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새롭게 시작한 일로 바쁘다. 책은 주말에만 보고 있는 셈인데 그나마 오늘은 책 펴놓고 늘어지게 잠들었다. 종종 약속한 시간보다 여유가 있을 때 1-2페이지라도 읽던 여백이 사라져 가고 있다. 바쁘다는 다른 말이다. 이때 종종 찍어두던 사진도 그렇다. 오늘도 전에 쓴 사진을 다시 쓰려고 했다. 사진을 한 장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얼마 전에 찍어둔 것이 있다. 날이 참 화창했는데, 유리창의 먼지들이 흠이다. 다음 주에는 시간 내서 읽고 한 장 찍어 보려고 한다.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든 또 다른 이유는 '자치통감'과 함께 드라마 '사마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사마의'의 진도와 책을 엇비슷하게 맞춰서 보고 있다. 드라마의 전개가 자치통감의 흐름과 상당히 일치하고, 드라마 '사마의'에서 나오는 일화와 대사가 '자치통감'에서도 나온다. 각색이 시간의 흐름을 앞뒤로 오가지만 이야기 전개 흐름은 역사적 사실 기록과 궤를 같이 한다. 다만 '사마의' 주변과 관계가 드라마를 위해서 채택된 느낌이다.
자치통감 9, 자치통감 원전 권 69구는 위나라가 황제의 나라가 되어 위기(魏紀) 1로 시작한다. 그 첫 장이 위 무왕 조조의 평으로 시작한다.
1. 사람을 잘 파악함
2. 특별히 재능 있는 자를 잘 파악하여 발탁함
3.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재능에 따라 임용
4. 위기의 순간에도 태연자약
5. 결정적 순간의 결단력
6. 공이 있는 사람을 반드시 포상
7. 공이 없는 사람은 실오라기 하나도 지급하지 않음
8. 엄격한 법집행
9. 검소함
조조는 자신의 실력과 역량,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 사람을 모으고 신상필벌이란 운영 시스템을 통해서 계약적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실력중심의 시스템이다. 유비는 한나라의 blood code를 주장하면 의(義)로 사람을 모았다. 자치통감의 기록을 기준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중산정왕의 후예임을 자처했으나 족친 관계가 너무 소원해 몇 대 후손인지와 신분이 어떠했는지 등에 관해 전혀 알 수 없다"
만약 개뻥이라면 정말 뛰어난 정치가적 기질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괴벨스처럼 계속 주장하면 거짓도 진실이 된다는 입증 사례가 된다. 진실이라면 명분에 당위성을 조금 더 할 뿐이다. 머릿속에 호기심 천국이 벌어지고, 정말 유비는 사람들을 혹세무민하고 명문을 만들어 사람을 모았을까? 그렇다면 유비의 시스템은 일명 의리로 뭉친 조직의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진실일까?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연의의 이야기와 자치통감의 이야기는 내용이 다르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기록된다. 그 관점이란 그 사람이 살아가는 시대에도 영향을 받겠지만 역사적 사실을 그 시대의 눈으로 읽으려는 과정에서 나온다. 나는 현재 그 역사적 관점을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거울에 반사된 무엇을 보듯 보고 있는 중이다.
"빈궁한 자는 배우지 않아도 검약하고, 비천한 자는 배우지 않아도 공손하다는 취지의 빈불학검(貧不學儉), 비불학공(卑不學恭)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인성이 그런 것이 아니라 세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어지는 조식, 조창, 양수, 정의와 같은 정치적 패배자의 이야기가 따른다. 이 말을 글자 그대로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쉽다. 이것을 지위의 높낮이에 따라서, 세의 변화에 따라서 어떻게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 이것이 첫 번째 생각이다. 부유함에도 검약하며, 높은 지위에 올라서도 공손함을 잃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성품의 영향이 있다면 좋은 재능을 따른 것이고, 배움을 통해서 발현한다면 현명한 것이다. 배움이 당장의 이익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무엇이 더 삶에 악영향을 줄고, 무엇이 더 좋은 영향을 주는 것도 결국 포괄적으로 이익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생각은 검약하고 공손한 것이 자체가 왜 좋은 일인지를 아는 것이란 생각이다.
