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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제기,
인터뷰를 통한 자료 확보, Road to Wisdom의 해석이 해답이란 걸 보면서 좀 오만한 번역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수학적 가설검증결론의 틀을
활용한 전개로 진행된다.
서문의 내용은 조금 장황하지만, 궁극적으로 탁월함 또는 탁월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
많은 인간의 활동중에 경제로 제한하고, 대외적으로 입증된 탁월함이라는 노벨상의 권위를 빌림으로 10명의 학자를 채택한다. 이를 통해 표본검증을
마치고, 각 개인들의 역사, 이론, 개성을 통해서 그들의 탁월한 지식세계를 보고자 한것 같다.하지만 나는 3명정도 인터뷰를 보면서부터 서문과는 다른 차이점을 더 많이 느끼고, 결론을 보기전에 벌써 다른 생각이 생기고, 호불호가 있던 학자들이 다 좋게 보여만 간다. 전체적인 구성중 인터뷰를 통해서 그 들의 업적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고, 경제학적 이론과 다른 학자들이 많이 나오는 부분보다 노벨상
수상시기로 배열되었기 때었기 때문에 경제학사의 조류를 이해하는 한가지 수단이 되고, 또 개인적인 경제학의 입문계기와 개인사를 통해서 그가 제시한
분석틀에는 매우 충실하다.
다만 내가 느낀 차이점은 저자는 서문에 탁월함을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느낀 석학들은 탁월함은 결국
인간세계의 보편성으로 회귀될때 발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각자에게 주어진 창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그런점에서 빌게이츠가 윈도우라고
명한건 정말 똑똑한 작명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사람들이 그들이 보는 창속에서 행복하게 산다면, 조금 똑똑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창에 비치는
차이점을 비교 발견하는 것부터 시작하는것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창속에 어린왕자가 살던 별이 있으면 내 창에다가도 넣어보려고하고, 같은 꽃이
있으면 즐거워도 하는 것같다.
하지만 석학들은 그것에 왜 다르지? 정말 다른가? 어떻게 다르지?를 생각하는 것같다. 마치 창문만 보는것이 아니라 창의
크기, 창틀재질, 창틀두께, 창문에 비친 조명, 경치의 차이등 다양한 차이를 통해 창문에 만들어진 영상의 근본적인 원인들을 찾아내어 모든 창에
다시 적용하려는것 같다. 경제학이란 것이 인간의 활동중 한 부분이기 때문에 결국 탁월하게 보는 시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보편적
경제활동에 유효성을 갖을때에 탁월함이 실현되는 것같다. 그리고 이성적 tool인 수학을 통해서 증명이란 과정을 거치는 것에 다들 재주가 있다.
수학이란 논리와 논리의 체계화의 연속활동이기 때문에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경험으로 보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공식을
스스로 증명하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평균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곳곳에 그들이 수학에 내포된 한계와
인간활동의 다양성으로 인한 오차도 인지하고 학자들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한계에 대한 도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속에서 문제해결자와 시스템의
구축 두가지로 문제해결을 설명하는 부분이 어쩌면 학자들 개성의 차이를 볼수 있는 또 한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비슷하다.
스스로 재미있는 것은 상경계열을 다니며 경제학원론, 미시, 거시경제학, 국제금융론, 국제경제학등 경제학관련 수업을 듣는 동안 스스로의
부족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배운것을 갖고 세상을 보는 것은 졸업하고 한참 지나서 원활해진것 같다. 그만큼 내가 아둔할수도 있고, 교육시스템속에
가르치는 것과 다른 것을 잘 인정해주지 않던 획일적인 부분도 한가지 영향인것 같다. 아니면 교육의 목적이 서로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어째던 미분적분의 수학을 배웠지만 극한이라는 전제는 좋게는 가정과 합의, 폄하하면 거짓말 수학이라고 생각한다. 계산의 편의 즉 단순화를 위해서
합의와 가정을 한것이지만 일상생활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예측은 현실과 궤리감을 갖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X+a를 미분하면 1인데
a가 0~9까지 다른경우, 만약 X가 0이고 a가 9면 이건 대형사고다. 다른 예로 빨간색의 길이는 노란색보다 항상 짧아야 삼각형이된다. 그리고
노란색은 초록색과 길이가 같다. 그럼 무한이 쪼개면 초록색과 빨간색의 길이는 얼추같아진다. 초록색은 계속 노란색과 같다. 그럼 삼각형이란 면적은
없어지는데 이걸 참이라고 할수는 없지 않은가?
이외에도 확률과 같이 적용할 만한 다른 예들은 많겠지만 사람이 수익과 효용을 쫒아서 결정하는 부분이 지배적이고
또 지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발적 기부의 경제활동, 이익이 되지만 고집부리며 하지 않는 행위등 인간이 경제학적의 전제만큼 이성적으로만 행동하지
않고 물질적인 효용만으로 행동이 결정되지 않는다. 가수요와 같이 전쟁날까 라면 사재기하는 것도 수학적으로 증명은 됬지만 이건 효용보다는 심리적인
부분이 크고, 완전경쟁시장의 부존재, 수익이 아닌 다른 요인들에 의한 의사결정은 수도 없이 많다. 해외영업을 하면서
협상을 해보면 수익이 문제가 아닐 때가 너무도 많다.
과장되게 설명해보면 일상생활에서 로미오집안과 줄리엣집안이 돈이 된다고 비지니스를 하겠는가?
