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재밌다. 바닥난 체력으로 뒹굴거리며 점심때 쯤 읽기 시작해서 벌써 다 읽어버렸다. 왜 재미가 있었을까? 한가지는 현재 나의 상황속에서 공감가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기도 하고, 나의 생각과 책의 말속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이라는 자만심이기고 하고, 한편 내가 걸어가야할 길에 대한 생각을 스스로 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큰 격동없이 소설의 구성이 인문학적인 감성과 사람이 살아가는 원리에 대해서 이렇게 재미있게 쓸수 있을까하는 생각이다. 한편의 영화나 베스트극장 같은 단편드라마로 만든다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줄만 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작은 우산을 덩치큰 아빠에게 내미는 아이의 마음은 우비입은 아이의 측은지심이 발현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덕목인 배려를 상징한다. 특히 책의 곳곳에 남아 있는 "논어", 공자를 상징하는 1팀장의 운영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수천년 내려오면 유지된 공자의 사람에 대한 성찰, 지향, 그리고 배움(學)이란 주제의 논어를 통해서 이런 소설을 이끌어낸 작가의 상상력과 논리도 참으로 대단하다.
인간의 관계는 말하는 것보단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는 아이에게 말을 가르키기 위해서 수없이 반복한다. 아니는 수없이 듣게 되는 말을 조금씩 흉내내고, 깨달아가간다고 보면 이 책에서 위차장이 변해가는 모습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살아왔던 방식이기도 하다. 잊었던것을 다시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학교라는 곳을 통해서 어떤 것을 배움으로써 이루는 것이 있고, 버리지 말아야하는 것도 존재한다. 그 상징적인 사스퍼스와 본부장을 보면 배운다는 것의 결과는 모든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마치 무협지 정파의 최고수와 사파의 최고수처럼, 설국열차의 윌리엄과 윌포드는 서로의 의도를 이해한다. 다만 달리는 방향 또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사람의 삶이 작은 현실이 쌓여서 인생이 되어간다. 무엇을 주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은 계산을 배우면서 시작하게 된다. 이런 배움의 결과로만 재단되는 삶은 또 다른 배움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른쪽과 왼쪽을 같이 사용하듯 우리의 배움도 크게 두가지는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통해서 충분히 마음 따뜻함을 배울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회사 작은 도서관에 꽂아둘 생각이다. 또 누군가가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 인위적인 권유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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