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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세계질서 - 서문을 읽고 (Ray Dalio, The Changing World Order)

by Khori(高麗) 2022.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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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 달리오를 유튜브 만화로 처음 접했다. '원칙', '관자', '초격차'를 읽으며 시대를 넘어 공통점을 생각했다. 공통점이라고 해봐야 일관성 있게 정말 될 때까지 끊임없이 기획, 계획, 실행, 조정, 재실행을 해내는 불굴의 정신이랄까? 그리고 학교 다닐 때나 볼 듯한 '금융 위기 템플릿'을 읽어봤다. 제정신이 아닌 거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읽다 보면 왜 금융 역사의 사례를 이토록 연구할까? 돈 벌려고? 하여튼 여러 의문이 있었다. 그는 학자라기보단 경기장의 실전 플레이어라고 생각했기에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성공 원칙'이란 예쁜 책이 나오고, 올해에 '변화하는 세계질서'라는 책을 손에 쥐고 읽고 있다. 특이한 발자취임이란 생각과 그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들을 돌아보면 일정한 궤를 같이 한다. 그래서 좋다.

 

 최근 노자타설을 읽었기 때문일까? 그가 책을 집필하는 마음이 자기 자랑이 아니라 자신이 발견한 바를 세상에 공유하고 도움을 주려는 목적이다. 그런데 그의 뜻대로 미래를 파악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1억 개 데이터가 아니라 1경의 데이터를 넣어도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미래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좋거나, 더 나쁘거나 그렇다. 똑같은 적이 없다. 역사책을 봐도 그렇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행운에 속지 마라'라는 책을 한 번 읽어보시라. 사람이 느끼는 체감이란 제각각이고, 사람들은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 때론 더 악화시키는 훌륭한 재능 때문에 변화를 예측하기 힘들다. 인간이 문제고 희망이다. 사실 푸틴이 전쟁을 하리라 생각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린 정규분포의 확률에 익숙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비정규 분포의 엉뚱한 표본들로 가득하다. 우리가 엉뚱하다고 생각할 뿐 근본적 인과관계를 보면 우리가 모르는 그럴만한 이유들도 있다. 내가 보는 작은 퍼즐은 세상의 아주 작은 단편이고, 단편이 모여 세상의 진실이 되지만 그것이 모든 진실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주 난리를 피운다.

 

 서문을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변화와 인과관계의 사이클을 찾아간다고 느낀다. 노자의 도덕경도 변화, 그 변화의 원천에 자연의 섭리와 같은 도, 세상의 원칙을 이야기하지만 그 세상의 원칙도 현상적으로는 동일하지 않다. 그 현상의 근본적 원인에 유사성을 짐작할 뿐이다. 그 짐작도 내가 올바르고 현명하게 판단할 실력이 있을 때나 가능하다.

 

 시간적 주기를 말하는 사이클이란 말로 세상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수다. 인간의 역사에서 어떤 시기는 더 길고, 어떤 시기는 더 짧다. 세상의 원칙 또는 도가 사이클의 개념으로 순환한다면 미래는 예측 가능하다. 그런 적이 있었던가? 그때를 사이클의 시간적 순환기간처럼 알 수 있다면 이것은 신의 영역이다. 우리는 가능성에 대한 기미, 조짐을 어렴풋이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작은 조각으로도 큰 일이다. 그러나 미래에 진실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아는 것이 꼭 좋은 일도 아니다. 내가 무엇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파산 경제의 구간만을 살아야 한다거나, 내일 전쟁이 나서 우리 집에 핵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안다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다. 이런 일이 있다면 세상은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감히 상상한다. 세상은 일시적으로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끊임없이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인간이 그렇기 때문이다.

