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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劇)

걱정은 마음을 태운다 - 나랏말싸미

by Khori(高麗) 2019.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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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1/2)

 

 감히 재미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시각적 구성물이 재미가 없다면 다른 무엇이 필요한가? 훈민정음에 관한 이야기 중 하나를 재구성했다고 했으니 역사적 사실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럼 어떤 의미를 전달하거나 연상하길 기대했을까? 

 

 구미를 땡기는 영화는 아니다. 어제 극우단체의 싹수없는 표현을 멀리 중국까지가서 썼다고 난리가 났다. 발빠르게 소식은 네트워크를 타고 넘치고, 소식을 전한 글을 삭제됐다. 참 빠르다. 한글을 영화처럼 초성만으로 검색이 가능한 문자다. 세상에 다양한 언어들이 많지만 문자를 갖은 나라는 언어보다 적다. 그 문자를 컴퓨터로 작성하는 word processor를 갖은 나라는 대한민국과 미국이 만들고 기타 여러 잡다한 나라가 함께 사용하는 그룹으로 구분할 수 있다. 언어와 문자는 국가와 민족에게 큰 자긍심이자 권력이다. 

 

 조선의 왕은 모 철학자의 말을 빌려서 이야기하면 참 불쌍한 사람들이다. 궁궐에 메여사는 존재, 사대부의 상징, 우스개소리로 임금의 일괄표를 보면 과로가 기본이다. 암살설도 많이 나오는 불안한 지존의 자리가 조선의 왕이 갖고 있는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세종은 정권초기 왜놈은 팔만대장경을 달라고 하고, 신하들은 말을 참 드럽게 안 듣고, 스님은 임금에게 맞짱을 뜬다. 너무 과감한 설정이 아닌가? 집현전 학자들도 북부지역의 다양한 언어조사를 했다고도 본적이 있는데, 스님 한분과 비교하여 너무 밀린다. 기껏해야 해례본을 음양오행과 천지인으로 해석해서 숟가락을 얹는 형태로 나온다. 서까래보고 한 획을 추가하는 설정은 좀 불쾌하다. 문틀의 문양을 보고 글자를 만들었다는 비아냥의 조소와 연장선에 있다는 생각은 너무 과한 것일까? 우연과 기연의 설정이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을 낮추는 요소라 민감하게 받아들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한글, 훈민정음 창제까지 고난을 표출하기 위한 시도라지만 그래도 개국공신들이 목에 힘주던 태조 이성계 시절은 아니다. 태종이 왕자의 난으로 왠만큼 싹다 뿌리를 뽑아둔 상태라 세종이 좀더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바를 도전할 수 있던 시대라고 생각한다. 통치철학에 기반한 반대와 숭유억불 정책의 기조라 하더라도 불과 그 짧은 시간에 세상이 한번에 변하지 않는다. 지금도 친일, 새로운 친일 논쟁이 존재하는 시점이 강제병탄 100년, 해방 74년인데 정보와 통신이 원활하지 않던 조선 초기에 그런 일이 있을리가 없다.

 

 그래도 언어가 갖는 사회적 의미, 통지자에게 새로운 언어가 갖는 의미, 정보가 권력이며 그 정보가 언어와 문자로 사람들에게 퍼져나갈 때의 결과, 세종의 대사를 통해서 지식공유가 월등한 문화를 만들어 낸다는 큰 그림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유의미한 정보다.

 

 앨빈토플러는 정보화 사회를 말하고, 피터 드러커는 지식기반사회를 말했다. 그런데 세상은 태초부터 지식기반 사회였고, 그 지식을 융성하게 만들고 배포해서 더 많은 지식을 만들어 온 국가들이 시대를 앞서갔다. 지금은 다른가? 그것이 인간 문화의 한 가지 특성이다. 대한민국이 자국의 언어, 자국의 문자, 자국의 문자를 디지털로 처리하는 수단을 갖고 있다는 것은 큰 강점일 수 밖에 없다.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의 걱정보다 재미를 좀더 걱정했으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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