지만 현실의 대책이 되지 못할 때가 있다. 방통의 이 말을 여러 번 읽어보며 옳은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당장의 해결책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 두 가지의 간격에서 스스로 어떤 중용지도를 이끌어 올바름과 실리를 함께 취할 것인가? 그것이 존재하는 인간이 매일 당면하는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재까지는 조조가 압도적인 우위에서 유비와 손권이 손을 잡고 세를 넓히고 마초가 다른 쪽에서 우여곡절을 겪는 중이다. 기록으로 보면 적벽대전은 조조의 어리숙한 수군을 손권이 배에 불을 붙여 조조의 배에 불을 지른 가벼운 기록에 가깝다. 조조가 손권의 서신을 보고 또 간단하게 회군한다. 역사의 기록을 보면 나관중의 스토리 설계능력은 가히 천재적이란 생각을 한다. 그가 14세기에 자치통감을 다 읽고 다른 역사서를 보고 썼겠지만 아기자기한 상상력은 노벨 문학상보다 훨씬 높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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