 

 사이클이란 시간의 기간, 변화의 정도나 폭이라고 할 수 있는 범위이다. 그런데 인간의 예측할 수 없는 행위에 따라서 그 범위는 물음표로 남겨 둔 것이다. 그것이 때론 좌절이고 때론 희망일 뿐이다. 우리는 그 현상을 통해서 그가 말하는 원칙 또는 노자가 말하는 도의 순리적 기능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을 추정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매일매일 고민하고 선택한다. 그 추정에 근거하여 현상을 가속시킬 것인가, 조정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할 것인가? 그 힘의 크기에 따라 세상의 변화는 끊임없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변화가 끊임없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공부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누구나 희망하는 바이다. 중요한 것은 레이 달리오의 말처럼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일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무엇이 원인을 만들고 어떻게 결과에 영향을 주는가를 알아가기 위한 근본적 질문이 필요한 이유다. 노자가 바라보는 관점이 나는 공자보다 훨씬 넓고 인간의 계산 범위를 크게 벗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알쏭달쏭한 것 같다. 노자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어떤 현상의 원인, 그 원인을 만들어낸 생각을 유추하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략적인 몇 가지 예상을 하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범위라 생각한다. 그 이후에 선택이 중요하다. 우리가 직감, 운이라고 하지만 선택의 근본엔 지식과 같은 실력이 바탕이 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합리적인 예상과 계획은 지혜와 순리에 따르는 인간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미래에 어떤 주기로 나타나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인간의 어떤 행동이 원인이 되고, 그 원인이 어떤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 어렴풋이 이해함으로 현재를 돌아보며 준비해서 변화의 폭을 순리에 맞게 운행되도록 노력할 수 있을 뿐이란 생각이다. 어차피 미래의 데이터는 입력한 적이 없고, 내 선택이 조금씩 데이터를 만들어 갈 뿐이다.

 

 금융위기 때인가 신문의 1면에 나온 원자바오의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을 반성하여 내일을 준비한다'는 말을 듣고 감동적이었다. 멋지고 지적이라기보단 현명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래란 공란을 현재의 어떤 선택으로 색칠하기 시작하는가가 미래를 만들어가는 시작이다. 이 책의 서문을 읽으면 3부작의 다음 편에서 내가 기대하는 부분인 이런 부분이다. 인간이 선택을 통해 근본적인 원인과 예상 가능한 결과를 추정하여 지혜로운 선택을 한다면 꽃처럼 희망찬 것이 될 가능성이 높고, 순리와 원칙을 벗어난다면 세상이 망작으로 꽃피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절망과 가능성이다. 레이 달리오가 서기 600년 이후의 중국 역사를 공부했다고 한 점이 아쉽다. 그는 충분히 춘추전국시대 정도는 공부했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소크라테스와 같이 무지에 대한 깨달음, 말과 글의 부족함에 대한 이해, 작고 세밀하게 말하는 것의 부정확성, 긴 시간적 개념의 대략적 파악이란 말을 읽다 보니 그의 솔직함이 맘에 든다. 바로 전에 읽은 노자의 상념이 자꾸 어른거린다. 10년도 더 지난 중국의 대국굴기, 10년이 훨씬 넘은 중국의 준비와 실행의 시기를 어렴풋이 돌아보면, 지금은 변화의 시작이 아니라 변화 속에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밀레니엄이 되면서부터 석학들은 벌써 이런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이다. 레이 달리오의 이 책이 조금씩 뒤뚱거리는 미국이란 제국의 시간에 도움이 될지, 겁 없이 성장하면 아편전쟁까지 세계 1위였던 과거의 위상을 찾으려는 중국의 시간에 보탬이 될지 미래를 예측해본다면 나는 기세란 측면에서 후자에 우선순위를 두고, 단지 내가 살아가는 지금 그 시간을 얼마나 단축할 것인가 지체할 것인가의 격렬한 충돌의 시기가 아닐까 한다. 조그마한 한반도 땅덩어리도 내겐 너무 크고, 책을 통해 평화롭고 가족들과 오손도손 살아가는 일을 잘 만드는 것에 집중하기도 힘든 시대에 이 책을 읽는 선택도 어쩌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읽는 중이다.  

 

 이젠 본격적으로 1부, 2부, 3부를 읽다 보면 서문을 읽고 주제넘은 소리를 한 것인지, 스스로 모자람을 광고한 것이지, 크게 배워야 할지 부족한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4번에 나눠 읽겠다는 말을 참 길게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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