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에 신입사원이 생겼다. 12월부터 낙하산으로 보낸다고 하니 받기로 했다. 여자 아이가 와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을 물어봤다. 고졸 사원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 어차피 사무실에서 영업 쪽은 내가 알아서 하면 되고, 그 외에 회계, 세무, 총무 일을 할 녀석이 필요하기도 한 상황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배우고, 할 자세가 중요하다.
무역이나 영업 쪽도 관심이 있고, 회계나 세무 쪽도 관심이 있단다. 앞쪽은 내가 야매 무역 선생은 할 정도라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뒤쪽은 지적질 선생은 아주 잘할 수 있지만 이쪽은 나름의 실무를 가리켜야 하는 판이다. 곰곰이 생각하다 입사하러 온 녀석보고 "너 당장 사이버 대학교부터 다니자"라고 했다. 덧붙인 말은 그렇게 주경야독해서 경력도 쌓고, 시집갈 밑천도 만들라고 하다 보니... 나도 꼰대화 현상이 심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무조건 공부를 시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이것저것 알아보고 해 보겠다고 하니 이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 집 사내 얼라들보다 한 두 살 많은데 얘는 결이 다르네. 허허. 입사하고 일주일은 이것저것 찾아보고, 자소서를 쓰면 내가 야매 빨간펜 선생처럼 교정도 봐주게 된다. 다음날은 하나 더 교정을 봐달란다. 처음 이야기 한 것처럼 하나는 무역 관련, 하나는 회계 관련 학과에 원서를 준비했다. 1월에 넣고 결과가 나오는데 무조건 잘 됐으면 좋겠다. 우리 집에는 하나는 반수를 반치고, 전액지원 군대에 가게 생겼고, 하나는 편입시험을 본다고 난리인데 사무실에서 입시 준비를 하나 더 하고 있다. 그러길래 할 때 열심히 하지 꼭 늦바람에 하니 말릴 수도 없고, 이런 늦바람이야 권장사양 아닌가?
우리 집 얼라들과 달리 애가 엉덩이가 엄청 무겁다. 하루종일 앉아서 이것저것 알아서 잘 만들어가는 중이다. 기특하기 그지없다. 내가 걱정이 돼서 "야 한 시간 일하면 밖은 추우니 복도 한 바퀴씩이라도 돌고 와라"라고 잔소리를 할 지경이다. 12월이 결산월이고, 내가 엑셀로 잘 만들어 두긴 했지만 초짜가 이카운트에 일일이 떼려 넣는 일을 군말 없이 잘 마무리했다. 아니 내가 틀린 것도 잘 찾아서 알려준다. 기특한 녀석이다. 내가 사무실을 비우고 돌아다니는 일도 많은데, 알아서 기초 공사를 잘 해내고 있다. 아무렴 젊은것들이 잘 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 아닌가? 그게 미래고.
오늘이 첫 월급날이다. 수고했다고 했더니 낙하산 월급도 받고 감사하단다. 오늘은 친구들하고 논다고 대빵 큰 컵 라면인지 짜장면인지 어마어마한 걸 들고 왔다. 8인분 짜리란다. 얼추 베개 크기만 한다. 이런 걸 보면 우리 얼라 또래가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연휴와 주말이 겹치기도 해서 용돈 5만 원을 주고, 친구들하고 맛난 걸 사 먹으라고 했다. 날이 추워서 일찍 퇴근하라니까 이 달 결산 준비(사실 만든 지 얼마 안 된 걸로 보면 많고, 보편적으로 보면 아주 적은 양이기도 함. 내 기준이지 얼라 기준은 말이 없이 해서 알 수가 없음)를 거의 다 한 듯하다. 사무실 직원인지 낙하산인지 하여튼 보모처럼 봐야 할 어린 딸내미가 하나 생긴 셈이네. 공부시켜야지, 일 시켜야지 월급 줄려면 내가 열심히 해야지 뭐.
급여도 일단 세제 혜택을 받을지 말지 모르겠지만 반영해서 계산했다. 시간내서 내일 배움 카드, 사는 동네 관공서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청년지원 정책들이 뭐가 있는지 찾아보고 알려줬다. 건물에도 가끔 정부에서 붙여둔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잘 살펴보라고 했다. 연말이라 소득공제가 어떻게 하면 유리한지, 뭘 하면 혜택이 있는지도 시시콜콜 이야기하게 된다. 쩝. 예전 회사에서도 직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보고, 읽어보라고 권하고 소득공제 계산해주고 하던 때가 생각나네. 본부를 책임지던 입장보단 본부에 있는 사람들을 보살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사무실 가장이되니 또 다른다. 얼라 직원 하나니 가장처럼 애를 먹여 살려야지 뭐. 아니지 같이 먹고 살고 회사도 키우고 해야 하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하여튼 다음 달에는 얼라 삼촌쯤 되는 직원이 하나 더 생기고, 여기에 중국 이모쯤 되는 애도 하나 생기고.. 이젠 식솔들 먹여 살리고 의기투합하려면 폭삭 늙던가, 어떻게든 돼겠지. 시종여일, 화이부동을 주문처럼 외우며 도를 닦으며 살아야겠다.
점차 손이 많이 가는 나이가 되어 가는데, 손이 안 가는 착실한 얼라가 와서 세상 감사할 일이다. 요즘은 세상 감사할 일이 참 많다. 협력사가 알아서 해주질 않나, 모르는 분야를 생각지도 않았던 분이 잘 알려주고, 사업 소개도 해주고 세상이 기특해 보이니 내겐 아주 어색하다. 40대에는 전생에 단군 할아버지 쵸크걸고, 코브라 트위스트를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므흣해지니 잘 적응은 안 되고 감사나 해야겠다.
우리 얼라 처음 와서 노트 쓰는 것보고 기본이 됐구나 했는데 역시 인간의 딥러닝된 인사이트는 확률이 높다. 노트 줄 맞춰 못쓰고, 괴발개발 쓰는 것들, 책상 정리(깨끗하진 못해도 최소한 위치 정렬의 일관성) 안 하는 것들은 일이 아니라 기본 자세와 태도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똑똑하면 뭐 해, 저 잘났다고 매일 불란과 소란을 일으키면 아무 소용없다. 전체 성과로 연결되지 않으니.. 그렇게 개인 성과를 어마어마하게 내도 문제긴 하지.. 통제가 잘 안 되거든. 꼭 해본 것처럼 내가 떠드는 것 같네. 이런 놈이 최근에 짤렸다는 소문이 오던데.. 아무렴. TCO관리 측면에서 봐도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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