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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잡부(天上雜夫)_ 사업관리 시즌 2 (해외영업 시즌 1) )

[천상잡부] 너 초짜 아니냐? 그렇지!

by Khori(高麗) 2023.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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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롭게 하는 일을 하다 보면 스스로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미팅을 하다 업체 이사님이 "이쪽 분야 해보신지 얼마 안 되셨죠?"라고 물어본다.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때 내게  생각은 당황하거나 그런 기분보다 '오랜만에 색다른 기분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하~ 초짜 맞죠"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대화가 훨씬 원활하고 좋아졌다.

 

 사회에 처음 나와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들어간 지  달도   나보고 '아니 이런 것도 몰라'라고 핀잔을 주는 사수가 있었다. 싸대기를   날려주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나빠, 자재 창고에 쳐들어가서 회사  제품 매뉴얼을 들고 나왔다. 모르는 일이 당연하지만 재수떡머리 없이 조금 안다고 유세를 떠는 것이 꼴 보기 싫었다. 모르는 일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매뉴얼을 들고 회사 전시룸에 들어가서 거의 일주일을 살았었던  같다. 전자제품 동작이 이상하면 전원을 off/on을 하면 된다. 어차피 서버처럼  장비가 아니니까? 비슷한 제품들을 하루종일 만지작 거리다 보니 동작과 메뉴를 자연스럽게 외우게 됐다. 요즘도 매뉴얼 없이 오는 신제품들은 이렇게 메뉴를 하나씩  눌러보고 제품이 무슨 짓을 하나 확인하기도 한다.  바람에   품질관리부서에 자리 잡고 내가 수주한 제품이 출하하는 날에는 2시간씩 테스트를  기억이 생각난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우연히 이것저것 영업사원끼리 제품을 물어보는데 따박따박 대꾸를 하니 이젠 잔소리가 "잘났다 잘났어"로 변했다. 어쩌라는 건지. 

 

 이런 경험 이후로 내가 판매하는 제품 갖고 누군가에게 모른다는 소리는 듣지 않고 살았다. 물론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단지 궁금하면  궁금한 일을 하는 사람 옆에 쪼그려 안고 "갈차주라? 이건 뭐야" 물어보는 게 일이었다.   가르쳐주면 전원코드 깔짝깔짝 누를까 말까 작업하는데 못살게도 하고. 분야가 다른 사람들은 다른 분야 사람들이 자기 분야를 물어보면 엄청 좋아하며 가르쳐주거나, 꺼지라고 난리를 피우거나, 은근 갑질을 하거나, 많이 알면서 겸손하게  가르쳐주거나 그렇다. 그러나 초딩처럼 다가가서 물어보고, 초딩 수준에 가르쳐 달라고 조르기를 하면 대부분  알려준다.  그렇게 친해지게 된다. 그렇게 알아가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떨  뭔 소리인지  모르는 책을 보는 것보다 낫다.

 

 내가 색다른 기분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그렇게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고 스스로  업종에서 붙으면 어느 분야든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하면 살아온 시간 때문이다. 정말 예전으로 돌아가 쿨하게 '어~  몰라,  갈켜줘'라고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것도 고객한테 이런 직구의 소리를 듣는 것은 사실 매우 좋은 징조다. 가르쳐  의사가 없으면 저런 말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전 나에게 코딩을 가리키겠다고 마이크로 소프트 제품  CD를 보내고 못살게 굴던 녀석이 생각난다.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지만 내가 하던 분야와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구조와 기술은 동일하다. 일부는 이쪽이  높은 정확도를 요구하는 부분이 존재하지만, 내가 하는 분야가 훨씬  범용적이고 포괄적이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금씩 새롭게 하는 산업을 배워가는 속도가 생기고 있다.  바람에 훨씬  친해졌다고나 할까? 이젠 놀러 가고, 자주 놀러 오시라고 해야겠다. 어차피 이렇게  배를 타고 가보자고 했으니. 

 

 다음 주에는  미팅이 잡혔다. 거기 가서는 조신하니  듣고, 대응을 잘해야지 뭐. 어차피 시장 전략 접근과 정책은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구현하느냐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고  스토리에 우리가 접근하는 전략이란 옷을 입혀서  어울리느냐의 문제다. 물론 계절이  맞으면 반팔을 코트로 바꿔야 하니 그런 유연성은 갖고 있어야겠지만. 초짜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완장이라고 만들어서 차고 가볼까?  수준을 부정할  울화가 치밀고, 긴장하고, 초조하고  뿐이다. 

 

 그 보다 후배인지 친한 동생인지 업체 사장인지랑, 후배인지 남동생인지 여동생인지 헷갈리고 나만 보면 손꾸락질을 해대는  회사에 이사 양반이  자꾸 시킨다. 도와줄 생각도 있고, 출장 가서 중국에서 맥주   사주고 철석같이 도와주겠다고   입이 방정이지. 사장 후배는 해외 본사 가서  자료를 계속 달라고 하고, 한국에서 이사는 계속 카톡으로 '무슨 자료인지 내놔라', '나는 모르는 일이다', '아니 이렇게 많이 보내면 언제 작업을 하냐?', '이건 뭐고 저건 뭐냐?' 계속 떠들어 댄다. 잔소리를 시작해 보려고 했더니 퇴근을 한단다. 어우  당했네  당했어. 담에 손꾸락만 깔짝거리기만 해 봐라.  일주일 볶이고, 약속은  지키고,  마디 했다. "자재는  준비해 줬고요, 그림은 본인들이 그리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복마전에 넣어서  시키면 일당 받을 거니까 알아서들 해라"라고 메시지를 각각 날려줬는데 실수한  같다. 카톡 메시지를 지워야 하나? 그런 생각이 심각하게 든다. 일 시키고 이런 기회에 갑질을 시작하면 하극상인 듯 아닌 듯 애매해지는데.  생각해 봐야겠다. 하여튼 애들 방심하면 안 된다니까. 이러고 기분 좋은 건  자기가 잘난 거고, 애매하면 너한테 배웠다 이런 잡기술이 나오는데. 싹을 잘라야지 아무렴. 주말은  뒹굴어다니면서 생각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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