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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劇)

옛 사랑의 추억은 아름다워라 - 화양연화(花樣年華 - ★★★★★)

by Khori(高麗) 2019.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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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거총을 든 할머니'를 읽다, 문득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연관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 가을이 오나보다. 가을이 오면 왕좌의 게임 명대사인 "winter is coming'도 빠질 수 없다. 세상의 일이란 도덕경의 말처럼 쉬지 않고 순환하는 자연에서 배울 것이 많다. 알게 모르게 크고 있는 나무와 다 커버린 듯 해도 나무등걸이 변해가는 모습이 하루를 아둥바둥 살고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있다. 잘 듣지 못할 뿐이다.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성적이 떨어진 큰 녀석을 보면 아쉽다가도 건강하게 자라준 것이 고맙다. 놀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한 대 쥐어박고 싶다가도 어려서 놀기 좋아하던 내 모습같다. 세상사 다 내 마음대로 된다면 세상사는 일이 재미있을리 없다. 그런 일은 신의 영역이다. 때가 오기 전에 스스로 자각하고 준비하길 또 바랄뿐이다.

 

 새로운 달과 함께 온라인 수업 첫 강의도 듣고, 책을 읽다가 이것도 지겹다. 절반정도 읽었으니 하루 이틀이면 다 읽을 수 있다. 영화를 보려고 이것저것 생각하다 '화양연화(花樣年華)'가 눈에 들어왔다. 개봉당시에도 호평이었는데 보지 못했다. '옛 사랑의 추억은 아름다워라'라는 화양연화의 뜻이 애처롭다. 'In the mood for love'라는 직설적인 표현보다 사람의 느끼는 감정을 담은 한자가 괜히 더 좋다. 정우성이 나오던 '호우시절(好雨時節)'이란 영화와 구성이 상당히 비슷하다.

 

 영화내내 흐르는 3-4가지의 OST가 반복적이고, 살짝 빗나간 데칼코마니처럼 전반부화 후반부의 반복, 그리고 잦은 유사한 장면의 반복이 계속된다. 달콤한 블루스의 Quizas, 불안하고 절제해야하는 갈등의 마음을 알리는 Youmeji's theme가 주인공의 마음을 계속 대변한다. 최신 영화들의 직설적이고 시각적인 효과보다 조명, 음악, 절제된 대사를 통해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상상과 바램을 재촉한다. 특히, 양조위의 부인, 차우부인과 장만옥의 남편인 천선생은 뒤모습, 목소리, 실루엣으로 처리했다. 그렇게 나는 사건의 절반에 집중하게 된다. 지저분한 사건의 절반은 싹둑 잘려나가 있다. 그래서 영화가 더 애뜻해졌다.

 같은 날 같은 곳에 우연히 이사 온 두 가구의 이야기다. 천 선생은 잦은 일본 출장을 간다. 차우 부인도 그렇다. 이 대담한 남녀사이에 불륜이라고 하는 관계가 있다. 심리학자들이 불륜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그들의 과감한 행동을 모르는 차우와 천부인은 이유도 없이 힘든 나날을 보낸다. 

 부인의 선물을 사려고 가방을 물어보는 양조위, 남편의 넥타이를 선물하려고 물어보는 장만옥을 보면 서로의 동질감, 불안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또 함께 작업을 하고 조금씩 정들어 간다. 시간은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만, 누적된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애착을 함께 쌓는다. 양조위가 "나도 모르게..."라는 대사에 장만옥이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구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시공간의 공유속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애인 있어요?"라는 반복적인 질문과 대답을 통해서 서로에게 내재된 불안감,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잘 들어나 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간절한 마음과 잘려나간 반쪽의 이야기처럼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싱가폴에 갈 티켓이 있다면 나와 함께 할 것인가?', '내 마음에 자리가 있다면 함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차마 서로에게 던지지 못한다. 말없이 전화기를 들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떨어져 삶을 살아가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추억이 남아 있는 집을 찾는 두 사람을 보면 전생의 무슨 업이 이 둘을 이렇게 안타깝게 살아가도록 했는지...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둘은 둘만의 비밀을 지키며 살아간다. 비밀은 마음에 묻어야 한다. 입을 떠나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차우는 사원의 돌기둥 한 켠에 비밀을 묻는다. 아무도 알지 못하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남편의 생일 축하 신청곡인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참 청승맞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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