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전부터 국내에서 중국 학자들의 출판물이 많아 졌다. 동양고전과 미국중심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중국 학자들의 시각이 그렇다. 최근 중국내 성공적인 이야기들도 많아졌다. 그러던 중에 오랜만에 중국에 다녀오고, 고객미팅을 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어려서 우리집에서 얼마 안가면 친구내집이 있었는데 가발공장을 했다. 들어가 본적은 없지만, 주택가의 큰 건물에 공장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내가 중학교 갈때즘에 그 공장이 독서실로 변했다. 그리고 그 독서실이 내가 대학에 갈 즈음에서는 없어지고 다른 곳에 주유소를 지었다고 한다. 90년대만 해도 대학이 기업보다 수준이 높았고, 학생들을 데려가지 못해서 난리였는데, 97년을 기점으로 기업을 대학보다 수준이 높아지고, 고용지표는 심각해지고, 더 많은 문서를 읽고(예전 fax생각하면 20배는 더 읽는 듯) 더 많은 일은 하는데 삶이 여유로운 곳이 없다. 나같은 70년대 태생이 급격한 발전시기에 성장하고, 그 열매의 맛을 볼려고만 하면 새로운 환경이 도래하는 시대를 살아온듯 하다. 그 만큼 경쟁력도 있겠지만, 60년대 생들과는 많이 다른 가치관과 또 그들을 이해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반면 이후의 세대를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세대가 아닐까한다. 그리고 우리의 성장시기와 나라의 성장이란 동시대적 공통점이 현재를 바라보는 아쉬움이기도 하다. 뭔가 이방인같다.
그 시대와 중국을 바라보면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밀레니엄이 시작될때의 중국이란 못쓸만한 제품을 엄청나게 싸게 팔고, 사람들을 관리하기는 어렵지만 생산설비를 옮겨서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많았던것 같다. 그리고 중국이 3천불소득을 넘어서 막 성장하던때가 아닌가 한다. 지금 그들이 각분야에서 다양하고 엄청난 수의 인력을 산업에 배치하는 능력을 볼때 '아! 이런게 시대를 내다보는 안목이구나!'하게 된다. 원자바오가 금융위기때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은 반성해서 내일을 준비하자고 한말이 헛말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런면에서 우리의 모습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한국의 적극적 기술이전도 만만치 않지만 말이다.
불과 15년사이에 중국을 바라보면,4년전 북경전시회에 간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지하철 역위에서 전시회가 끝나자마다 나오는 인파를 보면 불과 몇만이 안되었을 듯 하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장군이 된것도 아닌데, 여기서 활을 쏴서 저들을 막아야하면 어쩌나 하는 상상을 해보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양제가 몰고온 백만이 토성을 성보다 높이 쌓을 정도면 아주 북경시내가 개미굴처럼 사람이 바글바글할듯 했다. 양만춘,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과 같은 역사속의 영웅이란 그런 두려움을 이겨내고 성과를 내는 것이구나...서희가 담판을 지을때의 기개란 우리가 책으로 읽는 이야기이지 살아 있는 느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그런 기개가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가?
