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선한 존재인가? 물질이 사람은 착하게 만드는가? 알 수 없다. 왕후장상의 씨가 없고, 복숭아 씨앗은 하나지만 거기서 나온 복숭아가 다 같지 않다. 좋은 환경에서 우아하게 길들여질 수 있고, 퍽퍽한 현실속에서 사람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개인의 본성과 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교감하고 주고 받는다. 좋던 나쁘던 그렇다.
수상의 즐거운 소식만큼 꼭 보고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마나님은 궁금하신가보다.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반지하의 사람들이 제목처럼 치부할 수 없다. 사회속에서 실패했다고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선택의 폭이 좁아지면 사람은 거칠어진다. 이 이야기는 유학가는 민혁의 의도적 호의로부터 시작된다.
호의로 시작된 거짓은 결말이 순탄하지 않을 것을 예견토록 한다. 그것이 호의일까?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환경과 배경을 제시한 것은 그렇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은 기우다. 입장권을 줄 수 있다는 권리, 그 계층이 보여지고 싶은 것과 보이지 말하야할 것들도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모습이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과외를 하고, 내재된 자신의 필요와 대책의 가능성을 채워줄 것 같은 기정, 그 기대를 품고 있는 연교, 선을 강조하는 동익 다들 꿍꿍이가 있다. 기택이 열쇠를 잡는 동익의 가슴에 칼을 꽂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선을 끊으려는 의지인가?
그 화려한 저택안에도 지하가 있다. 숨어 살고 있는 문광과 남편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기택과 그들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 그들은 계속 반지하, 지하라는 장소를 전전해야 하는가? 누구나 아무런 제약없이 태양이 쏟아내는 볕과 자연의 바람을 만끽할 권리와 자유가 있는데. 실패라는 굴레속에서 움직이는 인간의 제도, 능력이라고 평가되는 인간이 갖고 있는 하나의 재주 때문에? 사회를 살아가는데 그러한 재주가 좀더 윤택하게 살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살아간다. 계층이란 고리보다 인간의 고리가 나는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항상 어느 곳에 내 고기를 연결할까 고민한다. 결과는 당연이 내가 짊어지고 가는 삶의 무게다.
그래도 아이는 항상 옳은 존재로 그려진다. 마지막 장면에 기우가 그 집을 사러간다. 지하에 감금된듯 살아가는 아비를 생각하며... 그런데 그 상상은 먼 미래의 것인지 상상에 그칠지 알 수 없다. 현대 사회를 사는 많은 사람들은 바벨탑처럼, 지하, 반치하, 지상, 고층처럼 계속 욕망과 함께 오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탁 트인 공간도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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