"전부사마 비시가 유비에게 상소했다. ~중략.
한중왕 유비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해 비시를 좌천시켜 영창종사로 삼았다"
전제국가에도 법은 있지만 왕의 권한은 대단하다. '사마의'드라마에서도 왕을 나쁘게 보면 기분이 나쁘면 타인의 목을 타인의 손으로 쳐내는 백정 같아 보일 때가 있다. 좋은 왕이란 제도를 표준화해서 일관되게 사용하며 이를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태평성대의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게 하는 일이다. 쉴 새 없이 걸리면 곤장 치고, 목을 치면 누가 살아남겠나. 내 관점에서 왕이란 직업은 사람이 할만한 직업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모든 것을 잘하던가, 모든 것을 잘하게 하던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다 빨리 천국행(또는 지옥행) 금행 열차를 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해도 난리, 안 해도 난리, 더 하면 더 난리다. 지랄 맞은 직업이다.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나랑은 전혀 안 맞는다. (정확하게는 그럴 역량과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생각을 갖고 유비를 보면 '애 좀 찌질하다'라는 생각이 예나 지금이나 떠나 질 않는다. 왕과 왕 놀이는 전혀 다르다. 내가 회사란 조직을 다니며 내가 맞은 직책과 직급을 수행하는 역할을 하는지, 직책과 직급이 요구하는 역할 놀이를 하는가는 천지차이의 결과를 만든다. 물론 놀이에 급급하다 천치 소리를 듣기도 할 수 있다. 유비를 디스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치통감에 곳곳에서 나온다. '사마의' 드라마를 보고, '사마광'이 쓴 자치통감이 같은 사마씨들 이야기라 그런가?
서진 시대의 진수(陳壽)는 삼국지에서 이같이 평했다.
"관우와 장비는 모두 만인의 적을 당할 수 있다고 칭해진 일대의 호신(무신)이다. 관우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조조에게 충성을 바쳤고, 장비는 대의에 입각해 엄안을 석방했으니 두 사람 모두 군자의 풍모가 있었다. 관우는 각박하며 자긍심이 강했고, 장비는 폭압을 휘둘러 은혜를 몰랐으니 두 사람 모두 이런 단점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이는 천지의 이치에 따른 것이다"
해당 구절을 읽고 삼국지연의, 드라마 '사마의'에서 나오는 모습, 다른 영화나 책에서 비쳤던 모습을 보면 상당히 객관적이란 생각이다. 관우는 뛰어나나 폭넓게 교류한다는 느낌이 없다. 장비는 대개 폭력적으로 비치나 문인들에게 또 예로 대한다는 부분은 아주 과소평가되었다. 마치 커리컬쳐가 그 사람 자체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처럼 인물들을 이해한 것은 아닐까? 내가 '사마의'란 드라마를 보면 갖는 가장 많은 생각이다. 그 생각에 반전을 주는 것은 조비, 위 황제다.
"황제가 사람을 보내 능옥의 벽면 위에 관우가 승리하고, 방덕이 분노하며, 우금이 항복하는 그림을 그리게 했다. 우금이 부끄럽고 화가 나 발병해 죽었다" 불가피한 상황에 오나라에 항복하고,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우금의 최후에 관한 기사다. 위문제 조비는 손권으로부터 우금을 송환받지 말던가, 송환받아서 목을 치던가 제도와 규정을 따른 것이 아니라 겉으로 좋은 취지로 송환받아 안원장군에 임명하고, 그에게 비열하게 다시 그 상처를 자극하는 모욕을 주는 것은 치자(治者)의 도량으로 보기 어렵다. 사마광의 평도 그렇다. 문제라면 드라마 '사마의'에서 조비는 아주 현명하지는 않지만 현명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많은 상처를 품고, 세상의 통일과 태평성대의 시작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치통감을 보면 그리 썩 똘똘하다는 생각이 적다. 그렇다고 나 같은 일반인도 왕이란 것을 막 해볼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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