남북경제협력도 다르지 않다. 반대로 돈이 남지 않는데도 생존을 위해서 계속 물건파는 회사가 얼마나 많은지도 생각해볼만 한다. 공정공시조회만
봐도 당기순손실이 난 업체들이 가득인데 계속 운영을 한다.
그래서 나는 경영자들이 이성적인 수리판단과 논리에서 점진적으로
인문학 중심의 공부를 해 나가는 걸 보면서 느낀바가 많다. 그위에 인문, 철학과 경제학이 어떤 방식으로 접합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제도를 바꾸는 것도 일시적인 방법이지만, 사람을 좀 바꿀수 있으면 훨씬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있는
석학들을 보면 또 이런 인간의 오차를 이론, 가정, 수학을 동원해서 풀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사실을 정리에서 만든 이론에 착근하지
않고, 현실속에서 그 이론과의 차이를 통해서 변증법적으로 새로운 과정에 입문하는 문제해결자의 역할과 이론정립을 통한 시스템적 접근을 동시에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맑스의 관점도 자본주의에 대한 통열한 지적일지 모르겠지만, 가치란 노동으로만 발생한다고 하기엔 세상은 너무
복잡하다.
나는 경제에서 근원이 되는 가치, 효용,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은 수학적 깊이이상으로
성찰되어야하고 그곳에 경제학의 발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시 학창시절을 보면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과 교육의 큰 차이를 못 느꼈던것 같다. 과거의 사실이 정리된 이론을 배우라고 했지, 그것이
사회현상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와 어떻게 발전하는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은 매우 드물게 있던 일이였다고 회상된다. 새로운 아니 좀 다른 생각을
한치도 인정하지 않는 학교가 어쩌면 진정 꼴통보수의 양산에 이바지한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 조금 비뚤어진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지도교수와 반대되는 다른 학교 교수책을 사면 교수는 가만히 있는데 인세를 받지도 않는 엉뚱한 박사과정이 난리를 친다.
그나마 요즘은 조금 나아지고 있는지 아리까리하지만, 내 기억속에 존재하는 대학원의 어두운 그림자는 생사여탈권을 쥔 잠재적
폭군, 근엄하고 자상한 표정의 가식적인 학자가 적지 않다는 트라우마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학교에서 보던 모습과 대학원의 모습은 나에겐 평범한
인간의 모습에 감동받는 좋은 경험도 많지만, 가히 충격적인 일명 꼴통정신도 많이 체험했던것 같다. 회사처럼 돈받고 그러면 참겠는데, 돈내고 마이너스
효용발생과 어이 없는 사태가 90년대만해도 적지 않았던것 같다. 우리나라 장인이나 유럽처럼
도제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식도 아닌 어정쩡함이랄까. 그러다보니 조금 삐닥해졌을 수도 있고,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딴 수많은 선수들이 제도속에 소멸되간것은 자발적이었는지 의문스럽고, 석학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자산의 손실인지
생각해본다. 좋은 선생을 만나는게 큰 복이라고 생각하지, 좋은 선생이 되려고하는 하는 사람이 좀 적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10명 학자들의 공통점을 보면 대부분 1920-30년대의 미국대공항을 거쳤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체험은 시간을 초월할 수
없고, 꼭 사람에게 무엇인가 잔상을 남긴다. 상당히 많은 분들이 사회주의사상의 시기를 거쳤다는 것에 놀랍고, 또 그것을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태생적으로 공산주의의 무풍지대지대라고 생각하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유럽계열의 학자들이 역사의 전통과 잔재에 남아 있는
시스템때문에 조금 다른것 같다. 현재의 경기상황에 이런 시기를 거쳐 석학의 자리에 오른 이들을 돌아보는 것은, 시간이 흐른뒤에 나올 석학들에
대한 기대와 예측은 아닐까도 생각하게 된다. 사견을 전제로 좌파적 성향의 지식인들이 보다 뛰어난 관찰자적 시각, 즉 문제해결자로써의
역할은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또 이들의 약점은 일반인을 교육대상으로 보는 한계 또는 일반화의 한계가 있었던것은
아닌가 생각하는데 조금씩 그 점도 개선되간다고 생각한다. 그 반대편은 시간속에 축적된 시스템의 힘에 더 많이 의존한다고
생각하고 그 속에 뛰어난 사람들은 과거가 항상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한가지가 아니라 둘다 묶는
방법을 찾는게 창의적고 창조적인 지혜의 발견이 아닐까한다. 우리가 일대일 경기도 하고, 팀경기도 하는 것과 같이 자본주의 세계에서도 두레와
품앗이를 미풍양속이라고 하는 것이 가능하다. 조율의 문제이전에 조율노력의 문제라고 생각이 되고, 석학들의 결과를 통해 이런 자의적인 생각으로
이해하려 노력한것 같다.
그래서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론은 읽지 않았다. 대략 소제목만 대강 훑어봤다. 길에 해답이 어떻게 있는가? 그것에 해답이 있다는
말은 극한의 개념처럼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모든 사람이 다 탁월해진다는 것인데 그것은 스스로가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85%가 대학을
진학하는데, 입시경쟁률도 1-20년전만큼 몇십대일도 아닌 좋은 시절일 수 있는데, 등록금 문제만 늘어났지 더 좋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그들 대부분도 경제학자라는 직업이 좋아하는 것을 잘하게 된 경우보다, 하다보니 잘하게된 경우인것 같아 한가지 갖고 있던 궁금증을 이젠
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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