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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冊)

이회영 평전

by Khori(高麗) 2013.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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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회영 평전

김삼웅 저
책보세(책으로 보는 세상) | 201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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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독립애국지사들의 단편들을 교육과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제병탄이후의 독립활동의 어려움, 식민지제국시대의 조류와 사상적 지향의 차별과 이런 이념의 문제가 독립운동에 다양하게 남아 있는 복잡성, 동북아 정세의 복잡성을 다 이해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한다.

일면 독립운동활동이 상하이, 만주, 연해주등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지만 함께 이루어 지지 못한 부분, 지향의 차이가 아닌 이념의 차이로 인한 반목(김좌진 장군의 암살-여명의 눈동자를 한번 보시길)등은 충분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시대의 조류에서보면 신사상의 접촉을 통한 변화는 그 시점에서 유효한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그들이 잃어버린 조선이란 나라의 재건이 아니라 민족을 위한 나라의 재건을 위한 절체절명의 목표라는 점이 그 시대의 가치라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우당 이회영의 이야기는 조선의 선비정신(양명학)을 유지하며, 사민평등과 자유를 지향하는 아나키스트(책은 무강권주의라 설명함)로써 그를 설명하고 있다. 사실 책을 보면서 백범일지의 마지막 나의 소원과 같이 백여년전의 인사들이 바라보던 시각..우리가 근대라 부르던 시대의 성찰을 현재에도 뛰어 넘었는가 의문스럽다. 


우당은 명예나 권력지향적이라기 보단 탈 권위주의적이었던것 같다. 만민의 평등과 자유를 지향하는 것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주의적인 성향도 높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유가 좀더 본능에 가까운 단어이고, 평등이 좀더 의식적인 이성의 영향권에 의한다고 생각하면 그렇다. 특히 그가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지향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사회적 자치와 연대, 그 연대와 자유의 확장으로 독립을 본다는 점은 공감하는 바가 같다. 비록 나도 자유인이 되고 싶어하긴 하지만 그의 생각은 조금 더 이상향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누리기엔 불완전하고 최고한의 규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판단, 결행을 통해서 봉건제도의 쇠퇴와 나라의 치욕, 민족을 위한 나라의 독립과 이를 위한 헌신적 활동, 유학의 그늘과 신문명의 교류속에 격변기에 지도자들이 보여주어야하는 헌신적 노력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비단 40만원(현재 600억이란 책에서 설명)과 함께 솔가하여 만주로 옮겨 온가족이 독립운동에 헌신한 것 뿐만 아니라, 서전서숙, 신흥무관학교, 부민회등 다양한 독립운동의 기초가 되는 인재양성의 병행은 그가 지향하던 바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폼나고 이름나는 일이 아니라 꼭 필요한 일에 집중하고 헌신하는 자세, 그 효과에 기반하여 권력욕을 보이지 않는 자세, 항상 독립이란 목표에 대한 집중력은 참으로 본받을 일이라 생각한다. 


책은 이회영과 아나키스트에 대한 설명은 246-247페이지에 잘 기술되어 있다. 이런 신구사항의 절묘한 조화에 나도 공감하지만 위에서 말하듯 작은 차이점은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시대적 차이와 환경의 차이만큼 그런것은 아닐까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사항은 그래도 266쪽 시야 김종진전(이을규작)을 인용한 대목이 핵심이란 생각을 하게된다.


이 책에서 단재의 '조선혁명선언' 전문을 볼수도 있는데 조금은 급진적인 아나키스의 생각을 통해서 외교론, 준비론들에 대한 비현실성의 질타는 참으로 잘 써진 명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이상과 현실의 타파를 위해서 부단이 노력한 단재나 우당이 모두 뢰순감옥에서 순국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곳에 안중근 장군도 함께 했으니말이다. 조금은 딱딱하기도 하고, 아나키스트란 부각을 위한 다양한 설명이 첨언되어 딱딱한 면이 있지만, 나라를 위한 헌신과 희생..그 과정속에서 가슴아픈 가족들의 사연..또 그의 마지막 길에 가족의 부역행위등은 참으로 마음아프게 한다. 비록 망국노의 입장에서 비참하고 어려운 길이지만 그들의 피땀을 자양분으로 다시 지켜온 땅이란 생각에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으로 요즘의 시절때문에 우당의 말보단, 단재의 일갈을 남겨본다. 

이승만 1919년 2월25일 파리강화회의에 위임통치 청원

정한경 1919년 3월21일 뉴욕타임즈에 위임통치 호소...(1919.3.1은 만세운동이 있었음)..


단재 "미국에 들어앉아 외국의 위임통치나 청원하는 이승만을 어떻게 수반으로 삼을 수 있단 말이오. 따지고 보면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오. 이완용 등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아먹은 자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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