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참 무료하다. 아이들 말처럼 '재미가 없다'. 읽던 책을 덮고 나니아 연대기를 골라서 보기 시작했다. 엄청 난 책의 두께를 보며 '이건 다음 기회에~'로 삼았었다. 조금 읽다 보니 초반부의 지루함이 나랑 안 맞는다. 지금 읽고 있는 관자보다 재미가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무협 드라마를 봐도 시간이 잘 갈 텐데. 그래서 영화로 보기로 했다.
벌써 15년이 지난 영화다. 비행기를 타면 고전영화에 분류될 만한 영화가 되어 가고 있다. 영화는 20년 정도 지나면 고전으로 분류하는 것 같아 야박하다. 시간의 격차만큼 최근 영화는 더 화려하고 정교해졌다. 이 영화도 끝날 생각이나 만들 생각도 없는 것 같다. 넷플릭스에서 뭔가 해본다고 하지만 아직도 4편이나 더 만들어져야 한다. 스타워즈처럼 '이거 나 죽기 전에 다 볼 수 있음?' 이런 말이 안 나오는 영화가 되길 기원한다. 세상이 이런 미련을 남겨서야!
영화의 시작부터 레고에서 발매한 '에메랄드 야간열차'가 나오니 기분이 좋아진다. 저 객차 카트리지를 더 많이 붙여서 보고 싶던 기억이 있다. 증기 기관차를 타 본 적은 없지만 볼 때마다 매력적이다. 이런 낭만과 운치는 잽싸게 다니는 KTX에서 느낄 수 없다. 빠르면 세세하게 볼 수가 없다. 천천히 보아야 자세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옷장 사실 옷장에 달린 문짝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옷의 보관, 도피처, 새로운 세상과의 연결통로, 연결 차단이다. 열고 닫는 문의 역할과 의미에 따라서 이곳과 저곳이 연결되거나 차단된다. 심산계곡의 무릉도원으로 통하는 동굴과 일상의 장롱 문짝이 같은 역할을 한다. 극장 예고편의 클로젯을 보면 귀신이 세상으로 나오는 곳이다. 어려서 문으로 차단된 뒤 편에 대한 상상력을 어른이 되어서 잘 갖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는데.
2차 세계 대전으로 아이들만 피난처를 향해 떠난다. 해리포터에서 기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과 비슷하다. 플랫폼이란 말을 요즘 여기저기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플랫폼을 생각하면 떠나는 슬픔이 마주하는 기쁨보다 크게 느껴진다. 잠시 머무는 꼭 필요하지만 형편없는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길 나와야 자유롭기 때문이다. 임시역에 도착한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는 유니콘은 아니지만 백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 엄한 집사인지 사감인지의 잔소리를 들으며 목적지에 도착한다.
장차 동서남북의 왕이 되는 네 명은 아직 어리다. 숨바꼭질을 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신비한 세상 나니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데아, 무릉도원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세상이다. 현세나 전설의 도시나 개고생은 지속된다. 단지 개고생으로 인식할 것인가? 호기심과 좋은 뜻을 담아 도전할 것인가의 차이다.
만약 내가 그런 기회에 그곳의 자초지종을 들어본다면 '이건 아니지, 나한테 왜 이래?'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어른이 된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형편없는 도전 의식(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해요)과 호기심 감소를 부인할 수 없다. 아이들은 호기심과 권선징악의 표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미래인 것이다. 나이 들어 돌릴 수도 없는 어제를 내일을 위한 목표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인생에 빽도는 없다. 얼마나 되돌리고 싶었으면 윷놀이에 빽도를 만들었겠어.
피터는 대기만성형(사실 엄청 오래 걸린다는 말로 결과를 갖고는 칭찬, 현재를 보면 그리 좋은 말은 아니라고 생각함)의 리더, 조금 우유부단하고 책임감이 있는 듯 없는 듯해 보인다. 수잔은 말은 많은데 현실적인 대안이 별로 없다. 에드먼드는 탐욕스럽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개고생을 통한 배움으로 일취월장을 할지, 다시 탐욕의 불씨 속으로 회귀할지 알 수가 없다. 루시는 가장 현명해하고 마음씨가 따뜻하다. 산타 할아방이 루시에게만 선물을 2개 주는 편애를 시전 했다. 칼과 방패, 활과 화살이 두 개라면 할 말이 없구요. 어째던 기대 된다. 책의 결과는 알 수가 없고, 영화의 결과는 뭔 미래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힘을 펼치는 악의 무리 하얀 마녀는 아주 인상적이다. 배역이 아주 잘 어울린다. 영원한 선의 편을 이끌고 있는 아슬란이 있다. 아슬란은 홀연히 사라졌다, 홀연히 다시 나타난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으로 시작하는 짱가 노래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계시다. 툼누스가 그렇게 알려준다. 가장 인상적인 출현이라면 느닷없이 나타난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산타 할아방이다. 선물을 곰곰이 분석하면 '이런 걸 애들한테 줘도 되나?'라고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범죄를 충동질하는 스멜이 슬금슬금. 그리고 툼누스로 나오는 제임스 맥어보이(언브레이커블, 23 아이덴티티, 글래스)를 볼 수 있다. 켄타로우스 비슷한 모습으로 나온다.
시작은 나니아에 봄이 오고, 돌아온 아슬란이 군대를 이끈다. 계절의 변화가 세상의 변화에 대한 전조를 알린다. 이런 작은 조짐을 통해서 미래의 방향을 아는 것이 현자라고 한다. 우리는 찍고 맞으면 우긴다고 한다. 그걸 구분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정의는 불의를 누르는 열쇠를 갖고 있다는 명제는 인간 세상에서 영원하다. 아슬란을 통해서 힘의 크기가 아니라 바른 명분이란 뜻을 세우고, 스스로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한다면 반드시 좋은 세상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단지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알 수 없음으로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 시간을 알 수가 없고, 영화처럼 후딱후딱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이 품고 있는 깊은 빡침, 창조주에 대한 분노, 노력의 원인, 동기부여, 신념, 욕망, 확증편향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되어 긍정적인 효과와 부작용을 낳는다.
다시 돌아온 아이들이 교수에게 자신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믿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나이 지긋한 교수님 "try me"라고 말한다. '한 번 해보렴'이렇게 해석되지만 '누가 그래?'와 같은 의미로도 해석된다. 호기심,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이 보다 미래지향적이다. 2차 세계대전의 현장만큼 나니아도 혼란했다. 그곳을 정리하고 돌아온 아이들을 통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만 사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삶은 내일을 살아내기 위해서 준비한다. 어제는 벌써 지나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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