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놓은지 조금 된 책을 오랜만에 잡고 읽게 된다. 실사구시, 이용후생이란 말을 고등학교때에 들어보고 정말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박제가가 청나라를 기행하고 느낀 소회를 18세기 말엽의 조선과 비교하며 자세하게 설명하고, 부국강병을 위한 그의 제안과 현실을 두루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93년에 처음 배낭여행을 다니며 유럽의 문화가 한편 신기하기도 하고, 낯선부분도 있었다. 그때 여행을 다녀오고 내게 기억이 가장 크게 남았던 시설이 하이퍼마켓이었던것 같다. 지금이야 마트가 지천이지만 당시 파리근처에서 본 맘모스란 곳을 들르면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슈퍼마켓이 교외에 위치한 것을 보면서 라이프싸이클이 바뀌면 우리나라에도 많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는 독일에서 본 저소득층을 위한 염가 슈퍼마켓이었다. 현재의 복지란 개념보다는 이웃을 돌보는 작은 배려의 시스템이라는 생각이었던것 같다. 물론 그때 흔하지 않던 요구르트와 우유를 구분하지 못한 동행에게 많은 사람들이 지탄을 보내기는 했지만...
아마도 나같이 해외영업을 하는 사람에게 박제가의 북학의는 정말 한번 권해볼만 하다고 생각하다. 외국문물을 접하면 그 섬세한 디테일을 보는 시각과 비교검토하여 내것으로 만들어 내려는 열정과 의지는 세월을 넘어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책은 내편, 외편, 진북학의로 되어 있다. 내편은 중국의 수레, 벽돌, 농기구, 배등 기행을 하며 접한 다양한 문물과 18세기말의 조선 현실에 대해서 비교하여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야할 당위성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조금 지루한 감도 있고, 신문물의 체험지가 청으로 제한되다보니 과도한 바가 없지는 않지만 박제가가 서자로써 능력을 펼치지 못한 울분만큼이나마 현실의 가난과 피폐함, 재조지은이래로 성리학에 매몰되 놀고먹는 사족에 대한 생각등이 간접적으로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과도한 칭찬자체가 이런 반발에 의한 것인 부분도 있겠지만, 체계적으로 그들의 장점을 세밀하게 검토한 것은 대단하다는 말밖에 더할 말이 없다.
외편을 보면 그의 이런 체계적인 사고관이 제도에까지 넓혀 잘 기술되어 있다. 검소함과 가난함의 차이, 놀고먹기 위해서 권력에 기대는 세태, 깊이 있는 학문이 아닌 시험을 위한 과거제도등을 말하고 있다. 특히 내편을 보면서 조선의 문명에서 진나라에서도 시행한 도량형의 통일과 발전이 매우 더딤을 알 수 있다.
특히 북학의 내외편의 주된 생각은 세가지라고 생각한다. 물질문명의 낙후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제도상의 병폐로 인한 리더육성의 제약이 있으며, 따라서 풍습이란 문화가 성실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문명에서 강제로 제약할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이 들어나도록 제도를 시행해야하며, 그로써 세상의 이목으로 벌주는 것보다는 더 효과적으로 시행되리라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박제가의 시대에 대한 통찰은 현재에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된다. 이런것이 탁견이 아닌가한다. 아쉬운 점이라면 정조의 알았다는 교지가 더 크게 시행되지 못한 주자학의 한계가 아쉽긴하다. 최근 보고 있는 도덕경을 통해서도 대국이 아닌 소국에서 유학은 어쩌면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의 포기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그의 학문에 대한 생각이 지금으로보면 진보적이지만 당대로 보면 파격이란 생각이 들긴한다.
재물을 잘 다루는 사람은 위로는 하늘이 정해준 때를 놓치지 않고, 아래로는 땅이 주는 이로움을 잃지 않으며, 그 중간에서는 좋은 사람을 잃지 않는다
성인들은 적어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비록 그 제도가 오랑캐의 것이라 해도 받아들였다.
(최근 본 일본사를 보면서 이런 사고와 문화의 차이가 문명발달의 엄청난 차이를 이끌어 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우리가 중국의 오랑캐를 내쫓기는커녕 우리가 갖고 있는 오랑캐 같은 풍속조차도 문명화시키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 그러므로 오랑캐를 몰아내고자 한다면 먼저 오랑캐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며, 중국을 존재하고자 한다면 그 나라의 법이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 참 통렬한 맺음말이란 생각을 금치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