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선거때인가 주말 오랜만에 광화문 광장에 홀로 나가본 적이 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다양한 정치적 활동들이 펼쳐지고, 유니세프를 위해서 봉사하는 젊은 대학생들도 있고 그 만큼 현대사회는 복잡하다. 아니 좀더 세밀해지고 복잡하게 인간이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나는 그것이 그리 좋은 것만 같지는 않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고, 인간은 스스로 그러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고 잔머리를 굴리고, 결국 자신의 불완전으로 인한 좌절 또는 그럼에도 성공이란 위대함을 쟁취하기도 한다. 가끔 뭘 그리 복잡하게 사나하는 생각도 들고, 스스로 돌아보면 엄청 복잡하게 만들어가기도 한다. 문득 정치집회의 한자리에 지구당위원장이라는 직책을 갖은 대학시절 총학생회장을 보면서..참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듣고, 체험한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마 자연의 위대한이란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일것이다. 어디에 착근하지 못하고 오늘같은 내일보단, 오늘보다 발전된 내일을 희망하는 인간의 욕망이 존재하는 한 사람은 진보적이라 생각한다. 역사는 한번도 진보적인 흐름을 놓친적이 없다. 매일 똑같은 놈들만 모이면 그놈이 그놈이듯 발전이 없고, 매일 오늘같으면 인간 문명이란 참 하찮은 것이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사람은 진보적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질적인 발전은 사람이던 기계던 빠르게 효율을 찾아가지만 보다 창의적인 머리는 동작원리, 기계의 원리와 알고리즘같이 쉽게 변경될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난 그속에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지는 맥락과 교육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것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어째던 이런 두가지 조건들은 상호 교류하면서 서로를 발전시키는 쌍방향적인 상호보완적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보편적으로 국가의 운영과제는 그 테두리안의 국민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목적이고, 제한된 능력, 자원, 목표를 선정함과 동시에, 전체의 개선과 개인의 개선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정치에 국한되어 해석되는 경향 또는 이에 기반한 침소봉대식의 과장과 착각이 존재한다. 모두들 정치의 틀과 제도속에 살면서 정치적이라고 지탄하는 것도 나는 아이러니라고도 생각한다. 난 그말속에 계급 또는 계층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야를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보수는 좀더 인간미가 있고, 나쁘게 말하면 제도와 규범에 유연성을 좀더 허용한다고 생각한다. 매우 기준에 엄격한듯하지만, 관계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하지만 보수는 좀더 시스템적 축적의 힘이 강하고, 진보는 목적의식을 갖고 틀을 깨내기위해서 도전적으로 움직이지만 원칙과 제도의 틀에서 유연하지 못함으로 공감을 얻는데 실패할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좋은 뜻을 갖고,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인간미가 떨어지는 부작용이랄까. 쉽게말하면 원칙의 굴레에 유연성이 없다보니, 근자열원자래가 안된다는 말이다. 리영희선생의 말처럼 좌우의 날개로 새는 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나는 그말에 덭불여 좌우의 균형이 잡혀야 날아가는 새도,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도 전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카누나 카얏을 한번 타본다면 한쪽방향의 노젓기가 자리를 뱅뱅돌게하는 우스운 결과 또는 물속에 입수할수 있는 지름길이란걸 알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유시민이란 사람을 보면 재미있고, 후련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또한 386이란 불리는 세대와 그 뒷세대는 상당한 세대격차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전후세대로 안정적으로 생활하기 시작한 그 세대, 대학시절 공부보다 꽃병과 자욱한 연기와 더 친한세대, 이념의 세대, 그리고 경제성장의 마지막 황금마차를 타고, 주택경기의 중흥기에 사회에서 자리잡은 세대..어쩌면 가장 주목받았으나 그 뒷세대에겐 어정쩡한 제스처를 보이며 책에서 말한듯 자연스럽게 보수화되가는 세대라 생각한다. 아래로 전체주의적이고 위로는 자유를 말하는 불합리한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째던 이 세대는 달리는 열차의 끝자락에 올라탔고, 그 이후세대는 열차의 뒷모습을 보았고, 요즘의 젊은 세대는 기차가 지나갔다고 카더라라는 상황이란 생각이 많이 든다. 하지만 나는 그들보다 뒷세대들이 진보적이라 생각하는 것은 더 자유로운 사고를 한다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더 행복한 세대는 그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제시했다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철학사와 같이 전제주의, 자유주의등 시대를 반영하는 철학자의 사유, 그리고 각 시대가 정의한 국가를 돌아보는 방식, 마지막으로 책의 서문에서도 말하듯 목적론적인 국가관에 대해서 말할때 언뜻 무엇인가 유사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저자도 마이클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틀을 국가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프레이밍했다고 말한다. 이런점이 어쩌면 그의 장점일수도 있고 아쉬움일수도 있다. 나의 기대는 그의 다양한 생각을 듣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레이밍을 하는 순간 차라리 정치학과 교제를 보느게 좋을지도 모르겟다는 생각도 들었다. 핵심적 결론은 그의 맺음말속에 잘 정리되어 있는것도 같다. 조금은 교과서적이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하는 목표를 위해서 프레임을 차용하는 기술적인 측면은 호와 불호가 같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은 읽은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정성이라 생각하고 그 세대에서 지속적인 진보운동에서 갖는 그의 상징성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그의 정치적 결과물처럼 아쉽기도하고 때론 지식인으로써 자리매김하는 것이 더 좋은 사회적 자산효과를 갖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꿈구던 국가와 세상을 모든 이가 좋아한다는 것은 자유로운 생각을 갖은 시대에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꿈을 갖은 사람이 존재하기에 세상은 조금씩 또 발전하고, 국가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 노제때에 서울역에서 한번 악수할 기회가 있었다. 매일 엑센츄어인지 아마츄어인지와 밤을 새며, 지식만 있지 산업의 이해가 없는 어린것들이 도와주러 온것인지 공부하러 온것인지가 혼란스러웟을 때였던것같다. 그 와중에 무심코 마음가는데로 다달았던곳이다. 그리고 그의 한마디와 따뜻한 손길은 참 오래 기억될듯하다. 목적론적 국가관으로 유도하기 전에 책은 다분히 출판시기를 보면 상황적, 정치적 목적론적 의미를 갖고 있지만 그것에 의미를 두기보단 그가 바라는 대의적인 진정성에 의미를 두고 싶다. 국가의 의미가 발전된 과정을 잘 요약하고, 이를 차용한 틀에 넣어 그가 바라는 국가에 대한 설명을 차분하게 잘 정리했다고 생각한다. 토론회속의 그의 말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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