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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冊)

인본주의와 그의 이상을 생각해본다

by Khori(高麗) 2012.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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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맹자

맹자 저/박경환 역
홍익출판사 | 200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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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은 정치를 해보고 싶지만 어쩌면 소극적인 PR의 마케팅이란 생각도 들고, 맹자님은 조금 더 적극적인 마케팅을 한것이 아닌가합니다. 특히 Push가 아니라 Pull을 통해서 지속적인 시선을 모아왔다고도 생각이 들지만 결국 두 분다 현실정치에 초대받지 못한 恨을 책으로써 남긴듯 합니다. 아마 두 어르신이 현실정치에 참여했다면 그恨을 이런 책으로 일궈내지 못했을것 같습니다. 얼마나 맺혔으면 이렇게 남겼을까라고도 상상해보고, 恨을 풀었으면 아마 다른 책을 또 남기지 않았을까도 상상해봅니다.

그럼에도 2000년 넘게 세인들의 지속적인 시선을 모아온것을 보면 최고의 마케팅 전문가들이고, 그 속에 가치있는 contents가 더욱 빛나는것 같습니다. 성경이 제일 많이 인쇄되는 책이라고도 하지만, 2500년의 기간, 제지기술, 인쇄술의 발달정도로 보면 四書만큼 많이 인쇄된 책이 있을까도 되려 의문이 듭니다.

유학이 정치의 도라고 판단되지만, 논어나 맹자를 보면 기본적인 전제로 수신의 길을 다양하고 자세하게 기술하기 때문에 세대를 넘어 전승된다고 봅니다. 절대적인 기준보다는 탄력적으로 인간세상에 발붙여 설명하기에 더 다가오기도 하고, 맹자를 보면서 인간의 다양한 상황에 대해서 논하는 점은 權道라는 말에 입각해서 현재에 반추해 볼만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 알게됬지만 權이란 뜻에 있는 저울추라는 의미처럼 도란 확정적 절대기준이 아니라는 것인데, 결국 추의 목적이 균형에 있다는 것은 2천년전이나 지금이나 같을것 같습니다. 단지 추에 걸어놓은 대상과 상황이 그때와 다르지 않을까요?

맹자의 왕도정치는 그가 말한 측은지심과 성선설처럼 선한 인본주의에 기반하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양혜왕편에서 설궁의 즐거움을 논하는 것을 보면 통일된 천하의 왕이란 윗사람의 계급적인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물리적 영토의 통일을 넘어서 위에서 아래까지 다양한 계층의 일통된 공감을 말하는 것 같다. 그 기반으로 천하의 왕이 되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가 인간자체의 원천적 평등 또는 절대군주의 가능성에 제한을 두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또 井전제를 통해서 그간 10%의 세율보단 인상되지만 동시에 백성들의 편안한 삶을 추구했음이 현실적인 정치감각과 의지의 표명이 아닌가합니다.

현대사회가 권한과 책임을 바탕으로 지위를 확정한다면, 맹자는 인간중심의 사고와 그런 높은 깨달음에 다다르면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다가올 것이란 이상적인 사고를 갖고 계셨던 분인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본성에 대한 성찰이 지극한 수준에 다다르기 힘들지 않을까합니다.

맹자가 말하는 사단(四端)이란 인간의 본성, 측은지심(惻隱之心) · 수오지심(羞惡之心) · 사양지심(辭讓之心) · 시비지심(是非之心)을 권한과 책임을 논하기 이전에 인간의 본성에 더 집중한다는 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외치는 “기본아냐!”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곧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사덕으로 발달한다고 하네요. 기쁨(희,喜), 노여움(노,怒), 슬픔(애,哀), 두려움(구,懼), 사랑(애,愛), 싫어함(오,惡), 바람(욕, 欲)의 칠정(후대 중용에서 희노애락을 칠정으로 하였다함)도 몸과 정신이 분리되지 않듯 본성의 변화라는 의견이 나는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사에서 이황의 이기이원론(또는 이기불상잡)과 기대승의 이기일원론(또는 이기불상리)의 깊이까지를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글자 몇개 본 나의 수준으로 논한다는게 무례라고도 생각된다. 하지만 기대승 이후 율곡으로 이어지는 의견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당파 또는 학파의 원류를 논하는 것은 어쩌면 그 흐름의 원천엔 맹자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맹자에 논하는 것들은 보다 순순한 인간본성과 지향해야 할 바를 논한다고 생각한다. 조선사를 읽으며 개개인의 발전은 가능한듯 한데, 무리지어 하는 정치발전한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성리학의 병폐라기 보단 그 뜻을 세워 인간을 이롭게 하는 방향이 아니라 나와 나의 무리를 이롭게하기 위함이 앞선던것이 문제가 아닐까한다. 즉 유학의 바른길에 대한 논쟁도 있겠지만, 권력을 득하기 위해 논쟁하던 인간의 문제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죽기전에 한번은 읽자는 생각으로 시작하고, 금년에 사서는 읽어보자고 시작한 보람이 있는것 같습니다. 원문으로 읽지 못하는 아쉬움보단 언문이라도 작은 스침이 더 소중한것 같습니다. 비록 차곡차곡 다 쌓지는 못하겠지만 바람이 스치듯 또 자주 스치면 조금이라도 쌓이겠다고 생각됩니다. 고전을 보다보면 제 습관과는 달리 다시 읽어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기는듯 합니다. 맹자의 해설이 달린 또 다른 책을 사두길 잘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들이 많아 편견없이 접해보라 권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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