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있다고 해서 가봤더니 별문제가 없다. 사용자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용자 오류까지 감안해서 무엇을 한다면 훨씬 좋은 결과가 도출된다. 이런 일을 마치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집에 도착하니 한참 늦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내가 영업을 하며 갖고 있는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 씻고, 잠시 너튜프로 관심거리를 조금 봤다. 시간이 남아 어제 읽던 책을 잡고 2~30페이지를 더 봤다. "워런 버핏 라이브 (University of Berkshire Hathway)"라는 책이다. 사실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주총회 Q&A를 읽는다는 것이 재미있는 일인가? 주식투자를 하면서(오늘 주식이 많이 올라서 달봉이와 기분이 좋다) 분기 사업보고서, 반기 사업보고서, 연간 사업보고서를 본다는 것이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와 같은 차트는 읽는 법을 알며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깨알 같은 주석을 보면서 읽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럼에도 주석을 읽어야 하는 일은 아리까리하고, 복잡하고, 애매하고, 위험한 것은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쓰는 것이 인간 문명의 단점이다.
남의 회사 주주총회에 가본 적은 없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주주총회란 대단히 형식적이었다. 규정상 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묻고, 이사회 의장이 직접 대답하는 것을 읽느다는 것은 돌아보면 웃긴 일이다. 잠시 버크셔 B주를 아주 조금 갖고 있었던 적이 있긴 하지만. 그런데 이 책 보기보다 재미있다.
워런 버핏이 쓴 책은 없는 것 같다. 사업보고서를 책으로 인쇄하여 배포한다고 보면 ISBN은 없지만 출판물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내용에 대해서 구두로 주석과 설명을 사람들에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글을 정제된다. 쓰고 다듬고, 여러 가지 태도를 고려하기에 세련되지만 가공될 소지가 많다. 말은 생각을 표현하고, 대화의 경우에는 글처럼 다듬을 시간이 없다. 더 날것인 생각은 아주 진실되고 솔직하지만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보면서 워런 버핏이란 사람의 생각, 워런 버핏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매력을 갖게 된다.
1/3 정도를 읽는 시점까지 그는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이 존재하고 나는 이것이 워런 버핏이 하나의 원칙과 기준으로 실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레이 달리오의 원칙을 생각나게 하는 모습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해학적이고 유머가 넘치는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의 말속에 그들이 사람을 얼마만큼 이해하는지에 대해서 놀라울 따름이다.
1. 그레이엄의 내재 가치(미래 현금흐름을 현재로 할인한 가격과 현재 가격의 차이를 보고 투자하는 기준, 말은 쉽지만 계산은 쉽지 않음)에 대한 원칙을 지키고, 투자하는 대상 기업에 집중한다. 거시경제, 인플레이션이란 변화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지만, 이런 태도를 갖는 배경엔 막대한 지식, 확률에 대한 탁월한 감각과 능력(핵전쟁 확률에 대해서 술술 나오는 계산 능력을 보면 ㅎㄷㄷ),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함께 한다.
2.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을 1센트에 만들어 1달러 파는 기업'이란 기준은 탁월하다. 기업이 부가가치의 창출력, 창출된 부가가치의 규모에 따라 실력이 결정된다. 내가 읽어 본 화식열전, 이병철, 정주영, 마쓰시타 고노스케, 손정의, 마윈, 맥도널드 이야기를 돌아보면 분야가 달라도 통찰의 본질이 유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속에 흔히 우리가 말하는 마케팅의 STP, 시장분석의 SWOT, 환경 분석의 본질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3. 역발상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기업이 주식이 내리면 Mr Market이 제정신이 아닌 할인 가격에 살 수 있다는 말은 참이다. 결과를 참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내가 투자하는 기업이 기업의 경영의 목표에 부합한다고 꿰뚫어 봐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지속 가능한 경영을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익의 증가, 적정한 매출 규모의 유지, 인플레이션보다는 높은 성장을 해야 한다. 그런 기업을 찾아도 투자 시점의 가격과 내재가치가 투자자에게 유리해야 한다. 코카콜라, 시즈 캔디 이야기를 통해서 반복된다. 마침 오늘 수익이 많이 난 주식은 장기 보유할 계획인데 그가 말한 분석과 기준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상태와 투자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순 없겠다.
4. 효율적 시장 가설에 대한 반박. 나도 경제 이론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전제 조건의 오류, 일반화를 위해 덜어낸 계산하지 못하는 요인이 만드는 효과 등으로 타당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행위와 시간이 순서에 따라 돌아보면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전제는 확률적 수렴의 측면이 있지만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다. 나심 탈레브의 "행운을 속지 마라" 또는 조지 소로스의 "소로스 투자 특강"을 보면 확률과 더불어 잘 이해할 수 있다. (금융의 연금술은 사실 비추, 철학이란 포장지로 난해하기 그지없음)
5. 경영자에 대한 성과주의 판단 원칙과 주주에 대한 우대 원칙. 워런 버핏이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통해서 성과를 도출하고, 그들에게 한 투자의 성과를 결과로 갖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은 쓰지 않는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6. 확률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 그의 투자 원칙에 대한 설명 중 "사업의 속성이 본질적으로 위험하지 않으면서, 재무 구조도 건전해 사업 위험이 낮은 기업에 주로 투자합니다"라는 설명이 있다. 얼마나 다차원적으로 기업을 분석하는지 알 수 없지만, 매출, 수익률, PER, BPS, EPS, ROE, ROIC, PBR, PSR, beta, EBIDTA과 같은 지표에 현혹되고, 누가 좋더라 하면 확률이란 생각을 자주 잃어버리는 스스로를 보며 차이를 알게 된다. 경마에서 배당률 높은 것만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을 하며 투자라고 하는 셈이다.
7. Market Share, Mind Share. 이 말을 통해서 그가 시장의 이성적 감성적 특성에 대한 깊이, 즉 사람들을 아주 잘 이해하는 사람이란 따뜻한 느낌이 충만해진다. 1/3을 읽는 동안 가장 흐뭇한 문장이었다.
8.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인식할 때 사회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한다고 생각했고, 차별적 보상이 타당하다고 사람들이 인식할 때 사회의 효율성이 높아진 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질문에 대한 인용 답변이 기가 막히다. 어쩌면 세상은 공정과 효율이란 굴레가 끊임없이 윤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9. 이솝우화의 파랑새 이야기를 다르게 이야기한다. "확실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대규모의 수익 가능성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은 수학적 확률,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한 가능성을 분석 판단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10. 그 외에도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는 답변, 우리가 투자와 같은 계량적 지표에 몰입하며 간과할 수 있는 질적 평가도 잊지 않는다. GDP 중 1인당 GDP가 중요하다는 의견과 그 GDP가 어떤 질적 생산성과 연결된 것인가라는 질문은 아주 탁월하다.
아직 읽어야 할 페이지가 400쪽 정도 남았다. 투자와 관련된 그의 원칙을 안다고 내가 그 처럼 할 수 있는 원칙과 소신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처럼 확률과 재무에 대한 전문성도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분수 것 얻는 지식과 아주 맘에 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도덕적이고 바람직한 원칙에 존경을 담기에 충분하다. 오늘 주주로 있는 회사 주총에 처음 전자 투표를 해 본 날이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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