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22 ~ BC 8
4권을 마치며 지루함과 끊임없는 경쟁을 한다고 생각했었다. 천천히 그 마음과 생각을 돌아보면, 지루함보다 몰입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나와의 싸움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재미가 없다는 말과 가장 가깝다. 또 생각해보면 그 재미없는 내용을 기록이란 차원에서 끊임없이 써 나가는 것도 지루함과의 투쟁이 아니었을까? 내 추측으로 한 명이 번역하는데 표현이 바뀌는 것으로 추정하면 기록하는 사람이 이 앞부분과 다른 것을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자치통감을 잡고 읽기 시작한 이유는 '삼국지연의'가 아니라 사실의 기록이 삼국시대를 보기 위함이었다. 기원후 220년에서 280년 정도의 역사다. 3세기를 흐르는 삼국시대가 목표다. 아직도 기원전인데 앞으로 나올 200년의 시간을 생각하면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대략 추측을 해서 자치통감 8권을 뽑았다. 삼국시대가 맞으면 정말 여기부터 읽어볼까? 정말 익숙한 이름이 나온다. 기원후 201년이 나오고 손권, 조조라는 익숙한 이름이 나온다. 약삭빠른 머리가 5권부터 7권까지 건너뛰고 여기부터 볼까? 라며 나에게 속삭인다. 마음 한편에 '다음에 보면 되지 않겠어?'라며 나를 자극하기도 한다. 그래 볼까? 5~7권 3권이면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책 정말 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서 읽어보게 된다.
다시 돌아와 자치통감 4권 자치통감 원전으로는 권 31, 권 32로 돌아간다면 딱히 할 말이 별로 없다. 앞으로 벌어질 듯한 어두운 세계의 암운과 전조와 같다는 느낌이다. 무엇이 크게 잘못되거나, 나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작은 일상들이 순탄하지 못하다. 무엇인가 께름칙한 느낌이 흐른다.
한원제가 자식이 한성제에 대한 평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정말 자식에게 그랬는지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후대에 넣었는지 알 수 없다. 그 말이 한성제가 통치하고 집권하는 시대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 내겐 의문스럽고 신기할 뿐이다. 아비가 자식을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면전에 그런 말을 얼마나 할까? 그런 말을 한다면 부자가 둘 다 부족할 뿐이다.
한성제는 자식을 얻지 못하고, 외척인 왕 씨들을 대거 등용한다. 시작부터 제후 인증권을 남발하다시피 한다. 유 씨 집안일을 왕 씨들이 다 하게 되니 기울고 크던 작던 소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유 씨와 왕 씨가 아니면 구조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음으로 당연히 쟁(爭)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왕 씨는 역할과 책임을 벗어나서 구설과 제재가 생기고, 외척의 구도에서 신(臣)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서 간언 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니 또한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라가 잘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멈추고 정비할 정도로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역사의 기록에 일식, 지진, 홍수에 대한 기록이 늘어난다. 일식을 왜 기록하지? 매일 기록을 남기는 것도 아닌데 이상 기후와 천재지변을 기록하는 이유가 결국 황제의 시대에 대한 간접적 의견이란 생각이 많이 든다. 이런 기록의 빈도가 늘어나고 왕이 방탕하다고 할 수 없지만 아주 건실하다고 할 수도 없다. 많은 신하들이 외척이 과도함을 여러 가지 이유로 상소하고 말하지만 많은 표현은 '황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로 기록하고 있다. 갑자기 조선의 왕 선조가 사서에게 지금 한 말은 빼라고 했더니 그 말까지 남겼다는 일이 생각난다. 자치통감은 사후의 기록이니 빼라고 할 기회도 없다. 그 정도가 한성제에겐 조금 억울할 수 있지만 별로 칭찬할 일이 드물다. 그러나 황제는 황제다. 자식이 없어 태자를 고르는 것을 보면 자리가 요구하는 기대와 생각은 갖고 있다. 책을 통한 신하들의 입장을 통해서 황제가 아둔하거나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의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뿐.
"천하에 왕도를 펴면서 나라를 보유한 자에게는 가장 큰 우환이 위망을 경고하는 사정이 위에 존재하고, 위망을 구하고자 하는 간언인 위망지언(危亡之言)이 위로 상달되지 못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만일 '위망지언'이 번번이 위로 상달됐으면 은나라와 주나라 말기에 역성혁명이 잇따라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하 ·은·주 사대에 걸쳐 정삭이 세 번 변개되어 다시 사용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황제의 물음에 곡영이 위와 같이 대답하며 긴 글을 남겼다. 2천 년 전에도 신하들 중 왕에게 간곡하게 이야기를 하는 자들이 많다. 모두 왕, 황제가 잘 되길 바라며, 그 안에서 자신도 뜻을 펼치고 잘 살자는 공생의 뜻이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너 그러면 망한다"를 다채롭고 고급스러운 표현, 옛이야기를 통한 비유, 은유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한다. 역지사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듣는 귀를 갖은 자는 그 뜻을 잘 새겨듣고 스스로 무엇이 올바른 상황인식인지 판단한다. 듣는 귀를 갖지 못한 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에 바쁘다. 그리고 기분이 나쁘면 좋은 말이나 나쁜 말이나 아무 상관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듯 이런 경우 나만 조짐을 당한다. 오래전에는 아주 가뿐하게 목이 달아날 뿐이다. 이 글에 이어지는 내용을 듣고 황제가 뚜껑이 열려서 곡영을 잡아오라고 한다. 분명 잡히면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주변의 도움으로 재빠르게 도망가고, 황제도 양심이 있는지 60리를 벗어나면 잡아오지 말라고 했다. 이 기록을 통해서 스스로 올바른 길로 가지 않으면 그 책임은 지위고하를 떠나 스스로 책임져야 하고, 만약 스스로가 중요한 직책까지 올랐다면 자신의 치부를 건들고 채근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황제가 노기를 푼 뒤 스스로 후회했다"라는 글로 이 이야기가 끝난다. 자치통감 권 31, 권 32에는 왕 씨의 이야기들과 이런 상소가 많이 나온다. 주저앉는 모습을 모이지 않지만 서서히 기울어가는 저녁처럼 암운의 전조가 있어 보인다. 작은 전조와 기미를 이해한다는 것 읽는 것과 실전의 상황은 다르다. 어제와 오늘은 하루도 같지 않지만 방향성의 변화는 대단히 더디다. 그 속에서 방향성의 변화에 관한 티끌만 한 전조와 기미를 읽는다는 것은 현명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올바르게 사는 것이 현명함을 이기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묘수를 떠올리는 것은 현재 내가 불리하다는 반증일 뿐이니..
"제왕은 백성을 기초로 삼고, 백성은 재물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재물이 고갈되면 아래서 배반을 하고, 아래서 배반하면 위는 패망합니다"
곡영의 이어지는 글 속에 있다. 황제에게 '너 그러면 망한다'를 빼곡한 5 페이지로 말했으니 운이 좋은 것일 수 있다. 그런 글이 나왔다는 것이 어두운 기운의 조짐과 기미다. 안 그런가? 이럴 때 또 사치와 향락이 점점 커지는 것도 전형적이다.
다음이 5권 일지 8권 일지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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