시내 한복판의 중국인파, 공항의 중국인, 우리가 쓰고 입고 하는 제품중 made in china의 비중, 대륙의 실수라는 샤오미 열품, 심지어 중국식당, 해외시장에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중국의 세력을 보면 전시회때 느낀 생각과 동일하다. 소리없이 밀려오는 밀물과 같이 서서히 잠식되는 것 같다. 사대주의란 모르면 자존심도 없다고 비난하기 쉽지만 알수록 무섭기도 하다. 요즘과 같은 중국의 기세라면 조선시대의 재림이 된다한들 토를 달 말이 없다. 우리의 부모세대가 미국이라면 껌벅죽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지만 난 중국과의 경쟁에서는 돈으로는 져도 머리로는 져서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수많은 우리의 역사가 힘으로 질때는 있어도 머리로 그들을 이겨낸 것은 사실이다. 그런게 정말 요즘은 만만치가 않다. 우리나라 사람 3-4명이 할일을 그들은 3-400명을 넣어서 시간을 단축한다. 그리고 경쟁력이란 양날의 모습을 갖고 있다. 성공은 대충알게 하지만, 실패는 확실하게 알게해준다. 따라서 실패가 앞서고 성공이 따라가야 완벽하게 알 수 있다. 표본과 횟수가 많은 중국이 일정 수준에 올라오면 우리가 그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그런데 장기간 베끼고, 빨리 만드는 것으로 경쟁력을 갖고다가보니, 20년씩 일을 했는데 그 분야의 insight가 부족하다. 문제는 중국의 정부가 주도하는 인력양성과 기업들이 접근하는 사고방식은 어쩌면 더 자본주의적이다. 또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뛰어난 기업들의 안목은 더 멀리, 더 넓게 바라본다. 시작하기 전부터 진게임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직은 그 부분에서는 우리가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해전술과 같이 우리가 하던 베끼고 빨리 만드는 것의 숙련도가 좋아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각 분야의 통찰이 떨어지다보니 점점 호구가 되간다는 것이다. 그것을 극복할 부분이라는 것이 결국 각분야에 남아있는 우리의 지혜가 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문화속에 좋게 말하면 장유유서와 경노사항, 험하게 말하면 상명하복이란 구태의연한 문화가 있다. 미국 골프장에서도 how old are you?를 묻는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결국 "왜(why)"를 묻는 것이 결례가 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자리에 갈때까지 새로운 것의 시도는 지체된다. 가지못하면 보지도 못하고 사라진다. 결국 지혜가 쌓이지 않는 문화가 만연된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주입식 교육의 폐해는 사회에 나와서 반뇌불수의 인력을 양산하는게 아닌가 한다. 그러다보니 손금을 보기 힘은 인력들이 득세하는 것이다. 최근의 인문학 열풍도 한편으로 우리의 교육이 부족하다는 것의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기록과 전수에 있어서 어느 나라보다도 뛰어난 전통을 갖고 있었던 나라가 근현대의 격랑속에서 꼴이 말이 아니다. 다들 걱정은 땅이 꺼지라고 한다. 그런데 걱정이 해결책인가? 나는 걱정만 하는 모습이 답답하기도 하다. 이순신이라고 12척을 갖고 300척 맞아 싸우러 나가며 자유로 드라이브 나가듯 흥에 달아올랐겠는가? 때에 맞춰서 해야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럴때가 되었는데도 작게는 내 주변도, 사회도 걱정하는 사람만 걱정하고 뾰족한 대책은 안개속에 있는듯하다.
앞으로 다가올 날이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무엇인가 잘 되는 것은 노력과 여러 사람들의 열정이 함께 해야한다. 혼자하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망조가 드는 것은 장담하지 않을 뿐 누구나 어느정도 예측이 된다. 무엇인가 망하는 어둠의 그림자는 성공의 빛보다 잘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능력이 인간에게는 참 행복한 축복일텐데, 그것이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겨우 작동할까말까라는 것이 아쉽다.
축적의 시대란 책을 보면서 그런 고민을 하는 석학들의 고민에 사실 더 마음이 무거운 주말저녁이 되버렸다. 요즘은 사실 뭘 해도 신이 안난다. 보이는게 많아지면, 즐거움이 많아져야하는데 걱정만 는다. 조정래의 소설속 말처럼 정책이 나오면 대책을 세우고, 상황파악이 됬으면 대책을 세워야한다. 그일이 내일이 될까 걱정해야하는지 대책을 세워야할지도 다 나의 결정이다. 어째던 편한길을 걸었어야한다는 미련과 이왕 이런거 뭔일 있게어 해야지 하는 마음이 교차하는 밤이다.
이미치 출처 : http://slowal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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