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7일동안 이것저것 숙제완료하시어 인류를 만드시고, 저자는 7일동안의 이야기를 통해서 삶과 죽음, 사랑 또 그것이 실존했던 사회를 이야기한다.
책을 보면서 몇일전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생각이 난다. 마침 내일은 친구 목사님을 만나기로 했는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책속에서 안식과 영생을 구분해서 말하던 것이 기억난다. 글쎄..나에겐 영생보단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몇일전 죽고나면 어떻겠다는 질문에 단순하기 그지없는 나는 "죽는 것지 뭐"라고 말하는 나를 보면서 어이없어한다. 사실 죽음이 뭘 의미하는지 다시 살아나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 없으니 알길이 없다. 그때 또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면 또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죽음의 세계가 현생의 조건을 달아서 뭘 한다면 경우에 따라 억울하게 댓가를 치르겠지만....(공정한가도 좀 물어봐야겠고..ㅎㅎ)
양페이의 죽음을 통해서 그가 사랑했던 여인과 사람들, 그가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그가 꼭 다시 만나고자 하는 아버지와의 3번째 만남은 뭉클하다. 세상속에서 부모와 자식만큼 끊어지지 않는 것이 있을까? 하지만 인연에 의한 부자지간의 연과 성실한 아버지의 헌신을 보면 지극한 사랑은 이승과 저승속에서도 연을 끊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승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귀신과 혼령, 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아이에게 사탕을 쥐어주고 돌아서도 다시금은 정신없이 찾아간느 모습은 요즘은 잊혀진듯한 어렸을적의 진부한 스토리같다. 그래서인지 더 포근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두번째는 책속의 이야기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양페이를 사랑하고, 양페이가 영원이 사랑한 리칭 또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더 아름답고 행복한 결말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작가는 생사의 갈림길속의 또 다른 한가지 이유를 주기적으로 깔고 있는 듯 하다. 마지막 슈메이와 우차이의 비극적 결실과 저승에서의 행복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사랑이다. 하긴 산다는 것에 한번 미친듯이 사랑하는 것이 빠진다면 참 섭섭할것 같긴하다. 하지만 양페이의 아버지를 보면 꼭 이성간의 사랑만이 다는 아닌것도 같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속에서는 또 한가지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온이 능력과 야망, 돈, 권력등에 의해서 깨져가는 안타까움이 있다. 친부모를 찾은 양페이의 불편함, 양페이를 떠나는 사랑하는 리칭, 과외를 하러 갔다가 만난 아이, 짝퉁 전화기와 나를 속인 연인에 대한 분노, 신장판매를 통해서 죽은 연인의 묘지를 구하는 것이 물질만능주의적인 현시대의 단면과 오염이 아닐까한다.
생과 사가 떨어진듯 하나로 이루어졌듯이 인간의 마음속에 스며든 인간의 순수성과 욕망이 결코 떨어질 수 없다. 그 사이에서 번민하는 인간의 삶이 다시금 저승 문턱에서 순수해진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그것이 인간이 갖고 있는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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